지금도 잘하고 있는 거야 하며 위로받고 싶을 때

[하늘과 바람과 별과 食] 4

by 정원에

깍두기 vs 오이지


넌 뭐냐? 너, 뭐.냐.고! 깍두기가 오이지한테 묻는다. 뭔가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 마음껏 달려와 내지른 태클이다. 세월이 서너 배나 긴 오이지는 기가 차다. 요즘 깍두기들은 다 이런가 싶다. 그렇지 않은 깍두기들도 참 많은데 한다. 급기야 생긴 거 가지고 달겨 든다. 깍두기 같이 생겨가지고.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세월값 못한 오이지는 내뱉자마자 후회다. 그런데 이런 깍두기, 성격은 좋다. 아니, 말 귀를 못 알아듣는 건가. 반응이 의외다. 나! 아주 훌륭한 깍두기지. 왜. 어쩔 거야. 니 얼굴, 한다. 하지만 스물이 되기 전부터 온갖 장사로 별의별 인간들을 다 만나낸 김여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후, 지장보살, 한마디면 끝난다.


긴 세월 먼저 익어 온 오이지는 잘 안다. 김여사는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왜 그러고 살아.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사는 거지. 사는데 정답이 어딨어, 하며 팔십 평생을 살아왔다는 것을. 오이지도 오래전 조상들도부터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김여사의 넉넉한 깊이를. 그렇게 열두 달 전 오이지는 지난달에 태어난 깍두기와 함께 해야 했다.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서 그랬나.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다 내려놓으니. 깍두기가 주인공이라는 걸 인정하니. 하지만 쌩쌩한 깍두기가 부족한 깊이를 오이지가 채워줘야 한다는, 자기 역할은 잘 안다. 불쑥 나서지 말고, 은근히 자기 존재를, 깊이 있는 진짜 실력을 아주 조금씩 조금씩 빛 내어야 한다는 것을.

오이지 깍두기(핸드메이드. 김여사)



고구마 vs 고구마


여기 열여덟 우리 따님나이 때부터 6남매 장손 식구들 밥을 해댄 6남매 막내 출신 정여사도 계시다. 그 덕에 부대끼며 모여 사는 게 인생이라는 걸 몸으로 기억한다. 잘 미워하고 잘 털어내는 걸 요즘 더 잘 알아 가시는 듯하다. 소복이 담긴 고구마 소쿠리를 들여다보면서 명상 중이셨을까?. 하루, 한순간도 부대끼며 살아내지 않을 수 없다, 아무도 답답한 마음을 달달하게 바꿔주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상처의 크기는 상관없다, 상처받는 순간도, 상처가 아무는 방식도, 상처를 날리는 타이밍도 다 다르다. 정여사는 항상 혼자서 궁리 중이다. 그러다 그렇게 그 마음을 폭 쪄냈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려준다. 스스로 식을 수 있게. 충분히 삭힐 수 있게.


그런 뒤 앞으로 쉽게 상처받아 끈적한 눈물을 그만 흘리라고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하는 상처에 꿀을 발라준다. 넉넉하게. 아주 넉넉하게. 그 위에 낮에 삼보 삼아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들른 방앗간에서 챙겨 온 우리 콩가루를 소복이 흩뿌려준다. 마지막으로 짭조름함 한 꼬집 추가. 손녀의 자그마한 바게트 위에다 수북이 직접 발라서 건넨다. 할머니 앞에서만 마음껏 울라고. 얼른 잊고 달달하게 시작하라고. 정여사는 그 아이의 아비, 어미한테는 더 진하게 달짝 짭조름한 처방을 내린다. 껍질 채 그대로 7초 정도 뜨근한 김을 씌운 뒤, 미리 끓여 낸 간장에 그만 푹 담가놓기만 하면 된다고. 시간이 약이라고.

고구마쨈, 고구마장아찌(핸드메이드. 정여사)


복작거리다 다들 돌아가 더 커저버렸을 빈자리. 더 벌려봐, 더, 더 하면서 다 퍼주고 비어 버린 빈 통. 그것들을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남겨진 두 분은 또다시 깊은 명상을 시작하실 거다. 이번에는 이 빈 공간을 뭘로 채울까, 어떻게 채워줄까 하고. 아무래도 내가 멀티플레이어로 그나마 이렇게라도 살아낼 수 있는 그 힘의 절반 이상은 밥심, 아니 김심과 정심이지 싶다.


그 덕에 털어내도 털어내도 계속 채워지는 냉장고. 때마다 오이지 깍두기가 고구마장아찌가 나를 올려다보며 이러는 것 같다.


살다 보면 어찌 입맛이 항상 있나, 없을 때도 먹어야지. 말아서도 먹고, 비벼서도 먹고. 그렇게 뜨끈한 거 한 그룻 속에 넣어야,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기지.


아~ 쉬엄쉬엄 해.

과식하지 말고, 과속하지 말고~~~~


#김여사정여사그리고김작까##나의 S(소울) F(푸드) 시리즈 4탄#오이지깍두기 앤 고구마쨈과 고구마장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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