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감탄寫] 36
일요일 오전 10시 20분. 아침도 점심도 아닌 시각. 잠과 휴식, 일의 그 중간쯤에 놓인 출렁다리 같은 시각. 뒤로 갈지 앞으로 나아갈지를 오로지 내가 결정해도 좋은 시각. 세상에 던져진 시간들 속에서 내가 남을 위해 일을 하고, 생각을 해야만 하는 것들을 멈추고 저에게 집중하기 딱 좋은 시간입니다.
잠을 자도 좋고, 차 한잔을 아주 천천히, 천천히 마셔도 좋습니다. 책을 봐도 좋고, 그러다 졸아도 너무 좋고, 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기만 해도 그냥 좋습니다. 마치 몸만 커진 아가 같은 곯아떨어진 식구들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참 좋은 시각입니다. 마냥 참 좋은 시각입니다.
그 아름다운 시각에 별다방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책을 읽고 있는데 늦잠과 브런치를 둘 다 즐기다 열아홉 따님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습니다. 제주무로 소고기 큐브를 싼 오마카세, 라며. 요리하기 좋아하는데 심지어 맛있기까지 한 아내의 작품입니다. 시간제(?)라 그 시간에 있는 식구들만 먹어볼 수 있는.
집밥으로 (후다닥 만드는) 요리를 먹을 수 있는 (흔하지 않은) 남편이라는 아내의 말에 일언반구도 없이 대찬성 중인 게 스물세 번째 해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아침, 점심, 저녁을 기록한 게 다음 달 중순이면 고작 일 년이 되어 간다는 게 너무 아쉽고, 속상하기까지 합니다. 좀 더 일찍 기록하기 시작할 것을.
시작은 그냥 재미삼 아였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긴 습관이 기록이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먹는다는 것에 대한 기록의 본질은 처음에는 '무엇'이었네요. 뭐, 어제처럼 생일날이서, 무슨 날이어서, 기분 좋은 날이어서, 맛있어서, 신기해서, 사랑스러워서, '무엇'을 먹었지.
그런데 계속 찍고 기록하다 보니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다는 건 '무엇'보다는 '어디에서 누구와'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써놓고 보면, 읽다 보면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먹는 행위를 하는 당시에는 촘촘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지점입니다. 익숙한 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 버리기 때문이죠.
우리는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는 물론 그렇지 않은 날도 먹어야 합니다. 떨어진 체력을 올리기 위해, 올라간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바닥을 치는 마음을 끌어올리기 위해, 방방 뜨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하지만 대부분은 먹는다는 행위에 그다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먹게 됩니다.
링거를 세 개다 달고 며칠을 드시지 못하신 어머님을 내려다보면서 생각이 듭니다. 먹는다는 행위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분명 살기 위해 먹는 것일 텐데 한 인생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는 살아있기 때문에 먹는 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먹을 때가 되어서 먹는 경우가 더 많죠.
먹는 행위의 본질인 '누구'와 '어디'를 잊고, 잃으면서 하루가 또 지나고 한 두 달이 금방 지워지듯 사라져 가는 게 참 아쉽(더)군요. 아무리 행복했고, 맛났고, 좋은 경험이었다, 고 해도 엊그제 점심때 뭘 먹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저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러니 당연히 뭘 먹었을 때 누구와 어디서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위로를 주고받고, 저렇게 살고 싶다, 살지는 말자를 다짐했는지도 사라져 버릴 테니까요. 아름다워서, 웅장해서, 신비로워서 더 허무한 무지개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무지개 자체가 허무한 게 아니죠. 무지개는 반대쪽에서 햇살이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이니까요. 정신이 하나도 없이 비바람이 불었다고 전해주는 아름다운 전령이니까요. 다시, 무지개를 보고 싶으면 내 등뒤에 햇살이 빛나야 한다고 알려주는 아름다운 기록이니까요.
저는 오늘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오늘을 기억합니다. 누구랑 어디서 무엇을 먹으면서 무엇을 나눴는지를 기록합니다. 저는, 우리는 몸을 통과해 결국은 다 사라지는 음식처럼, 다 사라져도 기록은 무지개를 기억할 테니까요. 또, 기대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