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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땅콩 까먹기

[ 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 04

by 정원에

이른 아침 휑한 주차장. 차에서 내리자마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도 모르게 콧속으로 찬바람이 훅 들이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텅 빈 운동장을 아이들 대신 밤새 가득 채웠던 냉기가 햇살을 따라 통통 튀어 올랐다. 초록색 인조잔디를 옅은 회색으로 만든 서리가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릴 듯이 얇은 천처럼 덮여 있다.



축구 골대 뒤쪽에서 내 발 앞쪽 정도까지는 아침 햇살이 내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서리를 가운데 안쪽으로 다 걷어 놓은 듯했다. 나는 햇살과 서리의 경계를 밟고 서 있었다. 일부러 서리가 내리 깔린 부분만 꾹꾹 눌러 밟으며 걸었다. 마치 맨발로 폭신한 여러 겹의 담요를 밟는 것 같았다.


아무도 지나지 않은 눈길을 내가 제일 먼저 밟으며 약수터로 향하는 지도를 두 발로 그리는 것처럼 뒤를 돌아보고 한번 더 돌아봤다. 요리조리 찍힌 내 발자국이 내 뒤에서 연신 '브이, 브이'하는 듯 실룩거렸다.


그러다 축구 골대 앞에서 멈칫했다. 서리보다 더 진한 새하얀 그물망 뒤에 알록달록한 배구공 하나가 있었다. 거기서 밤을 지낸 모양이었다. 그 순간, 느닷없이 아주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매일 그 길을 걸으면서 그 생각만 했던 것처럼, 아주 갑자기.



비행기가 바닷가 백사장에 비상 착륙한다. 납치범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조종사가 목숨을 걸고 승객들을 살려내기 위해서였다. 옆구리에 생긴 구멍으로 연기가 새어 나온다. 그 연기와 함께 주인공이 기어 나오다시피 백사장으로 굴러 떨어진다. 영화 <케스트 어웨이>의 시작 장면이다.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너무나 바쁘게 살던 직장인이 출장 중 갑자기 '무인도'에 떨어진 이후 4년이란 시간이 흘러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는 이야기다. 실제 무인도에 혼자 갇힌 영화 속 주인공은 윌슨이라고 이름 붙인 배구공을 친구로 삼는다. 말을 걸고, 스스로 대답을 하고, 화를 내고, 사과를 하고. 무인도 탈출을 시도할 때도 유일하게 챙겨간 게 배구공 친구 윌슨이다.



아마도 삼십 대 후반 언저리였을 거다. 시기는 정확하게 기억나질 않는데 <케스트 어웨이>를 보면서 자연스레 떠올랐던 그때의 상상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 기억이 아침 출근길, 덩그러니 혼자 있던 배구공으로 다시 떠올랐다. '나는 어떤 무인도에 갇혀 있는 걸까. 그 무인도에서 나에게 윌슨은 무엇일까'하고. 물론 그때는 스스로의 상상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로 30년 동안 또 어떤 놀라운 기술이 나타나 글쓰기를 배로 쉽게 만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때문에 글이 배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필요한 것은 수수하고 오래된 노력과 언어라는 수수하고 오래된 도구다”

_<글쓰기 생각쓰기>(윌리엄 진서,2023,돌베개>




번잡한 속도전을 멈추고 스스로 선택한 고독의 희열을 만끽하려 한다. 나를 기만하는 열정뒤에 숨는 대신 외부의 방해 없이 내면을 탐구하는 시공간을 찾고 또 찾는다. 피어오르는 생각을 멈추어 굴리는 놀이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내가 탄생하는 순간, 순간을 메모하고, 찍어두는 놀이에 푹 빠져 있다. 나로 나에게 말을 걸고 대답을 기다리는 놀이에 신이 난다. 운전을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걸으면서도, 잠 속에서도. 그 대답이 들리면 언제이든, 어디서 곤 멈추어 메모하고, 찍는다. 그런 나를 내가 내려다본다. 그때 나는 고개 들어 나에게 미소 짓는다.



'온기'가 느껴진다. 사라졌던 나의 '감각들'이 되살아 난다. 그때만큼은 먹을 것, 마실 것, 볼 것, 놀 것이 넘쳐 나는 나만의 '무인도'가 생긴다. 그 안에만 서면 기록한 글자의, 글의 목소리가 나를 통과해 나에게만 들린다. 잘 들리지 않으면 조금 더 기다리는 것도 좋다. 너무 좋다. 나를 즐겁게 한다.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되니까.



껍질이 잘 안 까지는 땅콩 한 알에 오기 부리지 않는다, 그때처럼. 땅콩 한 알에 내 마음을 몽땅 빼앗기지 않는데, 지금은. 다른 땅콩 한 알을 집어 까보면 된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40대 내내 잊고 살았던 그 답이 요즘에 와서야 조금씩 보인다. 난 결코 무인도에서 벗어나려는 게 아니었다. 나만의 무인도를 갖고 싶었던 거였다. 나만의 '무인도'를 찾아 헤매고 있었던 거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나’를 쓰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슨 특별한 권리라도 있어야 하는 것처럼 여긴다. 아니면 자기중심적이거나 품위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_<글쓰기 생각쓰기>(윌리엄 진서,2023,돌베개>




이제야 내가 나에게 와 닿았다. 닻을 내린 채, 비로소 표류하던 망망 대해에서 '무인도'로 뛰어내렸다. 매일 매일, 땅콩 한 알, 한 알 까먹으며 잘 놀기만 하면 된다,





[지담_글 발행 예정 요일]

토(외출전 발행) : 아빠의 편지

일(외출전 발행) : 아빠의 편지

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월요일 새벽에는 브런치 성장 일지 [브런치 덕분에]를 발행합니다)

화(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수(출근전 발행)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목(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

금(출근전 발행) : 고3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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