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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나아지길 바래

[브런치 덕분에 02 ] 2025년 2월 결산271

by 정원에

이번 달은 브런치에 글을 쓴 지 41개월째이다. 여덟 살 때 학교에 들어가 지금껏 다니고 있는 것,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것.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습관이다. 나의 브런치 이미지에 있는 '자꾸 하면 습관 된다'를 내 삶으로 체화하는 실험 중인가 보다.


올 2월 들어 , 매일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1월 18일부터다. 일 년간 매일 쓰던 나를 멈춰 세운 뒤 6개월 만이다. 스스로 멈춰 세운 이유를 더듬어 보면, 다시 매일 쓰겠다는 이유와 통한다.


18일부터 36일간 39개의 글을 발행했다. 지금까지 누적된 글은 이글까지 672개이다. 그러는 사이 36일간 구독자는 일흔여덟 분이나 늘었고, 2주 만에 쉰두 분이 증가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 가장 단기간에 급증한 거였다. '구독자 급등' 작가는 처음 겪는 일이다.


갑자기 내 글이 읽어줄 만해졌거나, 무언가를 전해준다거나, 구독자 개인의 삶에 어떤 큰 의미를 전해주기 시작한 것은 아닐 거다. 그러나, 분명한 건 1월에서 2월로 넘어오면서 서서히 글이 변화하고 있다는 거다.


가장 큰 변화중 하나. 낮에 일하고, 밤에 야근하면서도 머릿속에 그날 써야 할 글감이 계속 따라다닌다. 제대로 된 글을 쓰는 흉내라도 내려면 글감을 익히고, 조사하는 과정이 충분해야 할 텐데,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잊고 있었다. 물론 바빠서이지만 그것보다 즉흥적으로 글을 썼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리거다. 훅하고 떠오르는 글감을 내 서랍에 일단 써 올려놓은 뒤, 잊는다. 그렇게 쌓인 글감은 글을 쓰려는 화면을 켰을 때 다시 떠오른다.


이건 뭐, 거의 천재 작가 수준 아닌가? 아니다. 천재작가 보다 더 하다. 한두 시간 만에 라면 먹듯이 후루룩 쓰고는 열몇 시간, 몇 날 며칠 동안 쓴 글만큼의 기대(?)를 혼자 하면서 글을 쓴 거였다. 분명히, 안 쓰던 수많은 날들보다는 훨씬 더 내 삶이 안정적인 것은 맞다. 이 점은 정말 다행이다 이건 내가 나에게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습관이 된 버릇이 잘못 들었던 거다.


그다음의 변화는 필체다. '가르치기'를 멈추려고 끊임없이 애쓰기 시작했다. 아, 물론 이전에도 그랬지만, 말만 그랬나 보다. 뭐 그렇게 많이 알고 있다고, 잘 살아내고 있다고 가르쳐 들려하는지. 아닌 척하면서 '꼰대리아, 아제라떼'의 세계에 갇혀서. 스물다섯 해를 넘게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어 몸과 마음에 밴 습관 때문 일거다. '자꾸 하면 습관'되는 거니까.


남매들에게 남기고 싶은 '아빠의 유산' 브런치북을 쓰기 시작하면서, 필체에 대해 좀 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의 다중적 역할)로 '어떻게' 시행착오를 (여전히) 겪고 있는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거였는데, 쓰다 보면 '이래라, 저래라'하는 나를 매번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쓰기를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인 것 같다. 앞에서 학교이야기를 꺼낸 이유이기도 하다. 세 번째 직장인 학교에서, 나의 본성(지금 이제야 조금씩 느끼고 있는 그 무엇. 계속 찾아가야 할 과제이다)과 잘 어울리지 않는 그곳에서 가장 오래 머물 수 있었던 것이 글쓰기를 가장 크게 방해하는 것이었다.


가르치는 게 가장 쉬웠고, 글에서도 내내 가르치려 했다. 가르치려는 사람은, 확신에 차 있어 더 위험하다. 가르칠 수 있는 '그만큼 만'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저것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칠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세계의 문 앞까지는 늘 갔다 돌아왔기 때문에 계속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다 나타난 못된 버릇이 하나 있다. 다른 이의 글에 댓글을 편안하게 달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아, 물론 댓글을 달았지만, 그러다 말았다. 왜? 시간이 없었다, 읽지 못했다, 마음이 급했다, 내 글을 쓰는데도 벅찼다. 읽어야 할 글은 쌓였고, 읽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또 내 안의 덜거덕 거리는 바구니 속에 갇혔다.

조금 정신 차리고 보니 댓글을 '잘'은 고사하고 달 자신이 없었던 거였다. 의미를, 가치를 부여하지 못했던 거였다. 그 시간에 한 페이지라도 더 읽고 싶다, 는 얇은 생각에.


언젠가 내 글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었다. '모든 글은 위대하다'. 그때의 느낌을 유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쓰는 것은 분명 고통이지만, 그 고통뒤에 따라오는 찜찜한 즐거움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깨달았다. 내가 댓글을 등한시하는 진짜 이유를. 그 안에는 질투와 시기가 양파처럼 냄새를 풍기며 웅크리고 있었다. 가르치려 드는 사람의 감정적 특징이다. 게다가 그럴싸한 핑계마저 생겼었다. 돈을 건네며 '서로 응원'하라는 시스템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돈을 받을 수 있는, 응원을 받을 만한 글을 쓸 자신이 없던 나는 그렇게 서둘러 감추느라 댓글창을 외면했다.


40개월 전에도, 아니 그 이전에도 내가 아무도 쓰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어느 날 낙서로 시작했다. 아무런 요구도, 욕구도, 욕심도 없었다. 글에 대한 열정마저 제대로 피어나지 않았을 때다. 브런치를 몰랐고, 책 몇 권을 들고 가 읽으려던 자리에서 반나절 넘게 낙서만 했던 나였다. 낙서 안에 진짜 내가 있었고, 그런 나를 혼내는 내가 있었다.



순수



다른 것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상태. 오로지 '존재와 행위 자체'만을 피상적으로 외치면서 나는 겉으로 짐짓 순수하게 글만! 이라며 웅얼거렸지만 내면은 전혀 순수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내면을 나는 여전히 외면했다. '감정이란 순수할 수 없다'라고 한 소로우의 고백을 못 알아들은 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감정생활은 복잡한 것이다. 무엇을 느끼는지 우리가 항상 아는 것은 아니며, 항상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느끼는 것도 아니다. 되레 감정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서 감정을 갈구할 때도 있다. 하지만 소로의 말처럼 감정은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지만 순수하지는 않다.

_크리스타 K. 토마스, 악마와 함께 춤을, 2024, 흐름출판, p.270



1월에서 2월을 지나면서 새벽 시간의 마무리를 독서 대신 다른 브런치 작가의 글을 읽고 댓글에 다는 데 활용하기 시작했다. '새벽 친구'들이다. 출근하기 전, 30분의 독서 시간을 구독자 분들을 타고 들어가 읽고, 댓글을 단다. 글 친구들을 그렇게 나 혼자 기다리고, 만나고,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역시 41개월 만에 처음이다.


↳ 읽는 내내 저를 살리느라 힘껏 돌고 도는 뜨거운 피를 느끼게 됩니다! '그냥 만들었어'

아버님은 분재를 만드시는 내내 작가님과 가족과 그리고 그리운 모든 이들과 대화를 나누신 건 아닐까요?

'그냥 쓰고 싶어서 썼어'라고만 대답하게 되는 저를 또 한 번 안아주고 싶게 만들어 주시네요~


↳ 잠깐 동안 유럽 기행을 다녀온 것 같아요. 나라는 주제를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던져 넣고 가장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가장 지키고 싶은 내가 누구인지, 가장 끌리는 나의 에너지가 어떤 상태인지를 망망대해를 빌려 그들의 일상을 빌려 더 또렷하게 깨닫는 여정!!! 삶이 크루즈라는 것을!


읽다 보니 자식과 부모는 친구이고 동무이고 경쟁자라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경쟁에서 고상하고 우아하게 이기시길 응원드립니다~^^ 할 말 다 하고도 같이 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ㅎ 응원합니다~ 작가님^^


비어 버린듯한 공간을 가득 채운 허전함을 작가님만의 온화함으로 그득그득 채워보시길 응원합니다~ 글로도 그림으로도 그리고 사람으로도!!! 전 작가님의 뜨거운 여름을 상상만 합니다~~


작가님 글에 자주 등장하시는 어른들의 삶의 태도에서 '내가 나를' 믿는다! 는 정체성을 볼 수 있어 참 좋아요~ 인간이 인간의 미래라던 데카르트의 확언을 뜨개질로 분재로 나눔으로 보여주시는 듯해서요~


내면의 믿음을 믿고 관성대로 움직이다 보면 나도 모르는 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겁이 나서요~ 겁쟁이거든요 ㅎㅎ 깊이 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참 귀여운 '살찝' 통통한 치즈네요ㅎㅎ 중2 때예요. 분명. 학교에서 걸개스크린천에 영사기로 틀어준 영화(제목은 ㅜ). 너무 무서웠어요. 고양이가 사악한 영혼이 되어서 마을 사람들을 마구 공격하는... 누군가의 손톱을 먹으면 그 고양이가 그 사람의 그림자가 되어 밤마다 같이 산다는.... 여기까지는!!

울따님을 만나기 전 냥이에 대한 저의 나쁜 경험,이었는데 작가님처럼, 따님처럼 길냥이들 만나기를(기다리는 듯) 통조림을 가방에 넣고 다녔어요~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으면서도!! 밤새 지하주차장에서 제 차위를 뛰어다니는 그 녀석들의 흔적에 미소만 짓는 이유가 되었네요~ 그러게요. 뭔 자격으로 내쫓을 수 있을까요~


ㅎㅎ 제일 좋은 응원과 지지를 받으시기 시작하셨군요!

"그려려니"

이 응원에는 '뭐, 쫌 열심히네~ 나는 못하지만, 나는 하기 싫지만 잘 되었으면 좋겠어!!'가 그득히 들어있거든요!!! 작가님~ 매일매일 '그려려니'해요~~^^


작가님은 위대합니다. 모든 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마음'이 저에게 큰 희망의 무지개가 되어줍니다. 어디건 아름답게 건너가게 해주는! 그 첫걸음이 1월 18일이었지요. 일 년 넘게 매일 쓰다 몇 개월을 멈춰있던 내가 다시 매일 쓰기 시작했거든요!! 그 위대함에 늘 감사합니다~^^


그곳에서 하는 쥐불놀이는 정말 성대하고 멋졌을 텐데요 ㅎㅎ 내년에는 꼭 나가보셔요~ 제안에 있던 불깡통에 불씨가 사그라들 때 작가님의 불씨가 하늘을 타고 저의 불깡통에 떨어진 것 같아요. 허연 잿더미 속에서 불씨가 살짝, 살짝 보일락 말락 하거든요. 쓰다 보면, 하다 보면 나아지겠죠? 제가 아주 좋아하는 노랫말처럼요~

'차차 나아지길 바래 차차 나아지길 바래'


저는 여행을 가면 좋은게 두가지가 있어요~ -내 일상에서 살짝 빗겨나 멈춰보기 -다른 일상에 슬쩍 올라타 비춰보기. 그러다 보면 결국 여행은 내 일상으로 돌아올 이유를 찾으러 떠나는 게 아닐까 싶어집니다~~


주어진 것을 그저 즐기는 순간, 순간을 행복이구나, 잘 산다, 난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는 착각속에 살지는 않나 싶어집니다. '자만'이지 싶어요. 그것들에 내가 보탠 에너지가 무엇인가를 돌아보라고 다그치는 내 안의 또 내 덕분에 안 써지는 글이 더 안 써집니다 ㅎㅎㅎ 비슷한 마음으로 그곳에서 사신다는 말씀에 진심으로 건네주시는 공감에 참 좋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운집해 있는 거대한 스탠드 맨 뒤 꼭대기 기둥에 기대어 눈만 감았을 뿐인데 군중의 함성소리가 닫치고 고고한 새벽의 미세한 진동만이 느껴지는 것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나도 데려가라' 내 맡기시는 태도에서 ... 눈을 감고 다시 읽게 됩니다.

'관조'


내가 걸어 온 길이,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나의 길인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는 길인 것 같아요~ 그냥 한마디 내뱉고 또 이 길을 걸어야겠습니다ㅎ

'어쩔!'


세상 모든 껍질의 숙명은 벗겨지는 것이겠지요. 단, 하나만 제외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제 껍질을 스스로 벗겨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작가님의 오늘 글 덕분에요. 더욱!


아고, 작가님에게 조금이라도 가 닿았다니 참 좋습니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건 죽은 자들과의 대화만큼 살고 있는 자들의 글을 조금 더 마음으로 읽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가님 처럼요 ㅎㅎ)


짧은 한 편의 글이 모여 모여 책이 되는 되는데, 내 글 쓰느라 바쁘다고 못 읽어내는 게 아닌가 싶어지네요~

깊이만큼 여유도 창조하지 못하는 습관때문이겠지요. 정말 작가님 덕분에 이것도 저것도 다 배움 천지입니다 ㅎㅎ


동/병/상/련 이지만 부럽습니다~~~ 무궁무진하게 쓰고 싶은 것들을 지니고 계신 것 아니신가요?

신독!!

괴롭지만 즐거움이 공존하니 끊임없이 쓰실 듯 ㅎㅎ 글로 자주 뵙겠습니다^^


주3회 쓰다 매일 쓰게 된 '동반자'!! 다 작가님 덕분입니다~ 아직 광기! 는 옅지만(아 ... 아직 없을지도)

읽다보면 도달할거란 믿음을 갖습니다. 매일이 빽빽한 대숲사이로 마라톤을 하는 심정으로~~~


한동안 빠져지내던 '사람책'이 요즘 다시 떠오릅니다. 사람 하나하나가 바로 책이라는 의미가 작가님의 오늘 글에 가 닿는 듯 합니다. 같은 공간에서도, 같은 풍경과 지내면서도 이성과 정서의 결이 같을 수가 없는 이유이지 않을까 해서요. 그래서 다양한 공간에서 다채로운 풍경을 껴안고 자란 이들과 더 많이 만나는 게 내 앨범을 좀더 살아 움직이게 산다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작가님^^


자타로 수많은 비교의 결과로 자기봉착에 빠진 헛 지식의 굴레를 생각하게 됩니다~ 자연이 품고 있는 세상 모든 진리가 다학제적 접근일텐데 오랜동안, 여전히 나뉘고 갈라진 배움이 원인이겠구나 돌아보게 됩니다~


말이, 글이 오로지 나의 영혼에 적셔져 자연스레 스며 나오기를 스스로 응원하며 오늘도 침묵하고 오늘도 읽으면서 가 보겠습니다! 작가님에게 받은 기운으로요~~


의문이 질문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내 안에서 사그라들면.....옹졸한 겁쟁이, 헛똑똑이, 간서치, 애매한 내가 되는 것 같았어요~ 메모라도 해놓으면 덜 미안해져서 급 룰루랄라하게 ㅎㅎ


그렇게 마음으로 늘 담아내 주시는 작가님은 내면에 맑고 깊은 온천수가 흘러 넘치시는 게 분명합니다~

오늘도 마음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달 사이에 나는 '상위 9%'에 속하게 되었다. 몇 시간 동안(만 고민하고) 쓴 글 (가르치려는 글)로 많은 이들이 읽어주고, 공감해주기를 바랐다. 글속에 담긴 '무엇'에 대한 고민은 적었고, '카피'처럼 와닿는 표현에 더 큰 욕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글이라도 잘 쓰면 모를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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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최근 한달간은 그러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실제 글을 쓰는 시간도 한 두 시간 늘었지만, '어느 주제로 어떤 결말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하루 종일 따라 다닌다. 그러는 사이 글감이 바뀌기도 하고, 문장이 머릿속에서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가지고 있던 좋지 않은 버릇을 밀어내는데 열중하게 된다. 바로, 글감 한개만 가지고 글서랍에 요일별로 미리 넣어두는 짓을.


앞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그렇게 그냥 쳐박듯 넣어 둔 글감은 글을 쓰겠다고 앉은 그 순간에만 의미가 있어져 버린다. 그 글감을, 떠오른 영감을, 쓰고 싶은 주제를 나름대로 '숙성'시키는 게 아니라 말그대로 '서랍에 보관만'해두는 버릇을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달 동안은 이렇게 쓴다. '오늘은 오늘 쓸 글만 계속 데리고 다닌다.'


순수함에서 시작된 모든 글은 위대하다. 불순물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글을 쓴다, 는 사실이외에는 아무것도 덧된 게 없다. 자세의 순수성이다. 댓글은 더 위대하다. 그 이유는 나에게 댓글이 주르륵 달렸을 때, 한 분 한 분의 (구)독자의 댓글을 읽으면서 차 오르는 내 감정을 되짚어 보면 잘 안다. 게다가 댓글은 가장 좋은 글쓰기 연습이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40개월이 넘어서야 조금씩 알게 되는가 보다.


글은 읽어야 쓴다. 그 글을 읽고 작가가 말하려고 표현한 핵심, 드러난 핵심 사이에 숨겨져 있는 진짜 의미를 찾아내는 게 제대로 읽는 것일텐데, 짧은 시간에 그것을 흉내내기에 정말 좋은 연습이 바로 댓글이었다. 댓글은 소통을 전제로 한다. 댓글을 다는 이유는 소통을 원하기 때문이다. 단절과 고립이 아닌 생각의 교류와 공유, 차이점에 대한 재발견.


이는 다양한 관점을 만나면서 자신의 사태를 제3자의 시각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 기회는 현실적으로 넘쳐나는 '글의 소재'로 이어진다. 내 내면의 빈 방중 한 방 가득 글감을 쌓아 놓고,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움직일 때 마다 글감은 따라 다니는 것이었다. 읽고 내 의견을 표현하면 더 쓰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댓글은 사는 힘을 준다. '내가 뭐라고' 내 글을 찾아와 읽고, 마음까지 나눠주었다니...'. 댓글은 찜찜한 통증을 쓰다듬어 주는 엄마손 같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쓰는 고통을 아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그래서 댓글은 순수한 사랑이다. 사랑한다는 건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글쓴이를 그대로 내버려 두겠다는 다짐이다. 그래서 글쓴이가 글을, 자신을 더 진심으로 사랑하게끔 해준다.


여전히 찾아 읽지 못하고, 다는 댓글이 더 적지만 사랑을 더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브런치 2월 활동을 결산하다 보니 드는 생각이다. '오늘도 안 되는 글 쓰느라 애썼지? 그래도 오늘도 또 썼네! 썼어!!'


다시 한번 흥얼거려 본다.


"차차 나아지길 바래, 차차 나아지길 바래!!"




[지담_글 발행 예정 요일]

일 : 아빠의 유산

월 : 문장 유람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월요일 새벽에는 브런치 성장 일지 [브런치 덕분에]로 대체 발행합니다)

화 : 고3의 기술

수 : 문장 유람

목 : 모괜당(모든 게 괜찮아질 당신)

금 : 문장 유람

토 : 금주의 영靈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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