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그나' enabled my growth!◔ 발코/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사회자 발코입니다. 오늘은 (읽어보기 클릭) 지난 시간에 이어 [문장유람-人터뷰] 두 번째 순서입니다, 오늘도 정말 어마어마한 분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작가들의 작가 윌리엄 진서 작가, 에세이스트 김은경 작가, <쇼생크 탈출>, <미저리>의 원작자이자 미국의 전설적인 소설가 스티븐 킹 작가, 우리나라 대표적 소설가 김영하 작가 그리고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섭외에 응해 주신 은유 작가입니다.
자, 구독자분들께서는 이미 오늘 주제를 눈치채셨죠? 네, 오늘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문장유람-人터뷰] 두 번째 주제는 바로 우리 모두의 관심사 ‘글쓰기’입니다. 오늘도 그중에서 특히, '무엇을', '왜' 쓸 것인가에 대해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럼, 지담 작가의 질문으로 시작해 볼까요?
▬ 지담/ 네, 지담입니다. 급한 마음에 질문 바로 하겠습니다. 어떤 분이든 먼저 말씀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요즘 제가 글쓰기와 관련해서 엄청나게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 먼저 드리고 싶은 질문은 ‘길이’입니다. 글이 계속 길어져요. 조금 깊이 있게 쓰려면 더욱 그렇게 됩니다. 왜 길어만 질까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 스티븐 킹/ 제가 먼저 말씀드려 볼게요. 작가들이 더 긴 문장을 쓰는 이유는 ‘걱정’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가 자신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사족을 붙이는 거죠. 진짜 이야기하고 싶은 말 앞뒤로 사정없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근심이야말로 형편없는 산문의 근원(주1)이 되는 겁니다. 이런 산문은 쓰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지만 읽는 사람은 오히려 아주 편안하게 만들어 주죠. 책을 덮어 버리면 되니까요.
주1>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2017, 김영사
▬ 지담/ 아! ‘근심 걱정’때문이라.... 네. 그런 것 같아요.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 정해지지 않을 때는 한 없이 글이 짧았는데, 반대로 무엇을 써봐야겠구나 하고 나니 길어집니다. ‘내 말이 먹힐까’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나 봅니다. 책을 덮게 만드는 헛말만 늘어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스스로도 듭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윌리엄 진서/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글을 쓰는 목적에 따라 차이가 분명 있지만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 난삽함이라곤 전혀 없는 부드러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합니다. 대가여도 마찬가지죠.
그런 고민이 없다면 책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문장은 단 한 번에 쓰여져야겠지요. 답은 의외로 간단해요. 난삽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치워버리는 것(주2)입니다. 생각이 명료하면 글도 명료해져요. 생각이 흐리멍덩한 사람이 훌륭한 글을 쓰기란 불가능하죠.
주2>윌리엄 진서, 글쓰기 생각쓰기, 2007, 돌베개
그런데요. 처음 글을 막 쓰는 사람들은 길게 못써요. 왜냐하면 나올 게 없기 때문이죠. 피상적이기 때문이죠. 글이 길어진다는 사실은 좋아지는 길목으로 접어든 겁니다.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변화이니까요. 하지만 과유불급입니다. 멈추지 못하는 게 문제죠. 독자를 멈추게 하니까요.
길이 좀 길어지는 단계라면 쓰기 전에 생각을 먼저 정리하세요. 노트에 하던, 빈 여백에 하던 정리한 생각을 가지고 시작하세요. 첫 문장부터, 제목부터 쓰려고 하지 마세요. 쓰지 마세요. 평범한 말, 빈말, 흉내 내는 말만 모여들기 때문입니다.
◔ 발코/ 네. 두 분 모두 시작부터 아주 강력하지만, 현실적으로 필요한 조언을 해 주고 계십니다. 좋습니다. 저 또한 감사합니다. 글을 잘 쓴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것 같아요.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들도 막상 쓰기 시작하면 한 문장도 쉽지가 않아요.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재능이 없으면 글쓰기를 그만두어야 할까요? 구독자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뻔한 거짓말만 내뱉고 있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 은유/ 글쓰기의 출발은 소박하죠. 기억 작업이고 자기 구원입니다. 하지만 쓰는 일은 지겹고 괴로운 반복 노동(주3)입니다. 괴로움이 어느 쪽이 더 크냐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죠.
주3>은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2023, 김영사
쓰는 괴로움이 안 쓰는 괴로움보다 더 큰지, 작은지. 그런 다음에 생각해 보면 되죠.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내 안에 있는지,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지, 살아간다는 것 자체에 대한 애달픔이 아직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 지담/ 아, 저는 이거 하나는 확실하네요. 안 쓰는 괴로움이 더 큽니다. 쓰지 않았던 때 사라졌던 '나'가 쓰면서 다시 돌아왔거든요. 좀 제대로 사는 것 같거든요. 새벽에 거뜬하게 일어나 져요. 쓰려고 할 때는 설레요. 엔도르핀이 세워 나와 정신에 활력이 돌아요. 몸도 깨어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죠. 그다음 문제가 항상 걸립니다.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입니다. 여기에는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가 포함되죠. 그 무엇과 누구에서 아직도 여전히 매일 헤매고 있습니다. 쓰는 행위가 또 다른 욕망이 되고 있나 싶기도 하고요. 도와주세요.
▯스티븐 킹/ 다시 제가 한 말씀드리죠. 저는 소설가입니다. 소설가에게는 구체적인 ‘재료’가 필요해요. 그런데요. ‘재료’라는 게 바로 글감입니다. 글감 간의 연결 구조를 다차원적으로 시공간 사이에서 풀어내면 소설이지만, 특정 방향에서 바라보는, 단층적인 시선 처리 역시 훌륭한 글입니다. 그게 에세이고, 칼럼이 되는 겁니다.
모든 글 속에는 ‘상황’과 ‘인물’이 등장하죠. 이게 바로 '재료'입니다. 이것들 사이에서 ‘그저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다가 그대로 받아 적’(주4)는 연습을 계속해 보세요. 그 안에 묘사, 은유, 비교, 강조 등의 악센트를 주면서요. 모든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습작 노트'. 그게 필요한 이유예요.
주4>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2017, 김영사
▮ 김은경/ 네. 저도 ‘상황’과 ‘인물’을 관찰해서 기록하는 연습에 많이 공감합니다. 그 연습을 매일 하는 게 중요해요. 바쁠 때 바쁜 대로, 느릿할 때 느릿한 대로 어떤 감정을 느꼈거나 기억에 남았던 것들에 주목하세요.
어떤 지점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면 거기에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주5)이거든요. 그 감정을 평소에 잘 기록해 주는 습관, 상황과 인물을 관찰하는 연습을 빛나게 만들어 주는 쓰는 습관이라고 생각해요. 안 쓰고, 못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계속 쓰고 있는 거죠.
주5>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2021, 호우
▯은유/ 맞아요. 지난번 모임 때도 한번 말씀드렸는데요. 데이비드 실즈가 이야기한 것처럼 글쓰기는 나만의 속도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안전한 수단입니다. 욕하거나 탓하지 않고 한 사람을 이해하는 괜찮은 방법(주6)이죠.
이렇게 좋은 사람으로 더 많이 살고 싶어서 사소한 것이라도 찬찬히 살피고 다르게 보려고 애쓰는(주7)것은 충분히 해낼 가치가 있는 노력인 것이죠. 쓰인 글은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찰의 총합이니까요.
주6, 주7>은유, 쓰기의 말들, 2023, 어크로스
그런데요. 에세이, 칼럼, 논문 등 모든 글에는 하나의 메시지, 하나의 질문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메시지가 없는 미사여구의 나열은 공허하죠. 지식은 넘치고 지혜가 빈곤한 글은 무료합니다. 사소한 것들을 찬찬히 관찰하는 것들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글쓰기 전에 스스로를 설득해야 합니다. ‘이 글을 통해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주8) 하고. 그 설득 과정은 온통 '상황'과 '인물'에 대한 자체 검열, 평가, 판단으로 가득해지겠죠.
주8>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2015, 메멘토
▬ 지담/ 맞아요. 그게 문장이 길어만 지는 핵심 이유이지 싶어요. ‘어떤 메시지’가 스스로와 약속이 되지 않은 상태로 쓰기를 시작해 버리는 거죠. 왜냐하면 릴케의 표현처럼 글을 쓰지 않으면 내 존재의 이유가 소멸되어 버릴 것 같다는 확신이 조금씩 들기 때문입니다. 마음만 바빠진 상태죠.
그렇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 건 분명해요. 저는 믿기지 않거든요. 3억 부가 넘게 팔린 소설의 저자인 스티븐 킹 작가도 ‘작가지망생’이었다는 사실이요. 저는 희망을 찍어요. 일상에서 밥을 먹을 때, 산책을 할 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휴대폰으로.
원래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아니, 글을 쓰겠다고 한 뒤에도 한참 동안에요. 그냥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거죠. ‘재료’를 모으지도 않고, ‘관찰 연습’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찍어 두고는 자주 들여다봐요. 그러면 그때의 장면이, 느낌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럼 그 장면에서의 느낌으로 첫 문장을 일단 시작하기는 가능해집니다.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는 훨씬 더 수월하게요.
하지만 난관은 여전히 남아 있죠. 왜 써야 하는지, 무엇을 누구에게 써야 하는지 이제 조금은 알겠는데, 그다음이 문제죠. ‘어. 떻. 게!’
▯스티븐 킹/ 잠깐만요. '어떻게'로 넘어가기 전에, 이 점 하나는 꼭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결과에 치중합니다. 조금 운동하고 많이 건강해지고 싶어 하죠. 글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많이 써야 해요. 그래야 조금 나와요. 무엇을 왜 쓰는가? 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에요.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지름길도 없어요(주9). 뻔한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글에 대한 찬사만을 기다리는 이들이 의외로 많아요. 사는 방식대로 쓰면 안 됩니다. 거꾸로 살아야 합니다.
주9>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2017, 김영사
◔ 발코/ 와, 대작가들도, 지금도 여전히 많이 읽고, 많이 쓰신다.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사소한 것들을 관찰한 결과 ‘아, 이 메시지를 쓰고 싶다’라는 결론을 스스로에게 설득시킨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즐거울 것 같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지금도 이런 글쓰기의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고 계시나요?
▮ 김영하/ 아, 그렇지는 않습니다. 늘 고민이죠. 어떻게 하면 글쓰기가 계속 즐거울 수 있을까? 작가와 창작물 사이의 일종의 허니문 같은 시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어떤 에피파니일 수도 있겠죠(주10).
글쓰기가 오래되면 즐거움만 가지고는 헤쳐나갈 수 없는 영역들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돼요(주11).
일단 그때까지, 자신만의 허니문을 길게 즐기기 위한 요령이 필요합니다. 이 영역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답을 찾아야 하는 겁니다. 아마추어도, 프로페셔널도 모두 같습니다.
주10,주11>김영하, 말하다, 2015, 문학동네
◔ 발코/아, 그렇군요. 왠지 김영하 작가의 말을 듣고 보니 저조차도 자신감이 조금 생깁니다. '아마추어도, 프로페셔널도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쓰는 게 즐겁지만은 않다.' 그럼, 다음 주제는 ‘어떻게 써야 할까?’ 정도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지담/ 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일단, 오늘 저는 왜 ‘길어만 질까’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아 아주 유쾌합니다. 오늘 이 인터뷰 역시 기네요 ㅎㅎ. 그래도 인터뷰 글이라서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어. 떻. 게’ 써야 할까로 다시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구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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