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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이 또 가버리기 전에

[ 잘 놀줄 아는 사람 ] 08

by 정원에

대지에 생명을 의탁한 모든 것들이 눌렸던 스프링 튕기듯 스스로를 밀어 올리는 봄이다. 세상 모든 씨앗이 발아한다. 새순이 움튼다. 꽃들이 발화한다. 그런데 한참 멈춰 찬찬히,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씨앗이, 그 꽃들이, 그 생명이 작년에 만났던 그 봄이 아니다.


또 봄이 왔다고, 으레 봄이라고, 봄을 안다고 나 혼자 흥에 겨워 하고 있는 거였다. 비와 눈을 좀 맞아 봤다고 하늘을 다 안다고 떠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음이다. 경도, 위도 몇 줄 그어 볼 줄 안다고 지구를 알 턱이 없는데도.


자연의 야생이 발악하는 사이를 걸으면서도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볼멘 생각만 한다. 맞고도 틀린 말이다. 타고난 나의 숨보다 더 많이 헐떡이며 고개를 떨군 채 누군가의 뒤꿈치만 보고 죽을 둥 살 둥 따라 뛰면 인생이 마라톤이(었)다.


따라 뛰는 뒤꿈치만큼의 등수에 만족하고 싶(었)다면.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뛸 수 있을까. 어디까지 그렇게 달려야 할까. 계속 달려야만 할까. 즐거워도, 지루해도 이 봄은 또 가버릴 텐데.


내가 혼을 빼놓고 바라보던 꼬질한 뒤꿈치가 찰나의 순간에 사라지면 영원히 나의 본성으로 살아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자연이 슬쩍 매번 던져 놓는 봄은 문명에 개의치 않는다. 허울 좋은 문명의 썩은 내가 몸과 정신에 인이 박인 대로 봄의 야생성 앞에서 호들갑만 떠는 건 나다. 겨우내 봄을 바라기만 했지, 함께 해 주지는 못했으면서.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장 작은 새가 지은 집의 구조나 아름다움, 편리함을 흉내조차 낼 수 없다. 아니, 보잘것없는 거미가 만들어내는 거미줄조차도 흉내 낼 수 없다. 플라톤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 만물을 만드는 것은 자연, 우연, 기술 가운데 하나다.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자연이나 우연이 만들고, 가장 못나고 불완전한 것은 인간의 기술이 만든다.(주1)

주1 > 몽테뉴, 식인종에 대하여 외, 2020, 책세상, p.26


이제라도 나의 야생성을 찾아 나의 길로 접어들어야 할 때다. 아무런 장치 없이 '나' 자체만 지니고 나아가야 한다. 나의 고된 언덕도 넘고 나만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나의 숨만큼, 나의 길로 내 달려야 한다.


그 길이 나의 야생의 본성을 틔울 꽃길이다. 그 길은 언제나 내가 1등인 나만의 길이다. 그 길에서 만나는 봄에 푹 빠져 몸과 정신에 베긴 냄새를 털어내려 흔드는 게 진짜 꽃놀이다.



불편함을 즐기는 끈기의 꽃

불가능에 도전하는 저항의 꽃

고통을 받아들이는 숭고의 꽃

억압과 제약이 거름이 된 생명의 꽃

자연의 일부처럼 살아가는 조화의 꽃



천만다행인 건 그 꽃놀이에 이미 빠졌던 많은 성현들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그들을 만나다 보면 뼈저리게 느낀다. 글은 생각을 잘 표현하려 선택된 '단어'들의 나열이다. 그들의 단어가 내 눈을 통해 들어와 잠자던 나의 '정신의 이미지'들을 흔들어 깨운다.


누구나 산다. 하지만 '잘'이라는 음절 하나를 덧붙이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서 갈린다. 왜냐하면 '잘'은 자신만의 '정신의 이미지'를 제때, 제대로 형상화하고, 현실화해서 잘 데리고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온몸이 쭈뼛해진다. 이 봄마저도 파괴적 꽃놀이에 빠져 지내기만 한다면 나이 빼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데도 내 안의 '정신의 이미지'들은 오히려 종류도 줄어들고, 형태는 일그러지고, 고약한 냄새만 풍기는 참혹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읽는다 해도 깨닫지 못하고 혹여나 깨닫는다 해도 깨달은 대로 살지 못하게 될 테다. 그러니 발악하는 봄 생명처럼 좀 더 나의 중력을 거스르며 밀어 올려야 하지 않을까. 하던 대로 하지 말고, 살던 대로 살지 말아야. 그래야 나도 언제나 나의 야생에서 1등인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은가.


단, 한 가지만 잊지 않으면서. 여전히 겨울 안에 머무는 이가 주변에는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진짜 꽃놀이를 맛본다고 나의 봄을 자랑하지도, 강요하지도 말아야 할 거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진짜 꽃놀이를 하면 배어 나올 수밖에 없다. 본성의 눈빛으로, 야생의 언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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