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수요일. 아침에는 평소보다 집에서 일찍 출발했다. 이십몇 년간을 2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를 움직여 다녔다, 는 사실을 40여분 남짓하게 운전해서 언덕 위 운동장 쪽 공터에 차를 세운 뒤 새삼 느꼈다. 같은 방향으로 가끔 주말 드라이브를 다닐 때는 몰랐던 사실이다. 타로 운동장 옆 주차장까지 올라온 뒤 다시 운동장에서 본관 건물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 동안,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오는 듯 한 낯선 이들과 눈인사, 목례를 나눴다. 그러는 나를 기다랗고 붉은색의 오래된 5층 건물은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근무해야 하는 고3 교무실은 본관 5층. 운동장 모서리 언덕 위에 있어서 7-8층 높이는 충분하지만 실제는 5층인 형태다. 큰아이가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밴쿠버 주택처럼. 도로에서 보면 2층 건물이지만, 건물 사이로 돌아들어가면 반대쪽에 마당이 있는 지하 아닌 지하층 같은 베이스먼트다.
그렇게 사흘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3월 3일에는 학교에서만 1만 보가 넘게 걸었다, 는 사실을 퇴근하면서 알았다.
열명이 함께 있는 교무실은 매우 협소하게 생겼다. 4개, 6개의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파티션으로 구분해놨다. 그리고 고3 담임 열 명 중 올해 전입을 온 교사는 내가 유일하다. 모든 이들이 이곳에서 나보다 일찍 교직을 시작한 사람들. 총경력은 내가 중간 정도 되는 듯하다. 수요일, 목요일은 공용 메신저도 되지 않았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준비하고 아이들한테 전달하고, 언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조차 몰랐다. 이럴 때는 보통 두 가지의 방법으로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먼저 묻던가, 누군가가 다가와 도와주던가.
내가 이전에 있던 학교에서는 나의 역할이 후자였던 것 같다. 몸도 아직 적응이 안 된 상태인데, 얼마나 혼란스러울까라는 생각에 나는 스스로 나섰다. 메신저로 오는 내용을 출력해서 공유한다. 말로 공간을 설명해 준다. 그런데 여기 와서는 내가 전자가 되어야겠다, 고 생각했다. 묻지 않으면, 1평이 채 안되는 않는 파티션 안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거니까. 옮겨와서는 전자가 되기로 했다. 사람들은 제각각 나에 대한 사전 정보를 자기 나람의 방식으로 해석해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짧지 않은 경력을 가지고, 이런저런 다양한 활동을 했던, 그래서 모든 걸 잘할 거 같은, 낯선 사람으로.
그래서 나의 적응 전략은 묻기로 했다. 작은 것부터 계속. 사흘 동안 옆에 짝꿍이 된, 나보다 한살이 맞은 A에게 계속 물었다. 메신저 내용을, 이럴 때는 여기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오후에 있는 연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A는 매우 신중하고, 조용한 듯하다. 뒤에 있는 B에게도 물었다. 특히, B는 같은 교과군이고 연합 활동에서 두 번 정도 전입오기 전, 최근에 인사를 나눴었다. 이곳 아이들의 분위기, 급식지도 하는 방법, 수업하고 평가하는 방법 등에 대해.
3월 2일, 조회를 위해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멈칫했다. 애들이 너무 많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34명. 최근에 맡은 아이들 중 가장 많다. 작년에는 스물 세명. 재작년에는 19명이었던 거에 비하면 많아도 너무 많다. 특히, 34명 중 남학생이 28명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교실 크기는 같은데, 덩치 큰 아이들이 이렇게 저렇게 앉아도 교실 뒤쪽 공간으로는 다니기 조차 쉽지 않다. 말 그대로 과밀학급이다. 동거인 확진으로 1명이 등교하지 않았는데도. 그러나 방역 완화 조치 덕분(?)에 별문제 없이 있을 수 있다. 그 속에서 고3 아이들은 마스크로 무장한 채 눈만 내보이며, 학기초 어색함에 고3의 불안함, 공간과 아이들의 불편함을 이겨내려는 모습이 그저 기특하기만 하다.
지금 교무실은 신속항원검사 키트를 소분하느라 흡사 작은 병원 주사실 같다. 면봉, 시약, 키트, 위생백이 수북이 쌓여 있다. 아이들에게 일주일이 두 번씩 나눠줘야 한다. 그리고 다시 검사 결과를 받아봐야 한다.'정부에서는 권고'라고는 하지만, 나눠주고 챙기는 일 자체가 너무 큰 일이다. 키트를 소분하다 말고 그 사이에 수업을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수업에서 처음 만나는 아이들한테, 수업을 이렇게 할 거고, 수행평가는 이렇게 준비하라고 안내해야 한다. 그걸 위해 1,2월에 미리 PPT 파일을 준비해두었지만, 처음 들어가는 교실에서는 태블릿과 TV가 잘 연결되지도 않았다. 여섯 개 교실 모두. 내가 지급받은 장비들이 모두 낯선 거라 그렇다.
3월 4일. 금요일에는 아이들한테 두 개씩의 키트를 나눠줬다. 수요일에 등교했다, 급식실도 이용한 우리 반 한 학생이 목요일에 PCR 양성이 나왔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키트를 한번 더 검사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따지지 않는다. 한번 더 하라면 '예'하고 대답해준다. 그래서 아이들이 고맙다. 그렇게 소분한 걸 종례 때 아이들에게 나눠줘 돌려보낸 뒤, 혼자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태블릿과 TV 연결을 시도해 봤다. B옆에 앉아 있는, C는 회의가 끝난 후 나와 함께 7반에서 연결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일곱 개 반중 한 개 반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결되는 것을 확인한 후 퇴근을 했다.
퇴근길 내내 두통이 올라왔다. 심각할 정도로. 요즘에는 늘 이런 생각이 든다. '언제 걸려도 이상하지 않다'라고. 3차까지 접종 완료를 했지만, 비슷한 증상은 자주 반복된다. 지난주에만 세 번의 키트 검사를 셀프로 했다. 다행히 열이 나지 않고, 인후통이 심하지 않고, 더더욱 검사가 모두 음성이다. 아마, 과밀학급, 낯선 공간, 낯선 이들, 남에 집에 잠깐 왔다가 금방 일어나야 할 것 같은, 낯설움 때문이리라. 그럴 때일수록 주변에 자주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이들한테도 물어야 한다. 어제 다시 시작된 허리 통증 때문에 다니던 정형외과까지 가지를 못하고, 근처 한의원을 아침 일찍 다녀왔다. 수십 개의 침이 꽂혀 엎드려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 나 중심의 사람이었구나. 주변 이들이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바라보고, 잘한다고 칭찬해야 몸과 마음이 안정화되는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낯설움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자기 스스로를 잘 다독이지 않고, 몰아붙여왔구나. 내가 나를 스스로 믿는 게 가장 급하고, 중요하구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나를 대면하고, 안정적으로 헤쳐 나아가는 힘을 길러야겠습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