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우리 반 34명의 장정들,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전입을 온 학교라 당연히 1, 2학년 때 정보가 없는 아이들입니다. 34명 중 여학생은 6명, 나머지는 모두 남학생이네요. 고3 아이들, 어떤 삶을 살아오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는지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습니다.
요즘은 학기초 상담이 호구조사가 아닙니다. 해서도 안되지만, 할 수도 없습니다. 학기초 담임이 넘겨받는 학생 정보에는 학부모와 관련된 정보가 집주소와 연락처 정도만 있거든요. 간혹 어떤 학생들은 그것조차 없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미리 상담카드를 나눠줍니다. 학생들은 상담카드를 작성해서 자신이 신청한 요일 방과 후에 남습니다. 자기 순서가 되면 작성한 상담카드를 들고 교무실로 찾아옵니다. 어제는 7명이 남았습니다.
상담 카드 질문은 아래 네 가지입니다.
1) 너의 꿈은 뭐니?(넌 어떤 걸 할 때 행복하니?)
2) 그래서 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하고 있니?
3) 어떤 도움이 필요하니?
4) 너의 가장 큰 강점과 약점은 뭐니?
그리고 상담카드 아랫부분에 '부족할 경우 뒷면 활용▹▹▹'이라고 기록해 두었습니다. 어제 남은 아이들중에는 없었지만, 이런 표시를 해 두어야 꼭 한두 명의 아이들이 안심하고 참 많은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안내가 없으면 틀 속에 갇혀 버리더군요.
요즘 아이들은 '아직 꿈이 없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작년에는 전교 1등 하는 우리 반 여학생도 구체적인 '꿈이 없다'라고 말했었습니다. 물론 긍정적이고 밝은 아이였고, 일 년 동안 보기 좋은 모습으로 학교 생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그런데, 아이들이 말하는 '꿈'은 상담을 하다 보면 '구체적인 직업'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아니,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구체적인 직업에 대한 탐색을, 고민을 덜했다면 '꿈이 없는' 아이라고 스스로 인정해 버리는 듯합니다.
이건 열몇 살 아이들에게 '꿈이 곧 직업'이라고 하는 행정적 강요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줄여서 생기부라고 부릅니다)에 '진로희망분야'가 있습니다. 그런데 관행적으로 이 부분에 대부분 구체적인 직업을 넣어서 학년을 마감합니다. 필수사항이라 넣지 않으면 마감이 되지 않기도 하지만, 상담을 하는 경우에도, 상담을 받는 경우에도 계속 '직업'을 떠올리는 습관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제 상담을 한 일곱 명의 아이들중 3명이 꿈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4명의 아이들중 2명은 '그 직업'이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에 대해 헛갈려하는 중이었습니다. 마지막 2명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꿈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꿈은 직업이 아니라고, 그냥 하고 싶은 분야가 무엇인지, 그런 게 있는지, 있다면 그걸 위해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없다면 그런 분야를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 그 노력을 하는데 주변에서 어떤 도움을 받았으면 좋은지 등을.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학기초 잠깐의 상담을 하고 난 뒤 더 이상의 진솔한 상담은 말썽을 피우지 않은 이상 없을 거라는 것을. 그간의 오랜(?) 학교생활에서 터득한, 몸이 기억하는 상담에 대한 추억일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다시 해주었습니다. 이건 문제 상황 여부에 대한 간단한 확인 절차라고. 진짜 상담은 이제부터 반복적으로 이루어질 거라고. 그때는 교무실이 아니라 운동장도 걷고, 교문을 나가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수다를 떨자고. 그러면서 아이들이 꿈이 없다는 강박관념, 피해 의식에서 벗어나자고.
며칠전에 서른 일곱이 넘은 아이가 문자가 왔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코로나에 몸조심하라는 안부 문자였습니다. 방금, 얼굴에 아토피가 심한 A가 교무실 복도에서 서성거렸습니다. 그러다 나를 보더니 묻습니다. '자가검사 키트 있어요' 하고. 지금 아이들이 그렇게 자기 삶을 열정적이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애써서 행복하게 꾸려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볼수 있겠다, 라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졸업하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