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강점을 가졌지? 어느 순간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런데 당연히 내가 나를 잘 모르듯이 잘 모른다.
강점은 성장,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다 주는 매력적인 요소이지만, 시선을 조금 바꾸면 약점보다 좀 덜 약점이 강점으로 변신한 지점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게 여전히 약점은 한 트럭이지만 강점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다 보니, 안개속 야생초처럼 희미하게 들여다 보인다.
나는 생각이 많(았)다. 머리통, 몸통이 모두 생각통이(었)다.'았', '었'을 넣은 이유는 지금은 과거보다 생각이 확실히 좀 덜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정확히게 표현하면 양은 그대로인데 가짓수가 줄어들었다고 해야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과거라는 시점은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시점이다.
걸을 때도, 먹을 때도, 이야기할 때도 심지어 잠을 잘때도. 나는 생각 부자다. 데카르트가 이야기 한 존재의 이유다.
그런데 생각은 아이디어 혹은 걱정이라는 두가지 야생초의 씨앗이다.
번뜩 떠오른 생각의 씨앗이 어떻게 아이디어와 걱정으로 갈라지는지를 좀 더 들여다 보고 싶다.
내 생각은 세상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고, 나의 선택과 행동의 원동력이고, 의식적인 경험의 도구이고,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 수단이고,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 내는 원천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자연스레 걱정으로 이어진다. 생각 부자는 걱정 부자가 된다.
'걱정 좀 하지 않고' 살았으면 했던 기간이 오래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걱정이 생기는 근본 원인이 의외로 분명하다.
걱정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예측 불가능성에 기인한다.
나의 유한성과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게 때문이다. 그런데 걱정해서 무엇하나. 아니, 걱정해도 달라질 게 없다.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다'는 티베트 속담처럼.
걱정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예측 불가능성에 기인한다. 나의 유한성과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게 때문이다.
그런데 걱정해서 무엇하나. 아니, 걱정해도 달라질 게 없다.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네라고 하는 말처럼.
미래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게 불가능한데, 무슨 걱정일까 싶어진다. 그러고 보면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분명 수많은 걱정 덕분이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생각을 밀어내는 기술을 키우고, 걱정이 걱정을 걷어내는 능력을 얻었고, 생각이 걱정을 되살리는 내공이 깊어졌고, 걱정이 생각을 발굴하는 신공을 (가끔은) 발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살아가는 데 쓸데 있는 일만 있을 수 없다. 쓸데없는일이 종종 생겨야 쓸데있는 일이 더욱 가치롭다. 걱정은 당연히 피어오르는 감정이다.
그 걱정덕에 지금까지 왔다. 다 걱정 덕분이다. 조금 느리지만, 더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고, 조금 더 조심스럽게 결정하게 된다.
그렇게 피어 오르는 걱정스러운 감정을 강점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돌아 보니 나의 수많은 생각에 따라 나오는 걱정은 나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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