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도 나처럼 점심을 싸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해본 사람은 안다. 웬만한 정성이 아니면 스스로를 걷어 먹이기도 쉽지 않다.
아무리 건강식이어도 간편하지 않으면 유지하기 어렵다. 결론은 '간편'. 그래야 꾸준하게 도시락을 챙길 수 있다.
내 점심 도시락을 매일 '양배추 볶음, 닭가슴살, 방울토마토'로 한정한 이유다. 나의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오늘은 아내의 점심 이야기다. 올해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올해 부임한 영양사는 출근하기도 전에 '입소문'이 파다했단다.
심지어 그 영양사와 함께 근무했던 이가 '안 먹으면 손해'라고까지 했단다. 그 소문 덕에 아내는 급기야 올해는 도시락을 싸지 않고 급식을 먹겠다고 선언했다.
두 달이 다 지나가는 지금, 아내의 기분은 아주 좋은 상태다. 하루하루 너무 즐거워한다. 옆에서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나도 덩달아 좋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이 해주는 밥인데, 맛있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정말 달려가 먹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든다.
아내에게 부탁해 4월 식단표를 받아 봤다. 그랬더니, 그 마음이 더 크게 든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스무 번의 급식 중 무려 아홉 번이 이런저런 특식 데이다.
1일(생일 축하의 날), 3일(쌈데이), 4일(다채롭데이-채식의 날), 11일(분식데이), 14일(블랙먼데이), 16일(선택 급식의 날), 22일(강원도 음식의 날), 23일(대만 음식의 날), 25일(먹고 힘내)
특별한 날을 만드는 건 특별한 힘이 드는 거다. 그런데 그걸 마다하지 않는 마음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진다. 실제 나온 메뉴를 보니 고마움까지 느껴진다.
생일 축하의 날에는 매운 돼지갈비떡찜 먹고초코 강냉이를, 쌈데이는 <상, 케, 다, 삼, 레> 모둠쌈에 캠핑모둠구이 먹고 쫀득 누가를 간식으로.
다채롭데이 때는 마라탕면에 크림마요새우를 먹고 짭짤이 토마토로 입가심을, 분식 데이에는 곤드레 나물밥에 차돌 떡볶이를.
블랙먼데이에 자장면과 찹쌀탕수육을 곁들여 월요일을 이겨내고, 선택 급식의 날에는 토마토 스파게티 or 콘치즈 고구마 피자 or 포테이토 소시지 피자 골라 먹고 느끼하면 숭늉 마시기.
강원도 음식의 날에는 감자 옹심이국에 들기름 막국수를, 대만 음식의 날에는 우육탕면에 지파이 먹고 후식으로 흑당 밀크 버블티를.
먹고 힘내 날에는 전복 그득한 죽을 넉넉히 먹고, 반미 불고기 샌드위치 하나 더. 그리고 비타민 주스로 깔끔하게 마무리.
여기까지만 봐도 정말 대단한 분이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때 이 분은 체면상(?) 그냥 무슨 데이라고 몇 개 만들어 둔 것 같다. 왜냐하면 평일상 메뉴도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3월 31일에는 대형 닭꼬치에 추로스 고구마 맛탕으로 기분 업, 7일에는 달콤한 안동찜닭 그득 먹고 에그타르트로 또 달콤한 마무리.
9일에는 쁘링클 순살 치킨, 10일에는 연어스테이크, 15일에는 삼계탕에 쇠고기 고추장 볶음, 17일 단호박 제육볶음에 콘치즈 오븐구이, 18일 돈마호크 스테이크, 21일 떡갈비 마요덮밥.
평소 퇴근하고 만나면 아내와 나누는 첫 번째 대화는 보통 '오늘 뭐 먹지?'였다. 그런데 요즘은 그보다 먼저 '오늘 뭐 먹었어?', '오늘 뭐 먹었다'이다.
그럴 때마다 가만히 아내의 눈빛을 보게 된다.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 그 영양사 분이 더욱 감사하다. 급식은 사랑이다.
다른 이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행위는 사랑을 정성을 표현하는 따뜻한 소통이다. 단순한 배고픔을 넘어 사람의 마음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몸과 마음에 저장된 에너지는 고스란히 전염된다. 식단표 아래 빈칸에 한 줄 더 써넣은 문구마저 감동이다.
타인을 위해 일을 일로만 끝내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 '추구'하는 사람. 아름다운 분이다.
그 학교의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아이들은 중간고사가 싫은 또 하나의 이유가 분명할 것 같다. '미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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