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퇴근 후 저녁밥을 먹고 앉아 있는데, 톡이 왔습니다.
화사한 봄날 만끽하고 계시지요? 지난 3월,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고 어수선하게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의 수고로움이 학교를, 세상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 튼실하게 성장시키는 밑거름 되리라 믿어봅니다.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로만 남는 4월 시작하기를 응원하며
남은 주말 쉼과 회복의 좋은 시간 되셔요~~~
올 2월을 끝으로 3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료 교사로, 선배로, 형님으로, 도교육청 과장으로,
학교장으로, 연수원장으로, 교육장으로 역할을 다하고 명퇴한 선생님의 안부 톡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아래 시를 첨부해 주셨습니다.
올해 24년 만에 학교를 옮겼습니다. 관련된 사람이 아니고, 학교 밖에서 보는, 학교라는 곳이, 것이 거기서 거기 같다, 다 아는 곳이다, 라는 이야기를 친구들이 예전에는 많이 말을 했습니다. 친구가 이십 년 넘게 학교에 근무하다 보니 지금은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친구들만 남아 있지만 말이죠.
3월 한달살이는 익숙한 학교에서도 말 그대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새로운 아이들한테, 새로운 동료 교사들한테, 나를 나의 방식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전달하고, 익숙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거든요. 우리 집에 있는 두 명의 10대가 수십 명 한꺼번에 모여 있으니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그러는 과정 속에서 동료 교사들과 맑은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하루하루가 안정화되는 과정을 밟을 수 있습니다. 3월은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 온 에너지를 쏟아붓는 상황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늘이 4월 5일. 지난 3월 한달살이는 24년의 화려한(?) 경력도 아랑곳없이 낯설고, 더디고, 피곤했습니다, 정신적으로. 사무실 10명 중 저 하나만 전입 교사입니다. 9명의 선생님은 기존 멤버들. 거기에 경력도, 나이도 있는 사람이 왔으니 저라도 낯설었을 겁니다. 그런데, 제 강점이 '인상 좋고, 일 잘하고'라고, 이곳 학교장 선생님이 몇 번을 말씀하시더군요. 듣기 좋으라 그러실 수도 있지만, 적응하느라 혼이 빠지는 상황에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몇 분들과 두런두런 이런저런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면서 서서히, 안전하게 비행기가 이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분위기는 오래전 일반 회사에서 근무할 때의 분위기와 비슷했습니다. 전체적이나 철저히 독립적입니다. 각반으로 흩어지는 전달 사항이나, 회수해야 하는 메시지들이 그렇게 12개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공동 미션이지만, 각자 해결합니다. 12명의 담임교사 - 60대 1명, 50대 중반 2명(여성 1명 포함), 30대 1명, 40대 1명 나머지는 모두 저와 비슷한 50대 초반(여성 1명 포함) - 에게 같은 내용의 지침이나 메시지가 오면, 10명이 각자 알아서, 조용 조용히 해결해 내는 분위기.
이전 학교에서는, 저의 스타일은, 출력하는 김에 10장 같이, 챙겨 오는 길에 옆반 꺼도. 일반적인, 학교 사무실의 분위기는 이렇습니다. 아니면, 전체적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서넛은 언제나 기분 좋은 스크럼을 짜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곳은 꼭 분위기만은 아니더군요. 처음에는 매우 낯설었습니다. 이곳에서 십수 년 이상을 있었던 사람들은 서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렇게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더군요.
이곳에 전입 오기 전 친한 분이 '거기는 여기랑 많이 달라요. 철저하게 각자도생의 분위기랄까'라고 걱정하듯 건넸던 말이 가끔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하나 옆 사람을 따라가면서, 하나하나 3월 세팅에 필요한 것들을 해결하면서 한달살이를 해내다 보니,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어느 누구도 묻기 전에는 먼저 도움을 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처음 오는 곳에서 비슷한 일이지만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고 낯설 수밖에 없어서, 먼저 나서서 필요한 필요한 것을 묻고 도움을 주려고 했던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찌 보면 오지랖이랄까요. 그런데, 마디마디마다 물으면 옆에 있는 서 선생님도, 뒤에 있는 고 선생님도, 무뚝뚝한 양 선생님도 도움을 주려고 한마다 씩 건네줍니다. 그래서 한달살이 내내 물었습니다. 묻고, 또 물었습니다. 옆에 서 선생님은 귀찮을 정도로 말이죠.
제가 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문장, 아니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절문 근사(切問近思)'입니다. 말 그대로 간절한 마음으로 묻고 가까운 곳에서 생각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항상 지혜로운 대안은 나에게, 내 주변에게 있다는 말을 실천하고, 다시 한번 확신을 갖게 되는 3월, 한달살이였습니다. 우리 모두, 오늘도 묻고 대안을 찾느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