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푹 자고 일어났다. 몸도 마음도 상쾌했다. 아내가 일어나자마자 혼잣말로 말을 건다. '날이 너무 좋아'. 삼십 분 정도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나는 대답한다. '맞아'. 그때 누에고치에서 탈피했지만 눈도 못 뜬 딸이 런어웨이 하듯이 손을 흔들면서 자기 방에서 나오면서 그런다. '오늘, 어디 갈 거예요?'. 우리, 세 식구는 토요일이면 무조건 나가기로 했다.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심히 자기 역할을 하고 토요일은 함께 뭉치자고.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집에서 혼자 공부하느라 애쓰는 딸, 부장 역할을 해내느라 애쓰는 아내, 전근한 곳에서 적응하느라 애쓰는 나. 이 셋의 공통점은 집을 싫어한다는 것. 나가면 들어오기 싫어한다는 것. 집을 나가는 걸 좋아한다는 것. 하지만 숙박은 아까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긴 거리도 되도록이면 당일코스로 다녀온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나에게 묻는다. '운전하는 게 그렇게 좋아?'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진심, 좋아. 급하게 달리지 않고, 몇 시까지 어디 정해놓지 않고, 음악 틀어놓고, 손가락 퉁퉁 튕기면서 달리면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다'라고. 하지만 차이점은 나와 딸은 멀리멀리 가면 갈수록 좋아하고, 아내는 2시간 넘게 차를 타는 걸 즐기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집 근처에서 2시간 이내 코스로 드라이브를 자주 즐기게 된다. 서로의 니즈를 충족하느라. 하지만, 가끔 아내가 먼 곳을 외칠 때가 있다. 토요일 아침처럼. 그런 날이면 나와 딸의 두 눈은 스파크가 인다. '아내(엄마)가 무슨 일이지?' 하면서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면서.
11시가 조금 넘어 브런치가 도착했다. 아내와 딸이 최애 하는 브런치 전문점에서 배달된 샐러드와 샌드위치, 집에서 내린 커피를 마시면서 아내가 묻는다. '지금, 통영 가자면 갈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옆에 있는 딸은 스스로 들뜸을 부팅 중이었다. 그렇게 토요일 12시가 넘어 네비에서 4시간 반이 걸린다고 나오는 '포항'으로 출발했다. 나와 딸이 통영 갈 수 있냐고 물었다고 했지만, 아내는 포항이라고 했단다. 어찌 되었건 포항은 아내가 자주 이야기하던 곳이다. 나와 딸은 멀리멀리면 더 좋다, 는 생각으로 언제나 똘똘 뭉치니까. 다행히 고속도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잠깐 막히는 걸 빼곤, 주말치고는 달릴만했다. 네비의 포항 도착시간은 '5시 8분'.
그렇게 두 시간 조금 안되게 달려서 청남대 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 마당에도 봄날 따뜻한 햇살이 한가득이었다. 그곳에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꽈배기를 사고, 커피를 한잔 사들고, 스트레칭을 좀 하고. 차 안에서 설탕 듬뿍 묻은 꽈배기도 나눠 먹으면서, 십몇분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뒷자리 아내가 네비 목적지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무슨 무슨 드라마에 나왔든 무슨 공원이라고. 출발할 때는 그냥 포항을 찍고 왔으니 바꿔야 하긴 했다.
그리고 한 십여분을 더 달렸을 무렵, 아내가 '얼마나 걸려?'라고 물었다. 네비의 도착 시간을 보니 '5시 59분'이었다. 그렇게 대답을 해줬다. 그랬더니, '뭐라고? 그렇게 늦어. 어휴, 그럼 집에 돌아오면 몇 시인 거야?'라면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늦게 나오기도 했지. 그리고 휴게소에서 쉬었고, **공원으로 목적지를 변경하니까 삼십 분 정도 더 걸리네. 아마 포항 외곽에 있나 봐'라고 대꾸를 했더니, '그러니까, 너무 오래 걸리잖아'. 몇 초 동안 차 안에서는 정적이 흘렀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딸이 힐끔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 차 돌려?' 그랬더니, 뒷자리의 아내가 말했다. '돌려'라고. 허탈했다. 기분이 상했다. 본인이 그렇게 가자고 했으면서, 처음에 출발할 때부터 4시간 반이 넘게 걸린다고 했는데. 이내 딸은 말이 없어졌다. 그렇게 청남대 휴게소를 조금 지나서 다시 유턴을 했다. 룸미러로 보니 아내도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아니, 잠든 척한 걸 거다,라고 생각했다. 옆에 앉은 딸은 어느새 마스크를 하고, 이어폰을 낀 채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잠들어 있다. 아니, 역시 잠든 척한 거다.
그렇게 이십여분을 달렸다. 그제야 눈을 뜬 아내가 다시 묻는다. '다시 돌아가는 거야?'. 이게 무슨 소리지? 3차원 대화법도 아니고. '응, 돌리라면서?'라고 내가 퉁명스럽게 이야기를 했더니, 아내가 그런다. '내가 언제? 이제 뭘 돌려라고 했지.'라고 했다고. 그러자 옆에 가만히 있던 딸이 거든다. '아냐, 엄마가 돌려라고 했어'라고. 딸도 살짝 볼멘소리다. '내가 언제?'... 다시 아까보다 한참 긴 정적이 차 한가득이다. 딸이 계속 틀어놨던 노랫소리도 잦아들어 있었다. 우리 부부 대화톤이 높아지면서 손가락으로 버튼을 낮게 낮게 줄였을 거다, 분명히.
다시 집으로 향하는 도로는 더 한산했다. 내가 달려 내려온 반대쪽 하행선은 차들이 더 많이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