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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봄날 햇살을 가득 받으며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달렸던 포항행은 그렇게 한 순간에 유턴으로 되돌려졌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맥락 없는 음악소리에, 대화 없이. 달려갔던 길을 절반 정도 지나가고 있었다. 아내와 딸이 억지로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네비는 일단 '우리 집으로'였다. 도착 예정 시간은 6시 11분.
멍하니, 운전에만 집중했지만 머릿속은 안개였다. 그러면서 혼자 복기를 해봤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브런치를 먹는 그 순간, 순간을. 아내는 일단 나가고 싶었다. 나는 언제나 나갈 준비를 하는 상황이고, 딸은 친구와의 약속만 없으면 언제나 함께 해주었다.
딸은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다. 부모의 마음과 본인의 의지가 결합된 결과였다. 지분은 4대 6 정도라고 했다. 그렇게 작년 현장체험학습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서너 달을 집에서 혼자 공부 중이다. 오미크론 덕분에도 수시로 바뀌는 방역 정책 때문이기도 했지만, 낮에 점심을 챙겨 먹으러 혼자 집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노파심에 동의한 딸은 스카도 가지 않고, 집에서 일곱여덟 시간을 그렇게, 인강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동안 서너 번 힘들어 한 딸은 이제 어느 정도 혼자의 시간을 잘 즐기고 있다. 그러면서 엄마, 아빠의 퇴근만 기다린다, 는 생각이 든다. 신혼 때 큰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나의 퇴근만 기다리던 아내와 비슷하지 싶다.
아내는 운동을 그 다시 즐기지 않는다. 간혹 산책을 할 때도 일부러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그렇게 빠르지 않은 내걸음 - 집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만나는 타인들의 걸음걸이를 보면, 결코 빠르다고는 할 수 없다. - 을 더 늦춰야 한다. 그리고 오래 걷는 걸 싫어한다. 몇 번을 매일 퇴근하면서 걸어보려고 했지만 꾸준하게 이어지지는 못한다. 나도 운동에 빠져 살지는 않지만, 아내보다는 훨씬 더 움직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건 사회성 떨어지는 반려견 때문이기도 하다. 아기 때부터 산책을 즐기지 않아 일곱 살이 되어가는 지금도 산책을 두려워하는 몰티즈다. 휙, 휙 지나가는 자전거, 오토바이를 보고도, 톤이 높은 학생들의 목소리만 들어도, 모퉁이를 돌자마자 나타나는 사람들만 봐도, 귀엽다며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도 짖어된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짖을 때 보면, 그 눈빛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짖다가 제재를 하면, 누그러 진다. 단, 나하고 산책할 때만.
그래서 언제나 반려견 산책은 나의 몫이다. 아내도, 딸도 흥분한 반려견을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내가 데리고 나가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올 들어, 그렇게 거의 매일을 데리고 나갔더니, 이제는 아예 산책을 하지 않으면 응가를 누지 않는다. 그렇게 반려견을 이삼십 분 정도 동네를 한두 바퀴 돌고 오면, 딸아이한테 씻기는 걸 부탁한 뒤 이어폰을 챙겨 다시 나온다. 그렇게 이틀에 한 번꼴로 걷는다. 허리가 무너진 뒤에는 더더욱 그렇게 걷는다. 그래서 매일 평균 만보 이상을 걷는다. 그러는 동안 아내는 식세기를 돌리고, 안마를 하고, 집에서 걷는다. 기구를 이용해서 스트레칭을 한다. 그러는 아내를 보면서 며칠 전에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꼭 나보다 하루 더 살아. 날 보내주고, 자기가 가기.'. 서로 그런다. 아내는 내가 운동을 좋아하고 즐기니까, 자신보다 오래 살 꺼라며, 호언장담을 한다.
그러면서 나의 아내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움직이고, 운동을 한다. 마스크를 쓰기 전에는 일 년에 꼭 감기몸살을 거치고 넘어가는 나에 비해 기억 속에 아내가 감기로 알아 누운 적이 없다. 감기 기운이 있어도 알약 한두 알 먹고 자면 그다음 날 다시 가뿐히 움직인다. 특히, 쇼핑 체력은 내가 따라갈 수가 없다. 아내가 표현한 것처럼 남자치고 쇼핑 체력이 나도 센 편인데 말이다. 하여튼, 아내는 나보다 분명 신체 면역력은 훨씬 더 좋다. 아직(?) 우리 식구들은 누구도 확진자가 없다. 직업 특성상 일주일에 한두 번씩 키트 검사를 하고 있지만. 그리고 멘탈도 나보다 훨씬 강하다. 같이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일 때문에 울고, 웃고, 대화를 나눴지만, 아무리 부부여도 내가 밀리는 게 바로 멘탈이다. 잠깐 가라앉었다고 쑤웅하고 일어서는 아내에 비해 나는 '나만의 세계'에 빠지는 경우가 참 많았다. 지금도 많다. 그래서 그 스타일을 극복하려다 보니, 이렇게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아내가 나보다 약한 부분이 있다. 아니, 나만큼 약한데 바로 회복을 못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빈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냥 한번 해보는'말을 싫어한다. 그냥 싫어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금기시 수준이다. 말을 했으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물론 나도 그렇지만. 농담 속에서 해소될 수 있는 기회가 나보다는 적다. 그랬던 아내가 오랜만에 '빈말'을 했었나 보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툭하고 던진 그 '빈말'에 나와 딸이 둘 다 득달같이 '오케이'를 외친 거다. 그렇게 일은 커졌고, 실제 움직였고, 장거리에 몸은 피곤해지기 시작한 거다. 그러고 보니, DJ 역할을 자청하며, 차를 타자마자 알아서 내 휴대폰 블루투스를 끄고 본인 것으로 연결하는 딸에게 앞자리를 양보하기 시작한 게 꽤 오래되었다. SUV 뒷자리에 앉아 다리를 제대로 펴고 있지 못하니 몸은 더 피곤해졌을 거다.
그런데 본인이 한 말을 번복하는 타이밍을 놓친 거다. 게다가 우리 둘이 들뜬 모습을 보면서 그 타이밍을 잡기가 더 쉽지 않았을 거다. 물론, 그렇게 번복하고 우리의 행선지 - 여행의 목적지 - 가 순간순간 수정된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타이밍을 놓치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럴 때는 보통 본인 마음도 반반일 때이다. 결심이 바로 서지 않았는데, 몸이 먼저 움직일 때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직장에서도,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종종 그럴 때가 있다. 그렇게 두 시간 넘게 움직이다 보니, 몸이 피곤해진 거다. 그렇게 네비 위에 설정된 우리 여행의 목적지가 바뀌고, 휴게소에서 쉰 시간만큼 늘어난 건데도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거다. 당일로 돌아올 시간을 생각해 보니, 덜컥 겁이 났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햇살은 여전히 좋았다. 선루프로 달려드는 햇살은 아까운 수준이었다. 룸미러로 보이는 눈 감은 아내의 표정은 많이 피곤해 보였다. 그 얼굴을 보면서 예전에 우스개 소리로 들었던 닭다리 부부 이야기가 떠올랐다. 평생을 내 것을 양보했지만, 정작 상대방은 가장 싫어하는 부위였다는.
한참을 그렇게 달리고 있는데, 아내가 부스럭거리면서 무언가를 마신다. 룸미러로 보니 아까 청남대 휴게소에서 산 비타 500. 얼른 말을 걸었다. '나, 그거 조금만 남겨줄래?'. 아내는 소리 없이 절반을 남겨서 앞으로 건넸다. 얼른 마셨다. 밍밍했지만, 달콤했다. '일단은 집으로 찍었는데, 우리 어디로 갈까? 행선지를 바꿔야지. 이대로 집으로 들어가기에는 날이 너무 좋아'. 그러는 동안 옆에서 자고 있던 딸이 슬그머니 일어나면서, 몸으로 '그러자, 그러자'를 외치고 있었다. 아내는 '그럴까'했다. 됐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은 다시 가까워졌다. 그렇게 밤 10시까지 아내가 최애 하는 쇼핑몰에 가서 밤 10시가 다 되도록 쇼핑을 했다. 그래 봤자, 만 원짜리 면티에 원 플러스 원하는 스커트 종류였지만. 집으로 달려오는 어둑한 차 안에서 아내는 진짜 잠이 들어 있었다. 자고 있는 엄마를 배려하면서 딸은 나지막한 볼륨으로 멜로망스의 '사랑인가 봐'를 틀어 놓았다. 딸은 몸으로 나는 손가락으로 같이 따라 부르고 있었다.
샛노랗던 달이 오늘은 말끔하게 씻겨낸 듯 하얗고 동그랗게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