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정말

[ 언어와 나의 세계 ] 17

by 정원에

'개'는 마치 막 지어진 집의 기초공사와 같다. 콘크리트는 부어졌지만, 벽과 창문, 지붕은 아직 세워지지 않은 상태다.


'개 맛있어'란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어떤 감정의 집이 될지 짐작은 가능하다.


하지만 텅 빈 기초판 위에 서 있는 듯, 감정의 전체 구조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완전한 문장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감탄사를 빌려다 쓰듯 스리슬쩍 내던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집을 어떻게 완성하는지 보여주는 어른 건축가들을 곁에서 많이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 짓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어른이 없으니, 최소한의 자재로 임시 막사를 세울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표현은 언제나 미완의 공사판에 머무른다.


반면 '정말'은 제대로 지어진 집이다. 방마다 제 기능이 있고, 창문을 열면 바람이 드나들며, 방문객이 들어와도 길을 잃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완결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은 단순히 어휘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누군가의 잘 지어진 언어의 집을 드나들며 배운 경험 덕분이다.


부모, 친구, 선생님, 그리고 사회가 제대로 된 언어의 집을 보여주고 그 안에서 머물게 해 주었을 때, 그들은 비로소 '내 마음은 정말 이래' 하고 완성된 구조물로 자기감정을 세우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내 마음은 정말 이래’라는 표현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그들이 누군가와 함께 잘 살아가고 싶다는 호소이고, 다짐이다.


언어란 단순히 감정을 전하는 도구가 아니다. 서로의 삶을 드나드는 문이 되고, 서로의 숨결을 마주하게 하는 창이 된다.

‘개’라는 기초에서 ‘정말’이라는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은 곧 인간이 성장하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튼튼한 언어의 집을 먼저 지어 이정표가 되어 주는 게 ‘어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미완의 말은 어른들의 책임을 부르는 신호이다. 그런 '어른'의 언어에서 배운 완성형 표현이야말로 그들의 ‘생각’의 집을 튼튼히 세울 수 있는 설계도가 된다.


감탄하지 못하면서 이상한 감탄사를 끌어다 쓰는 건, 갈수록 내가 나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나쁜 습관이다. 그 옆에는 나쁜 어른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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