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가까이, 삶

바닷가 근처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에서 한 수 배웠습니다.

by 김가든

바다 가까이, 삶

올 여름 남해의 바래길을 걷는 여행을 다녀왔다. 산길을 걷다가 바닷길을 걷다가 마을 사이 사이를 걸어 다니며 남해를 느낄 수 있었고, 나는 남해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바다를 걷다 보면 소가 혀로 핥고 지나간 것 마냥 이파리를 쓸어 넘긴 나무들을 볼 수 있다. 편향수, 편향목이라고도 부르는 그 나무는 바닷가에서 일정하게 불어오는 해풍 탓에 이파리와 가지가 육지 쪽을 향해서 자라난 것이다. 그에 반해 바닷가 옆에 낮은 자리, 조용히 살아가는 식물들은 대체로 해풍의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온전히 자란다. 작지만 아무런 불편 없이 염분의 언저리에 잘 살아가고 있다.

20200814_181313.jpg 소의 혀가 지나간 이파리, 바다와 맞닿는 부분은 색깔이 변해있다.

몇 년 전, 고등학교때를 생각해보면 경쟁속에서 살았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삶이라고 한다면, 그때의 하루 하루는 온통 입시와 성적향상에 놓여있었다. 수려한 나무를 꿈꾸던 삶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모든 친구들은 묘목이었고 주변에는 부모와 선생이라 하는 바다가 파도 치고 있었다. 파도가 칠 때 마다 파도에는 그들의 염원이 담겨있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아름드리 나무가 되라며, 매일 같이 쉬지 않고 파도가 쳐대었다. 3년동안 낮, 밤을 가리지 않고 바다 옆에서 자라난 몇몇의 묘목들은 파도를 버티지 못하고 쓸려 더 이상 눈에 뵈지 않았다. 그나마 잘 버티고 있던 다수들은 커다랗게 자라난 것 같지만, 어느새 어딘가 한쪽으로 치우친 편향목이 됐다.


바다 바람을 만나는 편향목은 육지 쪽으로 이파리를 향한다. 한번 꺾여버린 방향을 돌아 세우기는 쉽지 않다. 보통 육지의 나무들은 태양을 바라보기 위해서 하늘위로 뻗어간다. 이를 보면, 무슨 이유가 있던 하늘이 아닌 육지를 향해 자라나는 것은 기형적이라고 볼 수 있다. 편향목의 이파리와 가지를 보면 바다와 가까운 부분부터 썩어간다. 바닷바람의 염분 때문이다. 그들의 강력한 염원이 결국 이파리를 상하게 한다. 고등학교를 지나고 대학에 입학한다고 바다를 떠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세상이라는 바다를 옆에 두고 살아가는 생명들이니까. 세상의 바다에는 바람 잘 날 없다. 대학의 파도가 지나면, 취업이라는 폭풍이 불고, 폭풍우가 지나가면 결혼이라는 쓰나미가 덮쳐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이라는 바다 옆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식물은 두발이 없기 때문에 바다 옆이라고 자리를 옮길 수도 없다. 하지만 앞서 만난 낮은 자리에서도 잘 살아가는 식물이 있다는 사실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주변의 나무들처럼 크지 않다. 혹 누군가는 그들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 버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이파리는 썩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작은 식물들은 작지만 자기의 것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높은 가치들을 작고 낮은 가치의 상위 격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가치들은 결국 비교대상이 반드시 필요한 상대적인 가치이다. 계속 누군가와 비교하며 나의 자아를 형성해 나가다 보면, 아무 도 없는 무인도에서의 나의 가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누구와 비교하면서 만들어진 상대적 자아를 가지고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스스로의 경험과 생각들로 만들어진 절대적 자아의 성립이 중요하다. 중심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계속 바다의 바람에 흔들리고, 파도에 뿌리를 적시며 살아야 할 것이다.


지평선 너머 펼쳐진 바다는 육지를 모두 삼킬 듯 커 보인다. 하지만 바다의 파도는 바다가 만드는 게 아니라 지구와 달이 만들어 내는 힘이나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바다나 그 옆을 살아가는 식물들이나 별반 다른 점이 없다. 이 시각, 바다 옆에서 뿌리를 내리며 막 이파리를 꿈틀거리는 청소년들에게 “코로나”라는 폭풍까지 몰아쳐서 전 보다 훨씬 따가운 파도가 철썩 거리는 것을 알고 있다. 코로나세대를 겪고 있는 그대들에게 나는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는 되지 못할 지 언정 또 다른 파도를 보내는 이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대들이 나무처럼 높아지기 보다는 바다 옆에서 옹기종기 살아가는 염생식물처럼 살아 가기를 바란다.

1597564482003-6.jpg 얼음처럼 반짝이는 넘실넘실 파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