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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드노 Nov 22. 2022

아부지와 아궁이

겨울 새벽 외풍이 센 작은방에서 아버지의 품은 봄이었다.

예전 고향집은 방이 두 개였다. 부엌이 딸린 큰방,

우직하고 투박한 옛날 아궁이가 딸린 작은방.

큰 방이든 작은 방이든 우리 가족은 늘 한 방에서 보냈다.

큰방이 군불에서 연탄보일러로 업그레이드되고 기름보일러 급기야 태양광 보일러로 상전벽해하는 동안 작은 방은 유물처럼 아궁이와 함께 했다.


겨울이 다가오면 우리 가족은 너른 큰방(넓다고 하지만 네 식구가 누우면 가득 차는 방)을 두고 작은 방으로 옮겨 생활했다. 연탄값과 기름값 절감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부모님은 번거로운 군불을 고집하셨다.

땔감을 넉넉히 준비해야 함은 물론이고 매일 해 질 녘 한두 시간을 아궁이에 투자해야 긴 겨울밤이 따뜻할 수 있었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 혹은 이러다가 집이 다 타서 재로 변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불을 지펴야

고된 참외농사로 지친 부부와 당신들이 세상 전부인 남매가 뜨끈뜨끈한 겨울을 날 수 있었다.


큼직한 나무를 무릎으로 뚝뚝 부러트리고 도공처럼 불을 잘 다루는 아부지는 그 어느 예술가보다 멋졌다.

아부지가 없을 때 혼자 끙끙대며 불을 지펴보곤 했지만 그 당시엔 토치도 없었고 군불을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부지는 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매일 멋있었다.

아궁이 앞에서 아부지는 종종 깜짝 요리사가 되셨다.

잘 구워진 탐스런 숯으로 고구마나 감자도 익혀주셨고 아궁이에서 숯이 밖으로 나오는 날은 귀한 고기 굽는 냄새가 온 집안에 행복하게 배었다.

그리고 손님이 많은 날은 꼭 아궁이에 앉아있는 가마솥에 넉넉히 국을 끓이셨다.


지금이야 무심하게 콸콸 쏟아지는 온수로 샤워를 하는 게 일상이지만 명절을 앞둔 우리는 아부지가 아궁이에서 데워준 물로 머리도 감고 목욕도 할 수 있었다.

물속에 몰래 들어간 재때문에 씻은 후에 검댕이 묻어도 너무나 즐겁고 따신 물이었다.


이렇게 요즘 스마트 보일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재미를 탑재한 아궁이의 군불도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초저녁 군불로 달궈진 구들은 동틀무렵 그 열기를 거의 잃었고 방 안에서 입김이 보일 정도로 식어갔다.

너무 뜨거워 발 디디기도 힘들던 밤의 아랫목은 아부지와 엄마 차지지만 그나마 온기가 남아있는 아침에는 우리 남매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이른 아침 엄마는 아침밥을 준비하시고 무겁고 빳빳한 이불에 묻혀 겨울 외풍을 견디는 남매를  아부지는 항꼭 안아주셨다.

코는 시리고 입김이 나도록 성그런 겨울 아침은 아부지의 체온으로 봄이 되었다.

몸을 파고 들어갈 듯 찰싹 달라붙으면 아부지의 숨결이 나의 숨결에 닿고 어제 아궁이의 불내음도 함께 더해져 세상에서 가장 든든하고 따스한 체온을 맡을 수 있었다.


그때의 아부지 나이만큼 살아보니 매일매일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듯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살았나 싶다가도

그래도 아직 아부지가 곁에 있어 세상은 힘들지만 견딜만하고 뼈가 시리도록 냉정한 순간도 많지만 덕분에 따스하다.


고향집 큰 방처럼 나도 이래저래 많이도 변했다. 하지만 아부지는 작은방의 아궁이처럼 아직도 여전하시고 따뜻하시다.

동틀 무렵 구들은 서서히 식어 가지만 아직 식지 않는 우리 아부지. 파크골프에 빠지신 지금은 초저녁의 아랫목 처럼 뜨거우시다.


여전히 아부지는 나보다 크고 따뜻하다.

예전처럼 품에 파고 들어가 안길  수 없을 정도로 아들은 그때 아부지의 나이를 훌쩍 넘었고 그런 애정표현이 이제 서로 어색하지만 언제나 아부지의 품인듯 봄볕 닮은 그의 체온으로 살아간다.


다시 태어나도 그의 부지깽이 같은 아들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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