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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이 가져다준 네잎클로버

by 뭉클

5번째 외출이었다. 결혼 8년 동안 시어머니와 같이 한 외출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봄나들이에 시어머님과 동행하게 된 건, 당시 화제가 되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때문이었다.

남편과 함께 ‘폭싹, 속았수다’를 정주행 했다. 남편은 폭싹에 몰입했다. 폭싹 초반에는 “양배추 달아요.”를, 후반에는 “학씨~” “내가 필요해~?”를 입에 달고 살았다.


평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우는 일이 거의 없던 남편이었지만, 폭싹의 마지막 화를 보면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엉엉, 아주 오열을 했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나 오늘, 엄마 보러 다녀올게” 하며 바로 옷을 챙겨 입었다. 평소 연락도 잘 드리지 않았던 사람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졌다는 거였다.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몰고 가 어머니와 맛있는 추어탕을 한 끼 먹고, 봄나들이에 함께 하자고 약속을 잡고 돌아왔다.


그렇게 성사된 나들이였다. 남편은 오랜만에 어머니와의 외출에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남편은 어딜 가면 항상 “간 김에”, “온 김에”를 입에 달고 산다. 간 김에, 여기 온 김에 주변을 다 둘러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이다. 어디 한 곳만 다녀와도 드러눕고 싶은 나와는 여행 스타일이 전혀 맞지 않는다. 남편이 계획한 용산 나들이 코스는 역시나... 만만치가 않았다.


당일 아침, 날씨는 아주 화창했다. 시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출발했다. 우리 일행은 주차걱정에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남편의 계획에 따라 먼저 용리단길 안에 있는 지인의 식당에서 규카츠를 먹고, (남편은 점보 규카츠와 맥주를 시킴. 차를 가지고 오지 않은 이유가 주차 때문이 아니었음을 깨달음) 핫하다는 용리단길을 구경했다. 이후 버스를 타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동해서 박물관 관람을 시작했다. 저질 체력의 나는 1층 선사•고대관을 지나 통일신라실에서부터 집에 가고 싶었다. 아직 1층에는 고려, 조선, 대한제국실이 남아있었고 2층, 3층까지 전시가 이어졌다. 등산으로 단련된 시어머님은 나보다 체력이 더 좋았다.


“여보, 난 힘들어서 안 되겠어. 어머님이랑 둘이 둘러보고 와”


나는 박물관 한구석에 짜부라졌다. 남편과 시어머님은 2층까지 다 구경하고 왔다.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시어머님과의 오랜만의 데이트에 초를 칠순 없는 노릇이었다. 힘을 내서 함께 용산가족공원으로 걸었다. 용산가족공원 산책을 마친 후 드디어 마지막 목적지인 커피숍에 도착했다. 커피숍 의자에 앉았을 땐 셋 다 기진맥진이었다.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음료와 유명하다는 빵을 몇 개 주문했다.

“와, 이 집 커피 너무 맛있다~!”


시어머님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이켜며 행복해하셨다. 그리고 내게 줄 것이 있다며 가방에서 누런색 티슈를 주섬주섬 꺼내셨다. 티슈를 들어 올리니 나뭇잎 두 개를 포개둔 것이 보였고 나뭇잎 하나를 조심히 떼어보니, 그 사이에 네잎클로버가 있었다.


“어끄제 엄마가 네잎클로버를 찾았거든. 애기한테, 행운을 주고 싶어서.”


나뭇잎에 포장되어 곱게 배달된 네잎클로버가 내 손바닥 위에 가만히 놓였다. “찾았다!” 네개의 잎을 발견한 시어머님의 탄성과 기쁨이 내게로 전달되었다. 아들이 옆에 있는데도 며느리인 나에게 주신 클로버.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님이 주신 네 잎클로버를 책 사이에 잘 꽂아 두었다. 씻고 나온 남편 양쪽 발에는 물집이 잡혀있었다. 이렇게 물집이 잡히는 것도 모르고 돌아다니다니... 남편도 나들이 동선을 짜고 앞장서서 다니느라 고생이 많았다. 시어머님도 오늘 일정이 고단하셨을 텐데, 힘들다는 내색이 전혀 없이 좋다, 고맙다는 말씀만 하셨던 건 아들 내외의 마음을 헤아리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두, 폭싹, 속았수다! (제주말로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남편에게 말했다.

“어머님은 참 좋으신 분 같아.”

어둠 속에서 남편이 하얀 이를 보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말이야. 앞으론 절대 어디 갈 때 두 군데 이상은 계획으로 넣지 마!”

어둠 속에서 내 눈의 흰자도 희번덕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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