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부재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과연 평온일까

by Garden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 우리는 이 말을 종종 듣고는 한다. 감정은 비이성적이고, 비이성은 혼란을 낳는다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된다면 더 나은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 믿었다. 모두가 차분하고, 실수하지 않고, 서로 상처 주지 않는 세상. 그곳은 평화로움의 천국일까, 아니면 무표정의 지옥일까?


과연 감정이 사라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루를 시작할까. 아침에 일어나면 피로도, 설렘도, 귀찮음도 없다. 출근길에는 아무도 밀치지 않고, 교통 체증 속에서도 누구도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회의에서는 의견이 서로 달라도 충돌하지 않고, 상사는 침착하며, 부하 직원은 효율적이다. 모두가 자신의 역할만을 착실히 수행한다.


표면적으로는 이상적이다. 하지만 그 질서는 생명보다 시스템에 가깝다. 누구도 화를 내지 않고, 아무도 웃지 않는다. ‘좋다’와 ‘싫다’는 감정이 아닌 수치의 문제로 환산된다. 감정이 제거된 사회는 결국 완벽하게 계산된 사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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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그렸던 이상향의 그림은 어쩌면 이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유토피아 인들은 욕망을 억제하며, 분노나 슬픔을 비이성의 흔들림으로 경계했다. 그러나 감정이 제거된 유토피아는 결국 인간이 없는 유토피아다. 인간은 완벽한 질서를 얻는 대신, 인간적인 흔들림을 잃었다.


예술은 언제나 감정의 언어로 태어난다. 감정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은 완벽하게 균형 잡히지만, 아무 울림이 없다. 음악은 정확한 박자를 유지하지만, 청자는 그 소리를 듣기만 할 뿐 느끼지 않는다. 문학은 문법적으로 완벽하지만, 독자는 한 문장도 마음에 새기지 않는다.


감정이 사라진 사회는 빛이 막힌 스테인드글라스와 같다. 무늬는 남아 있지만, 어느 조각도 진짜 색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감정의 결여는 사회에 평화를 주지만, 동시에 의미를 앗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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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긍정적인 감정만을 추구한다. 분노, 슬픔, 질투, 불안 같은 단어는 나쁜 감정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 감정의 어두운 면은 인간을 괴롭게 하지만, 동시에 성장으로 이끈다. 질투는 내면을 불안하게 하지만, 자기 자신을 발전시킬 동력을 제공한다. 두려움은 마음을 불안정하게 하지만, 우리를 생존으로 이끈다. 슬픔은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깨닫게 한다. 분노는 머릿속을 뒤흔들어 놓지만, 불의에 맞설을 준다.


감정은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들지만, 그 불완전함이 바로 인간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감정이 사라진 사회는 평화롭지만, 동시에 정지되어 있다. 분노가 없는 세상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슬픔이 없는 세상에서는 위로가 태어나지 않는다. 감정은 인간 사회의 소음이지만, 그 소음이야말로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포르투갈계 미국인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신경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감정이 사회적 인자와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감정 영역이 없어지면 사람들은 논리적으로는 완벽할지 몰라도, 자신의 의견을 바탕으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감정은 인간에게 있어 ‘좋다’ ‘싫다’를 구분하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즉, 감정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판단을 돕는 인지적 기능이다. 감정이 없는 사회는 윤리적 판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회의 사람들은 이익은 계산할 수 있지만, 옳음을 선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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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기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누군가의 향기, 음악 한 소절이 우리의 기억을 되살리는 이유는 감정이 기억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다면 추억도 없다. 기억은 감정이 스며들 때 비로소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감정 없는 세계의 사람들은 사건을 기록할 수는 있어도, 그 사건을 기억할 수는 없다.


기억을 잃은 사회는 역사를 잃는다. 감정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만 안다. 하지만 그 과거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느낄 수 없다. 그리하여 그 사회는 더 이상 인간의 서사를 이어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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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감정의 과잉 속에서 산다. SNS로 매 순간 감정을 기록할 수 있고, 좋아요와 댓글이 감정의 수치를 만들어낸다. 그런데도 우리는 점점 더 감정을 두려워한다. 감정적이라는 말이 비이성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시대.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곧바로 통제력을 잃은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조심스럽게 표현한 마음조차 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진짜 성숙한 사람은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다. 분노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줄 아는 것.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부터 오는 다양한 감정들을 감당할 줄 아는 것. 감정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어야 한다. 감정은 우리의 약점이 아니라, 우리의 세계를 연결하는 언어다.


감정이 사라진 사회는 효율적이다. 모두가 정확하고, 누구도 상처받는 일이 없다. 하지만 그 사회에는 ‘내’가 없다. 감정은 타인을 인식하게 하는 창. 감정을 잃는다는 것은 타인을 잃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 때문에 다투고, 감정 때문에 후회한다. 그러나 감정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때로는 용서한다. 감정은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들지만, 그 불완전함 덕분에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완벽하지 않기에 서로를 필요로 하고, 그 필요가 관계를 이어주는 가장 인간적인 힘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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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세상은 인간을 구하지 못한다. 우리를 구하는 것은 언제나 불완전한 감정이다. 분노와 사랑, 두려움과 희망. 그 복잡한 감정의 결이 인간의 얼굴을 만든다.


진정한 유토피아는 모두의 감정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감정을 감당할 수 있는 세상이다. 감정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결국 인간을 제거하는 실험과 다르지 않다. 그런 세상보다는, 때때로 분노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며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는 불완전한 세상이 진짜 살아있는 세상이 아닐까.


감정 없는 평화보다, 감정이 있는 불완전함이 낫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 유토피아는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감정의 공존 속에서 완성된다.



유토피아 실험실 - II. 인간성, 감정의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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