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의 부재

모두가 같은 자리라면 발전은 어디에서 오는가

by Garden




“그만 좀 비교했으면 좋겠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경쟁 속에서 자란다. 시험의 점수, 대학의 이름, 회사의 성과, 사회적 지위. 누가 더 잘났는지를 가늠하는 구조는 늘 존재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꿈꾼다. 경쟁이 없는 세상. 평가도, 비교도, 서열도 없는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


그 세상에서는 시험이 사라지고, 승진이 사라지고, 순위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비교하지 않고, 평가받지 않는다. 누가 더 잘났는지 묻지 않고,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도 신경 쓰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평등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 경쟁이 사라진 그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 되었다.



경쟁은 인간의 본능처럼 여겨져 왔다. 찰스 다윈은 에서 진화는 “적자생존”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경쟁은 생존을 위한 자연의 질서였다. 인간 사회의 경쟁은 그 본능이 문명 속으로 들어온 결과다. 물론 그것이 지나치면 불평등을 낳고, 고통을 만든다. 그러나 그 경쟁 자체가 사라진다면, 그 사회는 과연 더 인간적일까, 아니면 생명력을 잃을까?


경쟁 없는 사회에서는 모든 이가 비교 불가능한 존재로 취급된다. 음악가와 과학자, 화가와 기술자는 각각의 방식으로 존중받는다. 누구도 더 뛰어나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가 더 나은지 누가 더 대단한지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없다. 처음엔 그것이 진정한 평등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곧, 사람들은 기준이 없다는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기준이 없다는 것은 평가받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정받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노력해도 누군가에게 더 잘했다고 말해줄 사람이 없다. 그것은 해방이 아니라 공허였다. 누군가가 나를 평가하지 않으면, 내가 성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도 알 수 없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존재이기에 인정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자존감조차 방향을 잃는다.



경쟁의 부재는 곧, 선택의 부재로 이어졌다. 모든 의견이 존중되다 보니, 무엇을 채택하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할 수 없었다. 회의는 길어지고,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는다. 모두의 생각이 옳다면, 누가 더 잘했다는 평가가 없다면, 결국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다. 하지만 존중이 곧 정지가 되어버리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침묵이다.


경쟁이 사라지자, 혁신도 사라졌다.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는 열망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모두가 “지금도 괜찮다.”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더 나은 내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진보는 불만에서 태어나고 불만은 비교에서 태어난다. 비교는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지금껏 문명을 움직여왔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의 발전은 언제나 경쟁에서 출발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서로 경쟁하며 기술을 발전시켰고, 더 깊은 예술을 만들어냈다.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는 서로를 견제하며 완벽을 향한 인간의 집념을 보여줬다. 만약 그들 사이의 경쟁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토록 아름다운 예술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쟁은 언제나 위험하다. 경쟁이 승패의 문제로 변하면, 인간은 타인을 향한 질투와 증오에 사로잡힌다. 그때 경쟁은 발전이 아니라 파괴를 낳는다. 따라서 문제는 경쟁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방향이다. 건강한 경쟁은 타인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경쟁이 보이지 않는 신념 체계처럼 작동한다. 그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간다. 우리는 그럼 사회에 지쳐서 경쟁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정작 경쟁이 사라진 자리에는 의미 없음이라는 공허가 채워진다.


경쟁이 사라진 사회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점점 열정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건 내가 해내야 한다.’ 또는 ‘내가 더 나은 성과를 만들어 내겠다.’라는 의지를 가지지 않았다. 모두가 비슷하게 살아가며, 차이 없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모든 길이 옳기 때문에, 그 어떤 길도 특별하지 않게 되었다.


그 사회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이것이었다. “그냥, 좋아요.” 모두가 좋다고 말하지만, 그 좋음 속에는 아무런 감정도, 의미도, 에너지도 없었다. 그건 평화가 아니라 정지된 안도감에 불과했다. 경쟁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멈춰 있는 삶이었다.



경쟁의 부재는 자유의 부재이기도 하다. 경쟁이 인간의 자유를 갉아먹는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는 모순처럼 들리지만, 경쟁이 사라진 사회에서 인간은 선택할 자유를 잃는다. 모두가 평등하지, 누군가 뛰어오를 이유도 없다. 무언가를 더 하고 싶은 욕망은 불균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곳에 서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공간도 없다. 경쟁이 사라진 사회에서 인간은 평등의 감옥 속에 갇힌다.


나는 때로 경쟁이 인간의 잔인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잔인함의 존재로 인해 인간은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그 안에서 인간은 자신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배운다. 경쟁이 없다면 인간은 자기 한계를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 사회에서는 성장이 이루어질 수 없다.


경쟁은 인간의 불안을 자극하지만, 그 불안이 우리를 움직인다. 고요한 사회보다 더 살아있는 것은, 바로 흔들리는 사회이다.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물론 경쟁 없는 사회의 이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누구도 억눌리지 않고, 누구도 비교당하지 않으며, 모두가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는 세상. 그것은 아름다운 상상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속도가 유지될 때의 이야기다. 만약 그 속도가 멈춰버린다면, 그건 이상이 아니라 무기력이다.


진짜 유토피아는 경쟁이 사라진 세상이 아니라, 경쟁이 인간을 해치지 않는 세상이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고, 타인의 실패가 나의 성공이 되지 않는 사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더 나아가려는 의지를 잃지 않는 사회. 그런 경쟁이라면, 인간을 파괴하지 않고 진보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경쟁은 인간을 괴롭히지만, 그 괴로움 속에서 인간은 성장한다. 완전한 평등은 고요하지만, 그 고요 속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한다. 진짜 자유는 경쟁이 없는 곳이 아니라, 경쟁 속에서도 서로를 해치지 않을 줄 아는 곳에 있는 법이다.



<경쟁에 관한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들>

1. 경쟁이 없으면 협력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동물 사회에서 경쟁이 적절히 존재해야 오히려 협력 구조가 안정적으로 형성된다는 연구가 있다. 너무 여유로운 환경에서는 협력의 필요성이 줄어들어 공동체 행동이 약해지기도 한다.


2. 경쟁이 재미로 작동할 때 능력이 더 잘 발휘된다. 사람은 이겨야 한다는 압박보다 게임처럼 느껴지는 상황에서 집중력창의력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요즘 교육, 스포츠, 업무 성과에서 게임화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고 한다.


3. 자연에서도 경쟁은 꼭 강한 자가 이기는 구조가 아니다. 일부 새나 곤충은 직접 싸우는 대신 노래, 춤, 공간 장악 방식으로 경쟁한다. 즉, 많은 종에서 경쟁은 물리적 충돌이 아니라 표현력과 전략의 싸움이다.



유토피아 실험실 - III. 사회, 제도의 결핍



이전 11화고통의 부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