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이 없는 조직은 어떻게 방향을 잡을까
우리는 늘 누군가의 지휘 아래에서 살아왔다. 학교에는 선생이 있고, 회사에는 상사가 있고, 사회에는 지도자가 있다. 리더는 방향을 제시하는 존재, 그리고 책임을 지는 존재이다. 그러나 동시에, 리더는 통제의 상징이기도 하다. 명령하고, 평가하고, 때로는 억압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상상했다. ‘만약 리더가 없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나누고,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으며, 자기 일을 알아서 하는 세상. 리더의 부재는 자유일까, 아니면 방향을 잃은 평등일까?
그 사회에서는 상사가 사라졌다. 회의에는 의장이 없고, 결정은 다수의 합의로만 내려진다. 모두가 평등하게 의견을 제시하고 모두가 동등하게 책임을 나눈다. 프로젝트 매니저 없이도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함께 제품을 완성한다. 정해진 리더가 없어도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적은 여전히 달성된다. 서비스는 개선되고, 업무는 돌아간다.
이 사회는 놀랍게도 처음에는 꽤 잘 작동했다. 사람들은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고, 직원들은 더 이상 보조자로 불리지 않았다. 모두가 자신의 판단을 존중받았고, 결정은 합의의 결과로 내려졌다. 모두가 참여했고, 누구도 억눌리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완벽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균열이 생겼다. 책임이 분산되면서, 누구도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모두가 같이하자고 말했지만, 누구도 이렇게 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결국 프로젝트의 처리는 지연되었고, 누구도 그것을 잘못이라 부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누구의 결정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리더가 사라진 사회는 책임이 사라진 사회였다. 모두가 동등한 권한을 가지지만, 그 권한에는 책임이 따라오지 않았다. 우리의 결정은 언제나 옳았다. 하지만 우리의 실패는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공동체는 평등했지만, 동시에 무책임했다.
리더의 존재 이유는 단순히 명령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방향을 짊어지는 사람이다.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모두가 옳고, 모두가 두려운 상황에서 누군가는 결단해야 한다. 그 결단의 부담을 대신 떠안는 사람이 바로 리더다. 리더의 부재란, 곧, 결단의 부재다.
리더 없는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결정의 피로였다. 모두가 의견을 내고, 모든 의견이 존중받기에 하루에도 수십 개의 회의가 열렸지만,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결정이 내려지지 않으면, 시간은 공허하게 흘러갔다. 결국 평등은 비효율과 닮아갔다.
조직이 효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하다. 이는 권력이 정당하다는 뜻이 아니라, 조직이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선 결정을 내릴 중심점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리더는 권력의 상징임과 동시에 방향성의 장치였다. 그가 사라진 조식은, 중심을 잃은 원처럼 흩어졌다.
리더가 없는 세상이 정말 평화로울까? 아마 처음에는 그럴 것이다. 누구도 누군가에게 명령하지 않고, 억압도 불공정도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묻기 시작한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지?”
리더의 존재 이유는 통제나 권위 이전에 방향의 언어를 제공하는 것에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방향이 필요하다. 심리학적으로도 인간의 뇌는 결정된 질서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는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에너지를 덜 소모하고 더 빠르게 위험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은 매우 한정적이다. 리더 없는 사회는 모든 사람이 조금씩 불안해지는 사회였다. 누구도 억압받지 않았지만, 그 무 억압은 방향 없는 방목이었다.
리더의 부재는 공동체의 윤리를 바꿔놓았다. 누구도 위에서 명령하지 않으니, 모두가 자기 윤리를 따랐다. 그건 다양성과 자율의 승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개별 윤리 위에 공통된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이 바로 리더의 언어다. 리더는 윤리를 공유된 가치로 바꾼다. 그가 사라지면 공동체는 서로 다른 옳음이 충동하는 충돌의 장이 된다. 결국 그 평등은 균열로 변한다.
의료 현장을 한번 생각해 보자. 수술에 집도의가 정해져 있지 않고, 의사와 마취 전문 인력, 수술 간호사가 환자의 수술을 진행한다. 멀리서 보면 이상적이다. 각자의 전문성이 존중되고 위계는 사라진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최종 판단을 내릴까? 책임은 어떻게 나눌까? 환자가 위험해졌을 때, 판단이 충돌하면 누구의 말이 옳을까?
리더의 존재는 결국 결정의 속도와 무게를 보장하는 장치다. 집도의가 없으면 수술실은 민주적일지 모르지만, 그 민주주의는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리더는 완벽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결정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기 때문에 필요한 존재이다.
그렇다고 해서 리더가 반드시 권력과 책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리더는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미를 연결하는 사람이다. 리더의 부재로 인해 사람들은 각자의 일을 잘하지만, 그 일이 전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른다. 리더는 그 연결의 실존을 전달한다. 그의 존재가 있어야 조직은 ‘나’가 아닌 ‘우리’가 된다. 즉, 리더는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관점이다. 그 관점이 사라지면, 세계는 조각난 채로 남는다. 리더의 부재는 결국 이해의 부재다.
리더 없는 사회는 업무에 있어 완벽한 평등을 이루었지만, 그 평등은 정지된 평등이었다. 모두가 같은 높이에 서 있으니, 누구도 멀리 보지 못했다. 리더는 더 높이 서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보기 위해 존재한다. 그 시야가 없으면 사회는 자신의 발끝만 보며 제자리를 돈다.
리더가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길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길을 잃지 않는다는 건 올바른 길만 있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높은 확률로 길이 없다는 뜻이다.
리더는 인간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방향의 책임을 대신 져주는 존재이다. 리더가 없는 세상은 평화롭지만, 동시에 아무 데로도 가지 않는다. 진짜 유토피아는 리더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리더의 권력이 두려움이 아닌 신뢰로 작동하는 세상일 것이다.
유토피아 실험실 - III. 사회, 제도의 결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