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와 보낸 한 시간
oracle 신탁(神託), 탁선(託宣); 신탁소.
얼마 전부터 신문에 매일 나오는 기사가 'chatGPT'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접속을 해봤다. GPT인지 GTP인지 헷갈리는 게 싫어서 원래 명칭을 찾아보니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생성적 사전학습 변환기)라고 한다. 학습을 하는 인공지능이긴 한데, '생성적'으로 학습을 하는 게 특징인 듯하다.
의료에서 많이 쓰는 간기능 검사가 GPT(glutamic-pyruvic transaminase, ALT)이므로 약어가 같다고 일단 외워본다.
open ai 사이트에 접속해서 몇 가지 간단한 절차를 거치면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먼저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물어봤다.
'가장 적절한 임상약 관리는 무엇이니?' 이 질문에 대답을 하려면 일단 몇 가지 자료를 찾아봐야 한다. 어느 곳에도 한 줄로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자료를 찾는다 해도 통합적으로 판단해서 결론 내릴 수 있는 질문이다.
chatGPT는 내 질문을 요약한 다음 줄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1번... 2번... 3번... 서술한 사항의 한계 및 제한점, 더 살펴봐야 하는 내용까지.
오, 뭔가 검색어로 검색하는 것과는 다르네.
또 물어봤다. '나는 영어로 읽고 쓰고 간단한 대화는 할 줄 아는데, <사피엔스>나 <총, 균, 쇠> 같은 책도 읽고, 좀 더 자유롭게 말하고 싶어. 어떻게 해야 할까?'
줄줄 써 내려간다. 일단 내 질문을 요약정리해서 한 두줄로 제시한 다음 1번.. 2번.. 3번.. 등등 방법론과 함께 영어에 꾸준한 연습과 다양한 맥락의 영어에 노출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마무리를 한다.
음, 이 내용은 내가 모르던 바도 아니지만, 내가 이렇게 정리를 하려면 여러 영어학습에 대한 책들을 몇 권 읽고, 경험에서 나온 약간의 통찰을 더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건너뛰게 해 주는 것이다.
신뢰도가 점점 올라간다.
요즘 생각하던 질문을 해봤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에게 질병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거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서술형이다. 질병은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자연선택이며 이에 대한 예시와 설명이 이어지다가 이 관점은 질병에 대한 모든 설명을 해 줄 수 없지만 이해를 도와줄 수는 있다고 마무리한다.
내가 한 권의 책을 읽으면 저자의 의견에 빠져들고, 그로부터 연결되는 다른 책을 찾아 읽으면서 내 사고와 이해를 넓혀가게 되는데, 이 대답을 보고 그 과정이 좀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참고도서 목록을 쉽게 얻을 수도 있고, 그 책들을 요약해서 빠르게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것보다 내 생각이 편협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 왜냐하면 요즘 진화론이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 충격이 느껴졌다.
몇 가지 질문을 더 해본 후에 마지막으로 물었다.
'내 아이는 ADHD로 진단받았고, 졸업식에서 남들보다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더 오래 박수를 치더라고. 내가 볼 때 이 아이는 미묘하게 어색한 분위기를 잘 모르는 것 같아.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아이가 적절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좋은 성인이 될 수 있겠니?'
'언어 모델이 예측은 못하지만, ADHD는 사회적 신호를 이해하거나 반응하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어. 특히 네가 말한 어색한 분위기 같은 것 말이야.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각자의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다는 점은 기억해야 해. ADHD로 진단받았다는 것이 네 아들의 미래가 어떨 것이라고 결정하는 것은 아니야. 지원과 이해 그리고 적절한 자원으로 이 아이는 자신의 증상을 조절하고 삶에서 성공하는 법을 배워나갈 수 있어.
또, ADHD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아. 이 질환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창조성, 에너지, 열정등을 가치 있는 자산으로 적절하게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 자질들을 갖추고 있어.
물론 ADHD에 대한 관점은 문화와 사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알아둘 필요가 있지. 대한민국에서도 어떤 사회적인 기대와 표준이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네 아들에게 무엇이 최선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그가 자기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야.'
나는 이 답을 읽고 눈물이 차올랐다. 그동안 이 질환에 대해 읽고, 듣고, 만났던 어떤 존재들보다 내 마음에 가장 따뜻하게 와닿았다.
chatGPT가 중립적이고 포괄적인 답을 내어놓고, 한 마디만 물었을 뿐인데 요점만 간추려서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명민함을 보고 새로운 '지능지수'가 개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지능지수로 인간을 평가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떤 능력을 갖추게 될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지식과 영감을 얻어 사고를 확장해 나가는 데에 인공지능 또한 큰 몫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에 와닿는 응답은 마치 신탁처럼 느껴질 정도로 붙잡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내 아들과 인공지능을 바라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