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위대함에 대하여
연출: 이장훈
각본: 이장훈, 손주연
개봉: 2021.09.15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국가: 대한민국
러닝타임: 117분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 오늘부로 청와대에 딱 54번째 편지를 보낸 ‘준경’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마을에 기차역이 생기는 것이다. 기차역은 어림없다는 원칙주의 기관사 아버지 ‘태윤’의 반대에도 누나 ‘보경’과 마을에 남는 걸 고집하며 왕복 5시간 통학길을 오가는 ‘준경’. 그의 엉뚱함 속 비범함을 단번에 알아본 자칭 뮤즈 ‘라희’와 함께 설득력 있는 편지 쓰기를 위한 맞춤법 수업, 유명세를 얻기 위한 장학퀴즈 테스트, 대통령 배 수학경시대회 응시까지! 오로지 기차역을 짓기 위한 ‘준경’만의 노력은 계속되는데...! 포기란 없다 기차가 서는 그날까지!
넷플릭스에서 볼 콘텐츠를 찾던 중 <기적>이라는 영화가 눈에 들어와 시청하게 되었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뭉클함과 코믹함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영화였다. 제목이 <기적>인 것처럼 '저게 된다고?' 싶은 설정이나 장면들이 존재했다. 그렇지만 그게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흥미롭게 느껴졌다. 작품 속의 모든 일이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때문이라 생각한다. <기적>이라는 작품은 내게 사랑이 이루어낸 기적을 보여주었다.
주인공 준경은 기차역과 멀리 떨어진 마을에 산다. 마을 밖으로 나가려면 터널 3개를 지나 한참을 걸어서 승부역까지 가야 하는데 그마저도 위험천만한 철길로 다녀야 한다. 승객 열차와 달리 화물 열차는 정해진 운행 시간이 없기 때문에 화물 열차로 인한 인명 사고가 발생하기 일쑤다. 이에 준경은 마을에 간이역을 만들고자 끊임없이 청와대에 편지를 보낸다. 같은 반 친구인 라희의 제안과 자신의 천재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열차 탐지 신호등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갖은 방법을 동원해 고군분투하지만, 일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준경은 17살 정도 되는 학생인데 그런 아이가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얼마나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없었고, 어른들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일을 10대 학생이 해왔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준경이 기차역 세우기에 이토록 진심인 이유는 누나 보경의 사고 때문이다. 보경은 6년 전 준경의 시상식에서 돌아오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 철교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열차를 피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준경의 트로피가 떨어질 뻔하는데 이를 잡으려다 철교 밑 강물에 빠져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죽은 후에도 준경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함께 생활한다. 영화를 보며 6년이 지나 성장한 준경과 달리 왜 보경의 모습은 그대로인지 궁금했는데 해당 에피소드에서 답을 얻게 되었다. 준경도 누나가 있는 집을, 누나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데 남매간의 우애가 얼마나 깊은지 느낄 수 있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삶과 죽음의 만남을 이뤄낸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눈앞에서 누나의 사고를 목격한 어린 준경의 슬픔과 죄책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겠다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저릿했다.
준경은 엄마에 대한 죄책감도 가지고 있다. 과거에 엄마가 자신을 낳다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심지어 아빠 태윤은 누나의 사고 이후 그를 제대로 봐주지 않는다. 준경은 그런 아빠에게 칭찬을 받고자 마을 간이역 설치에 열과 성을 다한다. 결국 마을 사람들과 양원역이라는 간이역을 세우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데에는 실패한다. 기대만큼 실망이 컸던 준경은 양원역에 기차가 서지 않자 자신의 꿈까지 포기해 버리려 한다. 미국 나사로 유학을 갈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시험에 응시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그동안 준경이 심적으로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생각하니 안쓰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초등학생 때부터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다는 건데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던 걸까. 그래서 간이역 설치에 집착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냉혹한 현실에 그런 목표마저 없었다면 살아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양원역 개통에 실패한 뒤 삶의 의욕을 잃은 채 꿈을 포기하게 되었던 준경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준경이 차갑게만 여겼던 태윤은 알고 보면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빠다. 태윤은 준경이 혼자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태윤이 시험을 보러 갈 수 있도록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사실 태윤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다. 기관사로 일을 하느라 아내를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 준경의 시상식에 자기 대신 보경을 보내 사고를 당하게 했다는 생각에 큰 죄책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보경의 사고 당시 운행되었던 열차는 태윤이 운전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준경마저 보낼 수 없다는 마음에 아들을 멀리하고 말았다. 태윤이 이러한 속내를 준경에게 털어놓는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배려하는 태도가 두려움과 오해를 낳았다는 게 너무나 속상했다. 그만큼 사랑을, 진심을 충분히 표현하는 일도 굉장히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아빠와 누나의 도움으로 시험을 본 준경은 결국 전국 1등으로 뽑혀 미국 유학을 가게 된다. 그렇게 영화가 마무리되는데 사랑이 주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가족 간의 사랑이 삶과 죽음을 이어주었고, 간이역 설치를 소망 및 실행하게 만들었으며,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었다. 이 외에 남녀 간의 사랑도 등장했는데 준경과 라희의 풋풋한 로맨스가 바로 그것이다. 라희의 적극적이면서 지고지순한 마음 덕분에 준경도 삭막했던 일상에서 행복을 꿈꿀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렇듯 영화 <기적>을 통해 다양한 관계에서 오는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웃음 포인트는 이야기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기적>은 제목 그대로 기적이 난무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