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끝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다
연출: 스티븐 스필버그
각본: 제프 네이단슨, 사샤 저바시
개봉: 2004.08.27
장르: 코미디, 로맨스, 드라마
등급: 전체 관람가
국가: 미국
러닝타임: 128분
동유럽 작은 나라 ‘크라코지아’의 평범한 남자 빅터 나보스키. 뉴욕 입성의 부푼 마음을 안고 JFK 공항에 도착한다. 그러나 입국 심사대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들려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 바로 그가 미국으로 날아오는 동안 고국에선 쿠데타가 일어나고, 일시적으로 ‘유령국가’가 되었다는 것.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뉴욕에 들어갈 수도 없게 된 빅터. 아무리 둘러봐도 그가 잠시(?) 머물 곳은 JFK 공항 밖에 없다. 하지만 공항 관리국의 프랭크에게 공항에 여장을 푼 빅터는 미관(?)을 해치는 골칫거리일 뿐. 지능적인 방법으로 밀어내기를 시도하는 프랭크에 굴하지 않고, 바보스러울 만큼 순박한 행동으로 뻗치기를 거듭하는 빅터. 이제 친구도 생기고 아름다운 승무원 아멜리아와 로맨스까지 키워나간다. 날이 갈수록 JFK공항은 그의 커다란 저택처럼 편안하기까지 한데…. 그러나 빅터는 떠나야 한다. 공항에선 모두들 그러하듯이. 과연 그는 떠날 수 있을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의 영화 <터미널>은 전공 수업에서 처음 알게 된 작품이다. 그때는 이런 영화가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넘겼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문득 생각이 나 시청하게 되었다. <터미널>은 실화 모티브 영화로, 18년 동안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머물렀던 이란인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한다. 무국적자가 되어 공항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한 엄청난 상황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앞으로 어떤 에피소드가 펼쳐질지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또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인 만큼 기다림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기다림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터미널>은 코믹한 연출을 통한 웃음과 사람들 간의 정에서 오는 따뜻함을 함께 얻을 수 있는 영화였다.
주인공 빅터 나보스키는 동유럽 (가상의) 국가 크라코지아 사람이다. 그런데 뉴욕의 JFK 공항에 도착함과 동시에 위기를 맞이한다. 그가 미국으로 오는 동안 고국에서 쿠데타가 벌어진 탓에 비자가 취소되고, 크라코지아행 항공편 운행도 중단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에 따라 공항 관리국 측에서는 빅터가 국제선 환승 라운지에 머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준다. 임시로 지낼 곳이 생긴 건 다행이었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빅터의 상황이 마치 거짓말 같았다. 외국에 도착하자마자 국적을 잃게 되는 일은 흔하지도, 예상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러한 시련이 몰아쳤다면 멘털이 남아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실 빅터를 국제선 환승 라운지에 머물도록 해 준 공항 관리국 책임자 프랭크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국장 승진 감사를 앞두고 있던 프랭크는 빅터가 자신의 관할 구역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래서 빅터가 공항을 탈출하게끔 유도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프랭크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다. 빅터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말이 통하지 않으면 그만큼 더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데 크라코지아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해 주지 않는다. 자기 입장에서 자기 할 말만 할 뿐이다. 이 때문에 빅터는 고국의 모습을 TV 뉴스로 접하게 된다.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중요하다고 해도 나라를 잃은 사람에 대한 일말의 온정도 없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다. 빅터가 안정을 취하도록 돕고, 사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게 모두에게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상황에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그곳에서 반항하거나 도망치지 않은 빅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빅터는 공항 생활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잘 곳을 직접 정비하고, 영어 공부를 하고, 매일같이 입국 심사 서류를 제출해 허가를 받으려 시도한다. 심지어는 돈 버는 방법도 터득한다. 사람들의 공항 카트를 대신 반납하는 것으로 동전을 얻는다. 이후에는 뛰어난 인테리어 실력으로 공항 현장 공사팀에 채용되기까지 한다. 이와 동시에 공항 내 직원들과 친구가 되고, 승무원 아멜리아와는 잠깐의 로맨스를 경험하게 된다. 공항 관리국 측의, 정확히 말하자면 프랭크의 방해가 있었음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적응해 나가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공항에서 생활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었던 것도 맞긴 하지만, 그런 공항 생활을 즐겁게 만드는 데는 빅터의 긍정적인 성격이 한몫했다. 어두컴컴한 그의 상황을 밝혀준 것은 다름 아닌 빅터 자신이었다. 공항을 탈출하는 등의 잘못된 일을 저지르지 않으려는 바른 태도와 매사 친절하면서도 낙천적인 태도가 그의 주변으로 좋은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그렇게 9개월 동안 공항에서 지내며 모두와 친해졌을 즈음 헤어져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 크라코지아의 내전이 끝나 모든 게 정상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에 따라 빅터는 자신이 미국에 온 목적을 달성하고자 뉴욕에 가려 했으나, 프랭크가 이를 저지한다. 그동안의 여러 일들로 빅터에게 적대심이 생긴 프랭크는 빅터와 친해진 공항 친구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그를 협박한다. 친구들을 실직시킬 수 없었던 빅터는 뉴욕에 들리지 않고 곧장 고국에 갈 채비를 한다. 하지만 프랭크를 제외한 공항 관리국 직원들과 공항 내부 사람들은 전부 빅터의 편이다. 결국 모두의 도움으로 빅터는 공항을 벗어나 뉴욕으로 향할 수 있게 된다. 빅터가 좋은 사람이었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나 온정 많은 사람을 프랭크는 왜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함께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공항 관리국 직원들이 상사인 프랭크의 지시를 전혀 듣지 않고 빅터를 도왔을 때 참으로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빅터가 그리도 뉴욕에 가고 싶어 했던 이유는 그의 아버지에게 있었다. 빅터의 아버지는 엄청난 재즈 팬이었고, 유명 재즈 뮤지션들의 사인을 모아 왔다. 그런데 마지막 한 명이었던 베니 골슨의 사인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빅터는 마지막 사인 하나를 모아 아버지의 꿈을 완성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공항을 떠나 뉴욕으로 간 빅터는 베니 골슨의 사인을 받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택시에 타 어디로 가냐는 기사의 물음에 '집에 갑니다'라고 답한다. 이 대사를 듣고 뭉클함이 밀려왔다. 9개월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결국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빅터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희망을 가진 채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목표를 이루게 된다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인물인 아멜리아는 빅터와의 짧은 사랑을 뒤로한 채 결국은 원래의 남자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빅터의 친구이자 공항 청소부인 굽타는 자신이 도망쳐 온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들에게는 좋든 싫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거 아닐까 싶었다. 이렇듯 영화 <터미널>은 실화를 흥미롭게 각색함으로써 우리에게 여러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