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벨만스

영화 그 자체였던 거장의 삶 속으로

by 가령


기본 정보

연출: 스티븐 스필버그
각본: 스티븐 스필버그, 토니 커쉬너
개봉: 2023.03.22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국가: 미국
러닝타임: 151분


전 세계가 사랑한 거장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그 위대한 꿈의 시작! 난생처음 극장에서 스크린을 마주한 순간부터 영화와 사랑에 빠진 소년 ‘새미’. 아빠 ‘버트’의 8mm 카메라를 들고 일상의 모든 순간을 담기 위해 열중하던 새미는 우연히 필름에 포착된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고 충격에 휩싸인다. 진실을 비추는 필름의 힘을 실감한 새미에게 크고 작은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엄마 ‘미치’의 응원으로 영화를 향한 열정은 더욱 뜨거워져만 가는데…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 영화의 모든 순간과 사랑에 빠진다!




영화 <파벨만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지난주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의 <터미널>이라는 영화를 리뷰하던 중 <파벨만스>가 떠올라 감상하게 되었다. 사실 이전부터 보고 싶다고 생각해 왔지만, 151분이라는 러닝타임에 매번 시작을 망설이다 다음을 기약하곤 했다. 그러다 며칠 전 마음을 먹고 보게 된 것인데 높은 평점을 받은 작품이라는 점이 잘 느껴지는 영화였다. 감독님이 겪어 온, 감독님이 생각하는 예술과 영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 곱씹어보게 되는 영화이기도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흡인력 있게 연출하여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


<파벨만스>는 어린 새미가 부모님과 함께 영화 '지상 최대의 쇼'를 보러 극장에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화를 본 적 없던 새미는 극장에 들어가기 전 겁을 먹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그 매력에 사로잡히고 만다. 특히 기차 충돌신을 인상 깊게 본 그는 집에서 장난감 기차를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기차에 대한 흥미라기보다는 영화에 대한 흥미였는데 장난감 기차로 충돌신을 직접 촬영하며 재미를 느낀다. 이후 여동생들과도 촬영을 하고, 좀 더 큰 후에는 친구들과 영화를 제작해 상영까지 해낸다. 나도 한때 영화 연출 공부를 했던 적이 있고, 다양한 장르의 영상을 제작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장면들에, 새미가 느끼는 즐거움에 공감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새미의 남다른 실행력이 놀랍기도 했다.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고 하더라도 어린아이가 그걸 직접 찍어봐야겠다고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인데 새미는 행동으로 옮겨냈다. 떡잎부터 다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런 새미의 집안은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의 전쟁터다. 아빠 버트는 엔지니어, 엄마 마치는 피아니스트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만큼 두 사람의 성향이 대비된다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버트는 새미의 영화 제작 일을 취미로 치부해 버린다. 반면 마치는 새미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먼저 눈치채고 지지해 준다. 즉 새미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 기차 자체는 버트, 이를 촬영하는 영화는 마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새미는 엄마 마치와 더 닮아있었다. 새미는 예술가적인 모습을 알아주는 엄마와 예술보다 과학을 했으면 하는 아빠 사이에서 남모를 고충을 겪었을 것이다. 초반에는 화목하다고만 여겼던 집안 분위기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안정하게 변해가는 듯했다. 버트와 마치 사이에 자리 잡고 있던 보이지 않는 간극이 서서히 밖으로 드러났고, 그 가운데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생겨남을 느낄 수 있었다.


왠지 모를 불안함은 마치의 불륜으로 현실이 되고 만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던 탓인지 마치는 버트의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인 베니와 사랑을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새미가 이를 포착하게 된다. 베니와 함께한 가족 캠핑에서 촬영한 영상들로 영화를 만들다가 둘의 불륜을 발견한 것이다. 여기서 비롯된 충격과 배신감으로 인해 새미는 더 이상 영화를 제작하지 않으려 한다. 게다가 전학 간 학교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힘까지 당하게 된다. 그에게 호의를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학교 폭력이 남긴 상처가 더 크지 않았을까. 10대 고등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위태로운 가정환경, 이제는 믿지 못하게 된 사람들, 정체성에서 비롯된 따돌림 등의 모든 일들은 그를 무력감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꿈과 미래를 생각할 경황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대목에서 마치의 삼촌 보리스가 새미에게 "우린 약쟁이야. 예술은 우리의 마약이고. 가족은 사랑하지만, 예술은 우릴 미치게 하지. … 넌 네 영화를 만들고 예술을 하게 될 거야. 그리고 그 고통을 떠올릴 거다. 예술이 하늘의 왕관과 땅의 월계관을 줄 테지. 허나 네 가슴을 찢어놓고 널 외롭게 할 게다."라고 말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대사 자체가 인상적이기도, 하나의 예언처럼 들리기도 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새미가 학교 행사 영상 제작을 맡으면서 다시 영화를 시작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큰 사건을 한 번 더 겪어야 했으나, 새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영화를 완성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해당 영화는 졸업 파티에서 상영되어 동급생들에게 좋은 평을 받는다. 이를 계기로 자신을 괴롭혔던 로건과 화해를 하기도 하는데 로건을 영웅처럼 멋있게 그려내었기 때문이다. 연출을 위해서라면 개인적으로 안 좋은 감정이 있는 인물도 근사하게 만들어낼 줄 아는 새미를 보며 그가 영화에 얼마나 진심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영화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렇게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새미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주변 환경을 향해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 새미는 아빠 버트와 생활한다. 원치 않는 대학에 다니며 영화·방송계 취업을 준비하는데 상황이 잘 풀리지 않다 보니 공황까지 겪게 된다. 이러한 모습을 본 버트는 드디어 새미의 꿈을 인정하고 응원해 준다. 이와 함께 새미는 구직을 위해 편지를 보냈던 CBS 프로덕션으로부터 답장을 받는다. 곧바로 CBS를 방문한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영화에 영감을 준 존 포드 감독도 만나게 된다.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새미에게 존 포드 감독은 "이걸 명심해. 지평선이 바닥에 있으면 흥미롭고, 지평선이 꼭대기에 있으면 흥미롭고, 지평선이 가운데 있으면 더럽게 재미없어."라는 조언을 건넨다. 이 말에 따라 화면의 가운데 있던 지평선이 아래쪽으로 이동하며 <파벨만스>도 막을 내린다.


영화 연출 방식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지평선이 사람의 삶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그래프를 그렸을 때 일직선으로 나타나는 삶은 재미가 덜한 반면 위아래 굴곡이 있는 형태로 나타나는 삶은 흥미롭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저 평탄한 인생보다 때로는 고난을, 때로는 행복을 맛본 인생에 그만한 가치가 부여된다는 이야기로 해석을 해 볼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 역시 여러 역경을 겪으며 살아왔기에 이렇게까지 대단한 감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의 열정과 재능도 무시할 수 없지만 말이다. <파벨만스>의 새미도 앞으로 흥미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새미가 걷는 길의 지평선이 아래로 내려가며 영화가 끝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마무리 덕분에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여운이 더 강하게 남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파벨만스>는 감독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예술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고, 그만큼 여러 대사들과 장면들이 가슴속에 남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엿보고 싶은 이들에게 <파멜만스>를 추천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화] 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