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얼굴

틀에 갇힌 채 살아간다는 건

by 가령


기본 정보

연출: 연상호
각본: 연상호
개봉: 2025.09.11
장르: 미스터리,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국가: 대한민국
러닝타임: 103분


“이 분이 저희 어머니라고요?” 태어나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만드는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에게 경찰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40년 전 실종된 아내이자 어머니 정영희의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것. 얼굴조차 몰랐던 어머니가 살해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임동환은 아버지 임영규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PD 김수진과 함께 어머니의 죽음을 추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40년 전 어머니와 함께 청계천 의류 공장에서 일했던 이들의 기억을 통해 가려진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어느 날 우연히 본 영화 프로그램에서 <얼굴>이라는 작품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렇게 영화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접한 후 전체적인 내용이 궁금해져 본편을 시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작품을 감상한 지는 꽤 되었는데 얼마 전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정신이 없었던 터라 조금 늦은 리뷰를 올리게 되었다. <얼굴>은 미스터리한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낸 만큼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여러 인물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어 매번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걸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개인적으로 후반부와 결말 관련해서 큰 임팩트가 있는 작품은 아니라고 느꼈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지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는 내게 너무나도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주인공 동환은 아버지 영규와 함께 살아간다. 영규는 시각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도장을 만드는 전각 장인으로 성공한 인물이다. 방송국에서 그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40년 전 집을 나간 어머니 영희의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산에 묻힌 채 발견되어 타살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뭐가 어찌 된 일이든 동환은 사체가 발견됨에 따라 영희의 장례를 치르게 되는데 장례식장에서 이모들, 그러니까 영희의 언니들과 마주한다. 그런데 그들은 유산 상속을 포기해 주면 안 되겠냐는 둥, 영희는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사진 같은 것도 없다는 둥 무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이 부분을 보는 동안 동환의 기분이 얼마나 착잡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어머니 소식만으로도 평화롭던 동환의 삶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기엔 충분했는데 이모들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상황은 더욱 가관이 되었다. 아무리 얼굴도 모르고 추억도 없는 어머니라 해도 말이다.


영규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PD인 수진은 영희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조사를 시작한다. 동환 역시 그녀와 동행하게 된다. 둘은 과거 영희와 함께 섬유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차례로 인터뷰하는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영희의 얼굴이 추할 정도로 못났다는 것. 그리고 당시 사장이었던, 막강한 권력을 지녔던 백주상이라는 인물에게 성폭행당한 동료를 대신해 맞서 싸우다 그의 눈밖에 났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얼굴>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영희의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연출을 취했다. 그렇다 보니 ‘세상에 얼마나 못생겼으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저렇게 이야기하지?’, ‘사실은 그리 못생기지 않았던 거 아냐?’ 등 영희의 외모에 대한 의문만 가득 생겨났다. 또 사장이 범인이라기엔 너무 뻔한데 영희한테 원한이 있을 만한 사람, 그녀를 죽일 만한 사람이 대체 누구일지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했다.


백주상에게 수상함을 느낀 수진과 동환은 그를 찾아간다. 그런데 여기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영희를 죽인 자는 다름 아닌 남편 영규였다는 것. 이 말을 듣고 멘붕에 빠진 동환은 곧장 집으로 가 영규에게 진실을 묻는다. 이에 대한 영규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그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주변의 손가락질과 무시를 견뎌내야만 했다. 그러다 자신을 잘 챙겨주는 영희를 만나게 되었는데 영희가 예쁘게 생겼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잡아야겠다 싶어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이후 영희가 못생겼음을 알게 되자 깊은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모두가 합세해 앞이 보이지 않는 자신을 놀려먹은 느낌이었다. 설상가상 영희의 저항으로 자신도 백주상의 눈밖에 날 위기에 처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죽여버린 것이었다. 이러한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영희의 설움에 포커스가 맞춰졌던 터라 영규의 입장은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부당한 이유로 극심히 억눌리며 살아온 그의 사연을 들으니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물론 살인은 명백한 범죄지만...


영규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이 중요했다. 자신의 도장도 아름답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아왔던 것이다. 반면 추한 모습의 아내는 걸림돌이자 약점으로 작용했다. 그는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들을 치워내며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 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외적인 걸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없는 영규에게 내면보다 외면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걸 보며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오히려 시각장애를 가졌기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겠지. 영규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다 자신만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백주상에게는 권력이 중요했다. 앞에서는 사람 좋은 척하며 평판을 쌓는 반면, 뒤에서는 거슬리는 이들을 처리해 버리는 이중적인 사람이었다. 수진 PD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진짜 속마음은 어땠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영희의 이야기를 캐고 다니면서 카메라를 가방에 숨긴 채 몰래 촬영을 해왔다. 동환에게도 동의를 구하지 않았을 만큼 상대의 감정보다 일적인 결과물이 우선이었다.


아버지 영규의 이야기와 다른 인터뷰이들의 증언에 영향을 받은 동환. 그는 수진이 진실을 밝히지 못하도록 막는다. 여러 사람들의 말이 유사하니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게 아닐까. 그러다 동환은 수진이 건네준 영희의 사진을 보고 오열한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영희의 외모가 그리 못나지 않았기 때문인 듯했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사회 분위기나 흐름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영희는 그때 그 시절 사회가 만들어낸 하나의 희생양이었다. 많은 이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에는 일종의 사회적 틀이 형성되기 마련이니 지금도 영희처럼 불합리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여럿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기 좋은 환경을 위해서는 각자 자신만의 줏대와 용기를 가질 필요도 있겠다. 이런 점에서 영화 <얼굴>은 관객에게 지금까지 어떤 태도로 세상을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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