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변호사의 하루
포항에서 개업을 한 뒤 국선변호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국선 전담하는 변호사가 있는 곳도 있지만, 포항은 몇몇 변호사들이 지원을 해서 국선변호인이 되면, 당번처럼 돌아가며 국선 변호를 하는 형식이다. 재판부 별로 담당 국선변호인들이 4-6인 가량 지정되어 있고, 피고인에게 사선변호인이 없다면 재판부가 국선변호사를 선정해준다. 국선 사건은 사선 사건의 수임료보다는 적은 실비조의 금원이 지급되기 때문에, 국선변호인은 형사재판 진행에 있어 사선변호인에 비해서는 기본적인 변호만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형사사건의 변호활동은 피고인이 공소사실(기소의 원인이 된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경우와 인정하지 않는 경우로 크게 나뉜다.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자백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자백사건에서 변호인은 범죄를 저지른 것을 인정하니 다른 사정을 감안해 형을 낮게 해달라는 선처의 호소로 변론을 진행한다. 만약 공소사실을 부인한다면 기소된 범죄에 대해서는 난 결백하다, 그러니까 무죄를 주장하는 것인데 그러한 경우 피해자 등 주요 참고인들을 법원에 불러 증인신문을 하는 등 여러가지 입증 활동을 해야한다. 그렇기에 국선 사건의 경우 대부분은 자백을 하고 선처를 구하며 마무리하는 편이고, 변호사에 따라서는 국선사건은 자백하지 않을 경우 사선변호사를 선임하라고 권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국선피고인이 무죄 주장을 하고 싶어하면 증인신문을 포함한 기본적 절차는 진행해주려 노력하고 있고, 그것이 변호사의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내가 국선을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에서 사건이 하나 왔다. 죄명과 공소사실이 8개인 사건이었다. 대부분 업무방해죄였고, 협박과 모욕도 있었다. 한마디로 동네에서 깽판을 치고 다니던 한 아저씨의 이야기다. 출소 후 포항의 한 동네 원룸에 살게 된 A씨는 근처 마트에 자주 왔는데 계산대에 물건들을 잔뜩 올려놓은 뒤 화장실이 급하다고 사라지기 일쑤였다. 기다리는 뒤의 손님들 때문에 점원이 계산대 위 물건들을 치우면 얼마 뒤 돌아와 큰소리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트에 와서는 물건을 고른다고 만지작거리며 위치를 옮겨 놓고, 신발을 신었다 벗었다 하고, 계산대 위에 물건을 쌓아둔 뒤 화장실로 사라지고 그런 식인데, 마트 점장이 와서 한마디라도 하면 역시 큰 목소리로 화를 내고 욕을 했다.
근처에 사는 식당, 세탁소 등 이웃들에게도 뜬금없는 협박과 방해가 이어졌다. 피고인 본인은 자신의 목소리가 커서 다들 오해한 것이라고 했지만 피해자들에겐 밤길을 다니는 것도 힘든 공포였다. 길에서 만난 얼굴을 아는 여성이 본인을 모른 척하고 피해 지나가자 뒤에다 대고 "야! 너 밤길 조심해라!" 소리치기도 하고, 집 근처 주점에 들어가 손님 한명과 싸움이 붙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그 동네에서 무섭고 두려운 대상이었던 것 같다.
피해를 이웃들의 고소들이 하나 둘 모여 10개에 가까운 사건이 되었고, 그는 기소 전 사전 구속되었으며, 수사기관은 이 모든 사건을 병합해 수사한 뒤 한꺼번에 기소했다. 수사기관에서의 피해자들 증언도 명확하고 다른 증거들도 많았기에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는 것이 합리적인 사안이었기에, 구치소 접견을 가 자백하고 반성하는 모습으로 선처를 구해보자 설득했는데 피고인의 입장은 확고했다. 한마디로 본인은 그런 적이 없고, 귀가 어두워 목소리가 큰 것 때문에 이웃들이 오해해 이 사단이 났다는 것이다. 증거가 명확해 무죄 주장이 오히려 양형면에서는 좋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정말 목소리가 컸다. 변호인과 접견하는 중간에도 교도관이 들어와 조용하라고 주의를 주고 갈 정도였으니까) 한시간 가까운 접견을 하고 무죄 주장을 하기로 한 뒤 교도소를 나왔다. 한숨이 나왔다.
재판에서 공소사실 10개의 범죄를 모두 부인하고 증인은 8명을 부르게 되었다. 피해자들 모두가 법원에 소환되어 한 때 공포의 대상이었던 피고인 앞에서 그의 잘못에 대해 다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무죄추정이 적용되는 우리 형사재판에서는 피해자 증언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다. 단, 피해자들이 특별히 요청하면 재판부는 피고인과 비대면으로 증인신문을 하는 것을 허가하기도 한다.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들 대부분은 증거기록에 있는 사실대로 증언하였다. 그런데 두번째 증인신문이 있던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 날 증인은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여성인데, 그의 식당 앞에서 피고인이 고함과 폭언으로 업무를 방해하였다는 것으로 경찰의 신고접수 내역과 이웃들의 증언으로 기소된 사건이었다.
"식당은 언제부터 운영했나요?"
"안해요, 문만 열어놓지 운영은 안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질문하는 검사가 흠칫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문을 열어놓았다는 것은 손님이 들어오면 밥을 팔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요?"
"아뇨... 손님은 없어요. 코로나로 그리 된지 오래이고, 손님이 온다해도 식당 운영은 안했습니다"
이럴 경우 업무방해죄의 객채인 '식당 업무'라는 것이 없었던 것이기에 업무방해죄가 성립될 수 없을 것이었다. 경찰과 검찰은 식당이니 당연히 영업장이라 생각하고 실제 식당 운영은 하는지 안하는지 조사하지 않은 채 기소했던 것이다.
"그래도 식당 앞에서 피고인이 증인에게 쓰레기 안 치우면 영창 보내버린다고 소리쳤을 때 무서웠겠네요"
"네"
검사는 협박죄로라도 공소사실을 변경할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반대신문을 하며 내가 물었다.
"증인은 혹시 피고인을 처벌할 의사가 지금도 있나요?"
"아뇨... 동네에서 좋게도 자주 봤던 분이고,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니어서 이제 처벌의사는 없어요"
협박죄는 친고죄이기에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 처벌불원의사를 표명하면 처벌할 수 없고, 판사는 공소기각 판결을 내리게 된다. 증인을 불러 물어본 것만으로, 피고인의 업무방해죄 혐의는 무죄 판결만큼이나 유리한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지게 된 것이다.
다음 증인신문을 한 증인도 협박죄의 피해자였는데 역시 신문 끝에 처벌불원의사를 표명했다.
그들이 앉아있는 피고인이 무서워서, 혹은 진심으로 처벌 불원의사를 말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피고인의 변호인으로서는 반드시 물어보아야 할 부분이었고, 역시 공소기각 판결 대상이 되었다.
결국 피고인의 죄는 두개가 사라졌다.
나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지만, 무작정 결백을 주장하는 피고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르게 된 증인들이었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많은 증인을 불러 증인신문한 것이 잘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럼에도 남은 죄가 많고 컸기에 그에게는 실형이 선고되었다.
하지만 업무방해죄와 협박죄 사안까지 더해졌다면 징역형의 기간은 훨씬 더 늘어났을 것이다.
너무 명백한 사안이어서 모두 자백하고 선처 구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었는데, 피고인의 고집으로 모두 무죄 주장을 하며 증인들을 불렀고, 결국 그 중 몇 가지 죄들은 사라져버렸다. 피고인이 무죄 주장을 요구할 땐 납득되지 않아도, 내가 국선 변호인이어도 들어주는 것이 맞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피고인에겐 변호사가 꼭 필요하다.
국선변호인인 내가 없었다면, 증인신문에서 업무방해죄의 업무성, 협박죄의 처벌불원의사를 물어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