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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 Mar 05. 2024

그게 뭐가 중요해!

아들이냐 딸이냐

영양제를 챙겨 먹고 운동을 하며 임신준비를 차근차근해오던 우리는 준비기간 내내 양가 부모님들께 조차도 '우리 임신해 볼 거야!'라고 말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느 날에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어느 날에는 지속적으로 2세 이야기를 하는 말에 신물이 나서 결국 굳건한 우리의 생각에 약간의 지각변동이 생겼으니 그저 가만히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반응은 두 가지였다. (하긴 두 곳에  말했으니 반응은 당연히 두 가지로 갈릴 수밖에)


"이제라도 생각이 바뀌었다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이왕이면 아들을 낳아라"


하하하

글만 봐도 어디서 누가 그렇게 말했는지 너무 잘 알 것 같다면 역시 당신도 우리나라의 유교 사상에 대해 너무 잘 아는 한국사람이리라.


"내가 뭐 애 낳는 기계인가?" "그 댁 대를 이어 줄 아들 낳으려고 결혼한 줄 아는 건가?"

다시 한번 더 깊이 숨겨놨던 세모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무렇지 않게 왜 아들을 낳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집안의 가계도를 주욱 읊으면서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시 짜는 시짜다'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너무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모눈 치켜뜨고 말하고 싶은 마음 꾹꾹 눌러 담으며 동그랗게 눈뜨고 속사포처럼 할 말을 쏟아냈다.


"아버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요즘 세상에는 오히려 아들이 아니라 딸을 더 선호하는 거 모르세요? 그리고 제가 지금 딸인데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생명은 욕심 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주시는 대로 감사하게 받아야죠 아들이든 딸이든 그런 건 하등 중요하지 않아요 뭐가 되었든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이 중요하죠!"


그랬더니 어머님이 옆에서 나의 편을 들어주며 그런 말 하지 말라며 막아서고 아버님은 할아버님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전해주신 것이라며 겸연쩍게 말씀하셨다.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며 다다다 쏘아댔건만 말속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담겨있는지라 어떤 마음으로 나를 생각하시는지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슬며시 닫혀버린 마음을 돌아보며 뿌리 깊은 유교 사상에 진저리 쳤다.


휴, 옛날에는 이런 말도 못 하고 꾹꾹 눌러 담았을 텐데 과거의 엄마 세대는 시댁이 얼마나 더 처절하게 다가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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