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처음 마주하는 이들에게 내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 나의 장애에 대해서 궁금해하거나,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며 장애로 인해 불편한 점이 많겠다는 말을 한다. 물론 소리중심으로 이뤄진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소리는 필수불가결이고 없으면 불편한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왜 세상은 장애를 단점으로만 보는 것일까? 돌이켜 본 지난 나의 삶들은 힘든 일이 훨씬 많았긴 해도, 순간순간의 장면들에서 이런 나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좋았던 기억도 많은데 말이다.
1.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날 때, 기차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그저 손인사만 나누거나, 어느 애틋한 커플들은 전화기로 서로의 말을 전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 없이 유리창 너머로 얼마든지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2. 함께하면 너무 좋은 부모님이지만 때때로 몸이 피곤하면 빨리 집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친정부모님이라면 집에 가겠다고 매몰차게 말할 수 있지만 어쩐지 시부모님께는 내가 먼저 말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넌지시 짝에게 수어로 빨리 집에 가자고 이야기할 수 있다. 나를 향해 날아오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도 알아서 대답하게 시킬 수 있다는 점도 있는데 이 부분은 특히 좋은 것 같다! (남편, 눈치 챙겨!)
3. 책 넘기는 소리만 사락사락들리는 도서관 안,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고요함 속의 손짓은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는다. 덕분에 우리는 필요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서로의 목소리가 너무 크지는 않은지 신경 쓸 필요 없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발소리조차 숨죽여야 하는 아이가 있는 집에 놀러 갔을 때는 칭얼거리는 아이를 겨우 재우고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대도 아이가 깰까 염려할 일 없이 대화할 수 있다.
4. 잠들기 위해 누운 침대 위에서 우리는 창 밖에서 '우르릉 꽝!' 커다란 천둥이 울리든, 옆에서 자는 사람이 '드르렁 쿨~' 코를 골든, '빠드득빠드득' 이를 갈든 눈 감으면 어떠한 소리 없이 고요함만 찾아온다. 아무리 시끄러운 상황 속에서도 눈감으면 편하게 잠들 수 있다.
5. 작게는 카페에서 어린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나 유리잔 깨지듯 떠드는 아주머니들의 목소리, 크게는 전투기가 매섭게 날아오르고 기차가 빠르게 지나가는 시끄러운 상황에서 언제든 노이즈캔슬링 같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6.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을 때, 누군가로부터 불려 갈 일 없이 그들이 오게 만들 수 있다. (불러서 뒤돌아 볼 수 있으면 그들에게 갈 수 있지만 애타게 불러도 전혀 듣지 못한다면 내가 아니라 답답한 사람이 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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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끄러울 수 있는 것,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이 우리가 가진 장애로 인한 장점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세상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있듯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다.
한도 끝도 없이 나쁜 것만 집중하면 그것만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을 찾으려 하면 좋은 것만 보이고 그러한 사실들에 감사를 느낄 수 있다.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불편하지만 그 속에서도 좋은 점들이 종종 보이는 것을 보면 이런 삶도 꽤 멋진 것 같다.
오늘도 이렇게 태어난 나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