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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Feb 21. 2023

부드럽게 침투해오는 그림의 힘

[Review]- 도서'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다'




<스튜디오에서의 점심식사(Studio Lunch)> _ 헨리 시돈스 모브레이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다>는 미술치료사가 임상 현장에서 치료적 효과를 확인한 작품들을 묶은 책이다. 여기서 치료적 효과라는 말이 다소 광범위하고 사용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책이 주로 다루고 있는 대주제는 사랑이다. 책은 크게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가라앉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슬픔을 잘 흘려보낸다는 것', '더이상 사랑받지 못한다 해도'로 네 개의 주제에 따라 내용이 전개된다. 개인적으로 각 섹션을 정리해보자면 사랑의 시작, 과정, 상실, 애도로 요약할 수 있다.


책은 기본적으로 눈이 좀 더 가는 작품이 있는지 묻고, 그 작품에 머물면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고찰해보도록 구성되어 있다. 각 섹션의 구성은 먼저 그림이 나오고, 왜 이 그림에 눈이 갔는지에 대한 내용이 짧게 한 두 줄 인트로처럼 나온다. 이 한 두줄에서 나온 키워드를 가지고 세 넉 장 정도 그림의 묘사를 하나하나 살핀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같은 주제로 짤막한 에세이를 붙이는 것으로 한 섹션이 마무리된다.


책의 전반적인 인상은 '묵상집'이다.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다라는 제목처럼, 책은 어떤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개개인들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에는 다양한 감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수많은 작품이 수록되어있고, 감상적이고 유려한 문장으로 독자들의 성찰을 돕고 있다.

<스트란데 거리의 햇빛이 바닥에 비치는 방(Interior from Strandegade with Sunlight on the Floor)> _ 빌헬름 함메르쇠이


독자입장에서는 그림이라는 것이 다각도로 해석될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에서 제안하는 키워드들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내가 경험한 것처럼 많은 독자가 그것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책의 목표가 어떤 개념의 정의나 정보의 전달이 아닌 것처럼, 책의 키워드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감성을 자극하는 수많은 그림과 언어들이 있다는 것이다. 심리치료자의 관점에서 그림은 부드럽게 다각도로 읽히는 상징 뭉치가 된다.


책에서 말하는 키워드가 그림과 달라붙지 않는다면 그 갭을 분석해볼 좋은 기회다.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그림과, 내 안에 들어온 그림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어떤 대상을 표상하면서 그것들을 만나고 있는가? 이런 그림의 해석뿐만 아니라, 책에서 던지는 사랑에 관한 질문들도 묵상을 돕는다. 사랑은 우리가 우리를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발견할 수 있는 다이나믹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책의 방식은 부드럽고 달콤하다. 이 책이 써내려가는 사랑의 통찰이란 부드럽게 삼킬 수 있는 우유 같다. 이 책의 강점은 모든 사람에게 통찰의 기회를 부담스럽지 않게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그림은 나에게 말을 걸고, 그 과정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떤 배려심이 느껴져 저자가 독자들에 대한 나름의 애정으로 특별히 취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로운 한때(An Idle Moment)> _ 존 화이트 알렉산더


이 책은 분명 많은 사람에게 읽힐 가치가 있는 책이다. 첫째, 가장 부드럽다는 것은 이 책이 그 누구에게건 생각의 물꼬를 터줄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 역시 이 책에서 발견한 그림 몇 점이 마음속에 박혔다. 책의 저자는 친절한 안내자로서, 모든 관람객에게 역시 어떤 고찰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에 수록된 그림들은 높은 해상도로 부담 없이 말을 걸어온다.


두번째, 이 책은 앞서 말했듯이, 어떤 고찰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사실 이런 알 수 없는 감정에 대한 고찰에는 복잡한 언어가 필요하지 않다. 사실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점에서 저자가 왜 이런 포지션을 취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림이 반이고, 개인의 특정한 부분을 건들기보다 유려하고 보편적인 언어로 저자가 그것을 보좌하는 저자가 그 반을 채운다. 그런 점에서 책은 다분히 '실천적'으로 읽힐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쎄, 이쯤 되다 보니 지금 써내려가는 감상마저 나름의 묵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전반적인 자기 자신, 그것도 사랑에 관해 어떤 성찰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는 부정할 수 없으니, 여기까지 읽은 당신에게 흥미가 동한다면 그것을 직접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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