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말하게 하는 작가,그 작가의 윤리

[Review]연극 '빵야'

by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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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야>는 표면적으로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지점들을 관통하고 있으나, 작품이 정교하게 겨냥하는 지점은 역사를 재현하는 작가의 실천적인 태도와 그 윤리다.


연극은 주인공 나나가 마주한 선택의 기로, 즉 서사의 핵심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서사의 중심 질문이란 주인공이 어떠한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심리적 갈림길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작품의 주인공인 나나 역시 작중에서 이러한 선택의 상황에 놓여 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못한 작가로, 후배가 드라마로 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동안 가난과 직업적 성공이라는 현실적 압박 사이에서 깊은 심리적 위기를 겪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작품의 핵심 질문은 나나가 자신의 커리어를 회복하고 예술가로서의 생존을 증명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지점으로 수렴된다. 나나는 현대 사회의 자극적이고 빠른 호흡에 적응하지 못하고 휴머니즘적 드라마에 매달리다 잊히는 것에 괴로워하던 중, 소품 창고에서 99식 소총을 발견한다. 제물포에서 생산되어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장을 거쳐 온 이 소총의 궤적은 나나에게 단순한 소품 이상의 창작적 동력을 제공한다. 그녀는 이 사물이 현대의 소품 창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며 자신의 성공을 위한 새로운 서사를 구축한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장치는 주인공 나나가 이야기의 소재인 소총을 의인화하여 소통하는 지점이다. 나나는 빵야라고 명명된 소총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데,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소총이 역사의 진실을 직접 증언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극은 작가의 유려한 솜씨로 완벽하게 제련된 개별적인 역사적 에피소드들을 연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이 작품의 장르를 전형적이고 탄탄한 역사 드라마로 상정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정교한 재현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한 인위적 구성물임을 환기하며, 역사를 드라마로 재현하는 창작자가 겪는 윤리적 고민과 성공을 향한 욕망 사이의 긴장을 더욱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1막은 나나가 <빵야>를 만나 역사의 에피소드들을 상상하며 자신의 성공을 예감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그녀의 핵심 질문은 훌륭한 호선을 그리며 나아가는 듯하나, 그 기저에는 역사에 담긴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커리어 회복을 위해 투사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이 깔려 있다.


2막에 접어들면 분위기는 반전되며 서사는 보다 깊은 내면의 성찰로 진입한다. 나나는 자신이 창조한 서사와 역사적 실재 사이의 간극을 경험하며 빵야의 본질에 다가간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역사 속 인물들의 고통을 드라마적 재미로 소비하려는 외부의 요구와 마주하며 극심한 윤리적 충돌을 겪는다. 빵야가 한때 나무였고 쇠붙이였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무기가 아닌 악기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대목은, 창작자가 대상에 투사한 인본주의적 열망의 상징이다. 이는 역사적 비극을 살상이 아닌 공명의 대상으로 치환하려는 작가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대중적인 성공을 위해 작품의 본질을 수정하라는 압박 속에서 나나가 저작권을 판매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모습은, 단순히 작품을 지키려는 고집을 넘어 타자의 역사를 자본의 논리에 내맡기지 않겠다는 예술가적 결단이다.


그녀는 역사를 완벽하게 재현하여 성공을 거두겠다는 애초의 계획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대신 그 역사를 온전히 보내주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을 택한다.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나나는 드라마화에 실패한 빵야를 위해 오케스트라를 조직한다. 총이라는 흉포한 물성을 악기라는 예술적 유희의 도구로 전환하고, 가장 마지막 순간에 소총을 쏘아 그 기능을 마감시키는 연출은 비극적 역사를 고착된 상처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작가의 낭만적 배려다.


비록 현실적인 성취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나, 이는 나나가 극의 서두에서 던졌던 핵심 질문에 대해 스스로 내린 주체적인 응답이다. 그녀는 세속적인 성공이라는 외부의 해답 대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자신의 고유한 작품 세계를 지켜내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창작자로서의 실존적 가치를 증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작품이 다루는 윤리를 세 가지 층위로 구분해야 한다. 첫째는 타자의 고통을 서사적 소재로 가공하는 행위에 대한 재현 윤리이며, 둘째는 작가가 자신의 사회적 성취를 위해 무엇을 지키고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창작 윤리다. 마지막은 이 아름답지만 작위적인 결말을 목격하는 관객이 가져야 할 수용 윤리의 문제다.


나나의 마지막 선택은 어느 윤리를 수호하고 어느 윤리를 방기하는가. 그녀는 저작권 판매를 거부함으로써 역사가 상업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 재현 윤리의 최소한을 지켜내지만, 판타지적 제의는 재현 윤리 측면에서 역사의 물성을 미학적으로 세탁했다는 비판을 온전히 피하기 어렵다. 이는 고스란히 관객의 수용 윤리에 무거운 판단의 짐을 지운다.


그래서 <빵야>는 사물의 침묵과 작가의 서사 사이의 간극을 조명하며, 창작자의 행위가 지닌 가치에 대해 묻는다. 나나의 선택이 예술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지조인지 혹은 개인의 신념에 따른 독선인지는 관객의 해석에 달려 있으나, 작품이 역사를 재현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해 근원적인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나나는 결국 시작과 끝에서 여전히 나나다운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가며, 사물의 물성을 배반하지 않으려는 작가적 노력을 통해 역사를 서사로 포섭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성을 미학적으로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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