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그림자
내겐 동생이 있다. 10살 차이 나는 여동생, 13살 차이 나는 남동생. 둘 다 이복이다.
사이는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지만 돈독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둘 다 천성이 나쁘지는 않아, 서로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아버지 때문에 왕래하고 지낸다. 아마 나이가 더 들면 교류가 끊어질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래. 우리 부모님은 내가 오래전에 이혼을 하셨고, 아버지는 재혼을 하셔서 저 두동생을 낳았다. 교류가 있다 한들 부대끼고, 서로 같이 산 기간은 몇 달 남짓이라 특별한 형재애는 없다. 같이 산 기간에도 내가 나이가 훨씬 많다 보니, 아이들이 당시엔 날 무서워하기도 했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남매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이좋은 가족, 형제 자매들을 보면 참 부럽다. 피로 이어진 끈이 참 질기고 무섭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지독한 끈이 애정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항상 상상하곤 한다. 내가 가진 끈들은 하나 같이 다 애증으로 가득 차있으니 말이다.
실은, 친동생이 있긴 했다. 두어 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었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있던 남아있던 사진은 삼촌의 결혼식 사진에 찍힌 얼굴이었는데, 엄마가 잘라 버렸다.
그땐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18살 무렵 나도 똑같은 짓을 한 적이 있다. 하나뿐이던 가족사진- 엄마, 아빠, 내가 찍혔던- 사진을 조각조각 잘라 쓰레기통에 넣어버린 거다. 그 사진은 이제 내 머릿속에만 있다.
아무튼, 동생은 내가 다섯 살 무렵 부모님의 실수에 의해 사고로 죽었다.
동생에 대해 기억나는 건 고작 세 가지뿐이다. 하나는, 머리에 들어가지도 않는 휴지통 뚜껑을 마구마구 머리에 씌워서, 그거 때문에 입원했던 일. 두 번째는, 동생이 타는 유모차에 나도 타고 싶어서 졸라댄 끝에, 그 좁은 유모차에 동생과 함께 탔던 일. 참, 좋은 누나는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죽은 동생의 모습이다. 시골 할머니집, 대청마루에 동생은 누워있었다. 아버지는 그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고, 어머니는 피를 토할 정도로 대성통곡을 했다. 자꾸 동생에게 달려들려는 엄마를 할머니가 말리고, 피를 닦기 위해 수건을 가져와 엄마 입에 물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죽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다들 슬퍼하기에 슬퍼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소리 내어 우는 척을 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처절할 수가 없었는데, 나는 그냥 아빠의 다리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우는 척을 했다가, 동생을 구경하거나, 엄마를 쳐다보거나 했던 것만 같다. 그 모든 것이 생생한데, 동생의 얼굴만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동생은 할머니집의 뒷산에 비석도 없이 묻혔다. 그 뒤로 아무도 동생을 찾아가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어, 엄마를 그 근처로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엄마는 창밖으로 보이는 산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동생은 그렇게 가버렸고, 기억이라곤 없지만, 나는 항상 동생의 그림자를 느꼈다. 엄마는 동생을 잃은 뒤 정신을 놓았고, 수십 년을 죄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죄인이란 이름을 스스로 달고 멍에를 짊어지고 자신을 자꾸만 불행하게 했다. 나는 그 죄책감과 연민에 휘말려 깊은 슬픔을 헤아릴 틈도 없이 외로움을 먼저 배웠다. 6월과 11월. 동생이 죽은 달과, 동생의 생일이 있는 달이면 엄마는 평소보다 더 말이 없어졌다. 엄마가 언제나 동생을 그리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엄마에게 모든 죄책감을 떠넘긴 아빠조차 동생을 그리워했다. 무뚝뚝한 아빠였지만,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지금의 살아있는 아들을 몹시도 아꼈다. 십 대의 나는, 만약 엄마와 내가 죽는다면, 엄마는 내가 아니라 동생을 먼저 찾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죽어서도 나는 혼자겠구나. 그 생각에 참 많이 외로웠다. 형제자매들은 참 많이 싸운다던데, 나는 이미 죽은 채로 이겨버린 동생을 상대로 평생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살아있다는 게 죄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죽었어야 하는 게 나였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슬퍼하지 않았을 거라고, 모두가 괴롭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10대 다운 생각을 하며 10대답게 외로워했다.
그리고 30대의 어느 날. 처음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가 동생을 그리워하는 걸 보면서 생각했어. 살아있는 건 난데.... 왜 죽은 사람만 볼까..”
엄마는 짧게 ‘그랬니.’ 하고 말았지만, 그 말에 깔린 미안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도 족했다. 동생을 이길 수는 없어도, 비겼다는 느낌을 가질 수는 있었다.
네가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 가족은 무너지지 않고 계속 됐을까? 망가진 사람밖에 자라지 못한 우리 집안에서 너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으로 자랐을까? 우린 서로 사랑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