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비평범인생 생존기
학창 시절, 어느 반에나 아웃사이더, 혹은 왕따가 하나씩은 있었다. 왕따라는 말이 매체에서 자극적으로 표현하듯, 꼭 물리적인 폭력의 대상이 되는 아이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대단히 특이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님에도 무언가 꺼려지거나, 가까이 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곤 하는, 어울리는 친구 없이 겉도는 아이들. 소위 은따. 그런 아이들을 나 역시 많이 보았고, 잘 알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나였으니까. 그렇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대부분의 학창 시절, 거기에 이어서 직장생활까지- ‘은따’로 지냈다.
비평범. 혹은 불평범.
평범하지 않다는 말에 아주 오래전부터 사로 잡혀 있었다. 세상은 어디로 가든 낯설었고 나는 ‘평균’이라는 기준에서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항상 한걸음 이상은 떨어진 인간이었다. 그 특이성이 잠시간은 이목을 끌었고, 나는 그 순간을 좋아했다. 그 이후로는 아이들이 나를 피했으니까 말이다. 어울려본 적 없으니 어울리는 법을 몰랐고, 그 잠깐의 이목이 집중되는 순간을 파고들려 했다.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평범하지 않음은 곧 특별함이었고, 어린 나는 일부러 비주류를 찾아 헤맸다. 독특한 아이라는 특징으로라도 무너진 자존감을 끌어올려놓아야 했으니까. 홀로 고고한 학처럼, 내가 우아하기라도 하다고 착각해야 살 수가 있었다. 그 흑백논리에 금이 간 것은, 스무 살을 먹고도 몇 년은 좀 더 지나서이다.
아무튼, 내가 특별하고 싶든, 고고하고 싶든 상관없이 이 세상의 비주류인생에다 특이한 성격으로 시선을 끈다는 건 곧 손가락질을 당한다는 의미였고, 주류에 합세하지 못한다는 건 곧 적응을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무엇부터가 잘못된 건지 인간으로서 가장 처음 당면하는 사회, 학교라는 시작부터 소외되어 왕따가 되었다. 여전히 이유를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자라 고나서야, 고독에 위축된 성격이 나를 더욱더 고립시켰다는 것은 알았지만 최초의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눈치는 없고 목소리만 커서 그랬을지도.
어쨌든- 세상과 동떨어져있으니 어디에도 소속감을 갖지 못했고 나는 갈수록 더 세상과 괴리되어 평범한 사회의 기준조차 맞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비범하고 특별하기라도 해야 했을진대, 내 능력 중에 특출 난 것이라곤 없었고, 오히려 기준치 미달인 특성이 더 많았다. 성실 0점, 눈치 0점, 지구력 0점. 회피력 만점. 사회부적응자의 모든 기준을 충족하는 나는, 평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하지도 않은, ‘비평범’, 혹은 ‘불평범’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야 했다. 그렇게 집착했던, 나름의 ‘추구미’였던 단어가 이젠 꼬리표가 되었다.
하지만 비평범한 인간도 살긴 살아야 한다. 2025년 12월 현재, 내 나이 40세. 만으로는 39세. 다사다난했지만 어찌어찌 이런 몸뚱이, 성격, 인생을 끌고 살아남아 여기까지 오긴 왔다. 살려하니 평범 세계에 발을 들여야 했다. 반정도는 억지로 끌려갔고, 반 정도는 맞지 않는 퍼즐 모서리를 잘라내듯 내 몸을 구겨 넣었다. 그 누구도 세상이라는 퍼즐에 딱 맞는 몸을 갖고 있지는 않음을 이제는 알고는 있다. 어떤 이는 아주 운이 좋아 조금 굽히는 선에서 몸을 맞추기도 하지만, 타협이라는 단어 아래 누군가는 아예 자신을 개조하고, 자르고, 빈 공간을 어떻게든 메꾸려 아등바등 산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평범’ 하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나 그러하는 것을 나 역시 겪고 있다고 하여 평생을 달고 산 이 딱지를 떼내기엔 이 세상의 FM이 너무나 혹독하다. 내가 아-주 유니크하다기보다 때때로 세상의 기준이 지나치게 이상적(!) 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나를 소수자라 부르고, 유별나다 부르고, 때로는 불쌍하다고 부르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고, 살고 있다. 앞으로 살아갈 것이다. 왕따로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보냈고, 제대로 된 회사생활을 영위하지도 못하고 20대를 보냈으며, 30대의 절반은 무기력하게 보냈지만, 실은 나에게도 꽃이 있어서 어느 시점마다 꽃잎 한 장 한 장이 펼쳐져 보기에는 나쁘지않게 피었다.
꽃을 피우는 동안 낙엽처럼 할 말이 아주 많이도 쌓였다. 나는 이 낙엽들을 하나하나 쓸어서 시기별로, 종류별로 나누어 내 삶을 펼쳐보고자 한다. 이 것이 막 세상에 제대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내가 해야 할 일로 느껴진다. 내 안에 쌓인 수많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 마치 물에 푹 젖은 강아지가 물을 털어내듯, 내 속을 게워내야 그 안에 갇혀있던 꿈들이 자유를 찾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다 털어낸다고 해도 내 비평범의 속성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나의 비평범을 사랑한다. 우습고 유치했던 특별함에의 열망 때문이 아니다. 비평범. 그것이 바로 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