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 1

엄마는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다

by 소리의밀도

어렸을 적, 시골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 무렵 롤러스케이트가 유행이었어서 롤러스케이트를 먼저 사달라고 졸랐다가, 동네 아이들이 죄다 자전거를 몰고 다니니 나도 뒤질세라 롤러는 내팽개치고 자전거를 사달라 아빠를 졸라 결국 아동용 자전거가 하나 생겼다. 형편이 녹록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갖고 싶다 하면 턱턱 사다 주던 아버지가 (사실 사달라고 하는 게 많지 않긴 했다. 가난한 걸 어린 나도 알았다.) 그 당시만에는 그래도 히나뿐인 딸에 대한 사랑이 꽤 애틋했던 것 같다.


아무튼 자전거를 타고 나는 어디든 누비고 다녔다. 시골의 마을들은 도시처럼 마을이 연속적이지 않고, 도로 하나를 따라 짧게는 1km, 길게는 2~3km씩 떨어져 있다. 거길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하루는 할머니 집에, 하루는 친구네 집, 하루는 누구네집, 하루는 폐교된 학교... 산골 어느 마을까지 쌩쌩 다 누비고 다녔다. 친구가 없어도 괜찮았다. 익숙한 동네라도 언제나 신기했고, 산과 들, 밭엔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았다.


그러다 보면 곧잘 마주치는 동물친구들이 있는데, 일단은 소를 키우는 집이 많으니 길가에 있는 우사를 자주 지나쳤다. 소들은 나를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내가 가다 말고 서서 한참 구경하고 있으면 슬그머니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기도 했다. 커다란 눈망울에 번들거리는 코, 긴 혀가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지. 나는 소의 반가움도 모르고 금방 도망을 쳤다.


또, 소보다 자주 마주치는 건 개들이었다. 개는 집집마다 있었다. 우리 집에도 있었고. 대게는 묶여 있어 지나칠 때마다 나를 경계하며 왕왕 짖어댔다. 어디서나 짖었다. 그만큼 흔해 특별할 것도 없었으나- 문제는, 풀린 개도 있다는 점이었다. 하루는 집 근처 보건소에서 풀린 개와 마주쳤다. 어린 나의 발목에 겨우 닿을 크기에 아주 작은 강아지 었는데도 얼마나 성질이 사나운지 내 앞에 서서 정말 동네가 떠나가라 짖어댔다. 나는 자전거를 세운 채 이리도 못 가고 저리도 못 가고 울먹이다가 결국 강아지랑 같이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다.


엄마! 엄마! 지척이 우리 집이었다. 논밭을 따라 쭉 뻗은 길, 하천 건너편에 우리 집이 있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고, 아무리 울고 불며 애타게 찾아도 엄마는 나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의 500m가 넘는 거리라, 내가 아무리 목소리가 크다고 한들 엄마가 들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래도 그때는 너무나 간절해서, 엄마! 엄마 살려줘! 엄마! 하고 얼마나 울어대며 외쳤는지 모른다. 근처에 집도 많았는데, 다들 밭일을 나간 시간이라 아무도 내다보지는 않았다. 그게 얼마나 야속했던지, 가끔 그 근방에서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꿈을 아직도 꾼다. 물론 엄마도,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 꿈이다. 다만 강아지만 모습을 달리해서 나타난다. 개구리가 되기도 하고, 귀신이 되기도 하면서.


결말은 시답잖다. 5분 가까이 대치한 채 서로 울어대던 우리는, 결국은 지쳤고 강아지는 기세가 꺾였으며 나는 어쩔 수 없이 용기를 쥐어짜 내 다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아 강아지를 제치고 달아났다. 이러면 되는구나. 하는 걸 그때 조금 깨달았지만 모든 일에 용기를 내면 된다는 깨달음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도망쳐야 한다는 것만 배운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알아버린 것은, 아무리 불러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는 것.


“엄마? 내 목소리 못 들었어?”

“응? 못 들었는데.”


무심한 엄마의 대답을 들으며 응. 그렇구나. 하고 풀죽었던 내가 떠오른다. 엄마는 왜 날 불렀냐고 묻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도 종종,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게 얼마나 야속했던지, 가끔 그 근방에서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꿈을 아직도 꾼다. 물론 엄마도,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 꿈이다. 다만 강아지만 모습을 달리해서 나타난다. 개구리가 되기도 하고, 귀신이 되기도 하면서.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던, 멀리 보이는 내 방 창문. 우리 집. 그 안에 있을 우리 엄마. 어쩌면 아파서 누워있느라 내 목소리를 못 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한없이 엄마를 기다렸던 일. 그리고 결국에는 포기했던. 아마 이때가 결정타를 날렸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즈음부터 엄마라는 존재를 구원의 존재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늘 아팠고, 나를 데리러 오지 않는 사람이었고, 항상 어디로 떠나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떠나는 곳은, 내 자전거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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