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앞두곤 이런저런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퇴근 후 긴장이 풀려 술과 안주를 잔뜩 흡입하면 일찍 일어날 수가 없다. 일어나 아점으로 빵과 커피를 사 먹고(요즘 빵이 왜 이렇게 땡기지. 아, 요즘이 아닌가...) 목이 돌아갈 것 같이 한 자세로 누워 종일 tv를 본다. 그러다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건강검진 전날, 배송받은 대장내시경 약을 먹은 다음부터 메슥거리고 어지럽고 열이 나고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검진 후부터는 설사가 계속됐다. 몸에 있는 걸 다 빼내고 나서도 안 좋았다. 다음날, 간신히 출근했다가 두 시간 만에 조퇴를 했다. 복부 엑스레이도 찍었는데 별 이상은 없다고 했다. 천공이 있을까 봐 우려되어서 찍어보셨다고 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밤새 설사를 했다. 아침에 간신히 일어나 샤워를 하고 버스를 탔는데, 내가 원래 멀미가 있었나? 속이 계속 울렁울컥거리더니 토할 거 같아서 버스에서 내렸다. 결국 출근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프니까 마음이 참 이상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계속 눈물이 흘렀다. 어제 조퇴하는 나를 배웅 나온 동료의 얼굴이 아른거리고, 걱정하면서 앉아서 쉬세요 저희가 할게요.라고 하는 모습도 자꾸 떠올라 눈물이 났다.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며 젤리를 건네고 내일 화이트데이니까 내일 또 드릴게요 하던 공익친구의 순한 눈빛도 마음에 담긴다. 걱정 마시고 푹 쉬세요 위로하는 말이 너무 고맙고 황송해서 자꾸 눈물이 났다.
겨우 대장 내시경 한 번 했다고 맛탱이가 가 5일을 쉬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삶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밀려서 나가떨어질 것 같다.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탄 기분, 아무리 열심히 올라도 아무리 열심히 발을 디뎌도 계속 뒤로 가는 느낌. 일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불편하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
별거 아닌데, 막상 하면 다 별거 아닌데. 심리적, 신체적 부담이 마음을 계속 짓누르고 있다. 아침에 회사로 갈 때만 해도 속이 토할 것 같고 울컥울컥 하더니 집에 오니까 멀쩡해졌다. 아무래도 회사 가기 싫어 병 같다. 아픈 건 몸일까 마음일까.
임재범의 '비상'이란 노래를 들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나 자신을 가둬두었지.
이젠 이런 내 모습 나조차 불안해 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ㅡ임재범 <비상> ㅡ
어디부터 시작할지 모르겠다는게 꼭 내 맘 같아서 베갯잇을 적시며 울었다. 아프니까 감정이 요동을 친다. 죽을 만큼 아프니 죽음이 가깝게 느껴진다. 이게 과연 내가 원했던 삶인가 이렇게 돌고 돌다 죽는 건가 하는 비장함에 사로잡힌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곧 잊히겠지만, 평생을 나와 맞지 않는 일들을 좇으며 에너지를 낭비한 것만 같아 후회스럽기만 하다.
귀는 또 얇아서 남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살았다.
여자 나이 서른에 5천만 원 가진 거보다 25살에 땡전 한 푼 없는 게 낫다 뭐 이런 쓸데없는 말들이 사실인양, 진리인 양 쫓기며 살았다. 세상의 시선과 걱정하듯 배설해 대는 말들에 부응하고자 가랭이가 찢어졌다. 자존이 있었으면 남들에게 인정 못 받는 것보다, 휘둘리는 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남들이 좋다는 직업을 좇고, 남들이 원하는 상대를 찾고, 남들이 멋지다는 옷을 입고 가방을 들었다. 남이 나를 어찌볼지 생각하고 남들과 보낸 시간을 반추하다 시간을 죽이고,
말에 쫓기고 남만 쫓다 내가 누군지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만약 내일 죽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