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반도체 생산직 면접이 있었다. 그때는 졸업반이 되면 대기업에서 학교로 와 몇십 명씩 뽑아가곤 했는데, 콧대 센 S전자는 반에서 10등까지만 면접을 볼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60명 중 58등이었지만, 뻔뻔하게 면접에 참석했다. 면접관이 질책하듯 물었다.
"10등까지만 오는 거 몰랐어요?"
"알고 왔습니다."
"공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우리 회사는 근태가 굉장히 중요한데 조퇴를 밥 먹듯이 했네요. 도대체 여기 왜 왔어요?"
그땐 압박 질문이나 면접의 기술 같은 건 쥐뿔도 몰랐지만, 만면 가득 온화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선생님이 저를 너무 예뻐해 주셔서 제가 괜찮다고~조퇴 않고 버틴다고 해도 선생님께서 가라고~ 가라고~얼굴이 너무 안 좋으니 집에 가서 쉬라고 계속 그러셔서, 억지로 조퇴한 거거든요."
억울한 표정과 말투에 면접관들이 뒤로 넘어가며 웃었다. 이후로 얼어있던 면접 분위기가 풀렸고, 10등 안에 들던 아이들도 제치고 합격을 했다. 쓰다 보니 어릴 때 나는 무식해서 용감했고, 넉살이 참 좋은 아이였구나 싶다.
집을 떠나고 싶던 차에 기숙사에서 살게 되어서 흥분이 되고 설렜다. 그러나 합숙 첫날밤, 2층 침대의 위칸에 누워 어색하고 불편해서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 낡은 내 침대와 베개가 그리워졌다.
내가 미쳤지. 편한 집 놔두고 여길 왜 왔지.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시를 읊으며 저 창 밖으로 보이는 별 하나에 엄마, 별 하나에 아빠, 별 하나에 친구들을 떠올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불면증이라곤 모르는 내가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 혼자뿐이라는 것을 곱씹으며, 당장 내일부터 닥칠 일들이 두렵고 걱정도 되었다가 다시 맘을 다잡으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새벽 5시 반, 김원준의 '쇼' 노래가 나오면, 하루가 시작되었다.
‘쇼~끝은 없는 거야~지금 이 순간만 있는 거야~ 난 주인공인 거야~’
트라우마 비슷한 건지, 퇴사하고서도 몇 년은 이 노래가 들리면 소름이 돋았다.
새벽부터 시작된 빽빽한 하루는 밤 열 한 시 취침 점호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기상송이 울리면 십 분 안에 단체복으로 갈아입고 일사불란하게 운동장에 줄을 맞춰 선다. 곧바로 PT체조를 실시하는데 소리가 작거나 구호를 틀리거나 동작을 틀리면 바로 곱절로 해야 했다. 체조 후엔 선착순 달리기를 했다. 토할 때까지 뛰다가 식당에 가면 속이 너무나 안 좋았지만, 퇴식구 앞에 조교 2명이 지키고 있어 국물까지 싹싹 비워야 했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안전, 소방, 전기 교육, 반도체 이론과 실습 교육 등을 받았다. 중간에 체력단련 명목으로 운동장에 나가면 주로 선착순 달리기를 했고, 이 때 처음으로 인생의 쓴 맛을 보았다.
몇 바퀴를 돌아 땀에 흠뻑 젖어서 이번에는 기필코 열 명 안에 들 거라고 죽기 살기로 뛰면, 나보다 덩치 있는 애가 나를 손으로 또는 어깨로 퍽 밀치고 앞질러 버렸다. 나는 그 애가 유유히 앉아 쉬는 것을 보면서 한 바퀴를 더 뛰어야 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내가 다른 애들을 짓밟듯이 밀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 처음으로 회의감이 들었다.
교육 중에 짧은 시간을 주고 암기를 시키기도 하는데,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때까지 조교가 영혼을 탈탈 털어 망신을 주었다. 또 지겨운 이론 교육 중 누구 한 명만 졸아도 책상 위로 올라가 의자를 들고 목이 꺾일 것 같은 희한한 자세로 단체 기합을 받았다. 그런 걸 계속 당하다 보면 조금씩 미쳐가게 된다. 얼차려 중 고개가 꺾인 채로 ‘학학학핫’하고 날카롭고 괴상하게 웃어 조교한테 크게 혼이 났고, 이후로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당시 비어있던 기숙사가 거기뿐이었는지, 산 밑 가장 외진, 사용하지 않은 지 몇십 년도 더 된 것 같은 오래된 건물에 배정이 되었다. 코스모스 동이라는 예쁜 이름이었지만, 너무 오래되고 낡아 폐가같이 으스스한, 낮에도 어두운 건물이었다. 그래도 며칠이 지나 합숙에 적응을 해가던 참이었다. 점호를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