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침점호 이후엔 방을 나가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너무 급한 나머지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 불 꺼진 캄캄한 복도를 한참 걸어 복도 맨 끝의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첫 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
이 시간에 누구지? 싶어서 흘깃 아래를 보니, 내가 국민학교 시절에나 신던 하얀색 실내화에 하얀 양말을 신은 두 발이 발목까지 화장실 문밖으로 나란히 나와 있었다. 별 생각 없이 옆 칸에 들어가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는데, 갑자기 나도 옆의 애처럼 발을 쭈욱 내밀고 싶어졌다. 그래서 발을 들어 힘껏 뻗어 봤지만 택도 없었다.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화장실 길이가 굉장히 길었고, 아무리 발을 뻗어도 문짝과 50cm 이상의 공간이 생겼다. 변기에 앉아 밖으로 발을 저 정도 내미려면 2미터가 훌쩍 넘게 키가 크거나, 문 앞에 딱 붙어 서 있는 방법뿐인데...?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목 뒤의 솜털이 확 곤두섰다. 너무 무서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얼른 나와서 옆 칸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말했다.
“너 누구야? 나와봐.” 전혀 반응이 없었다. 두 발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대로 나와 있었다. 순간 위에서 누가 내려다보는 듯한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미친 듯이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곤히 자던 동기 한 명을 깨웠다. 깨우는 소리에 다들 일어났다.
“화장실에 귀신이 있는 것 같아. 두 발이 문 밖으로 이렇게 나와 있는 걸 봤는데, 이게 불가능해.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말이 없어. 당장 가서 확인해 봐야 해.”
손짓 발짓 다하며 횡설수설했지만 귀신을 보았단 말에 세 명 모두 일어나 같이 가주었다. 우르르 몰려 가니 겁날 게 없었다.
화장실로 들어가서 모두들 내가 말한, 밖으로 나온 두 발을 먼저 확인했다. 다들 놀란 눈을 크게 떴지만, 호기롭게 소리치며 다 같이 아주 세게 문을 두드려댔다. 안에선 계속 조용했다. 그러다가 약속이나 한 듯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모두가 동시에 위를 쳐다보았다. 2미터가 넘는 문 위에는 사람 같지 않은 얼굴 하나가 문에 목을 걸쳐 두고 우리를 보고 있었다. 웃는 것 같은 그 얼굴에 마주 보고 다 같이 미친 듯이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꺄악~~~~.”
덥석 서로의 손을 잡고 다 같이 도망쳐 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비명을 질러댄 통에 다음 날 소문이 돌고 돌아 무성하게 퍼졌고 우리 말고도 봤다는 사람들이 더 나왔다.
이백 명으로 시작한 합숙은 아침이 되면 인원이 줄었다. 담배 피우다 걸려서 퇴소당한 아이들도 있었고 부모님을 불러 퇴소한 아이도 있었다. 깡다구 좋아 보이던 아이들도 짐을 그대로 다 놓고 야반도주를 했다. 아마 앞으로 다루게 될 반도체 칩이 장 당 비싸게는 몇 천까지도 호가하니 고강도의 체력단련과 정신수련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다들 수습기간이 이렇게나 힘든데 정식발령이 나면 얼마나 힘들까 앞서 걱정했다. 그러나 직업훈련생이라는 명찰을 달았던 그때가 가장 힘든 기간이었다. 아마 우리 중 누구도, 살면서 이렇게까지 몸과 정신이 피폐해지는 경험을 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헛것을 봤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