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경영학과의 강의실은 그야말로 단출했다. 칠판 하나, 분필 하나면 충분했다. 통계 분석 수업이라 해도 간헐적인 컴퓨터 실습이 있었을 뿐, 학문의 대부분은 칠판 앞에서 펼쳐졌고, 학생들의 도구는 노트와 펜뿐이었다. 재무이론도 이미 그 시기에 대부분의 골격이 완성되어 있었고, 그 이후로는 새로운 이론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게 금융산업이 발전 하는 과정에서 교육은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국내 금융교육의 한 획을 그은 혁신은 KAIST의 금융공학 석사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이 과정은 금융프로그래밍을 전면에 내세우며 전통적인 교육 방식에 균열을 일으켰다. 2008년 금융위기 전 금융공학이 활황이던 시절, 실제로 국내 은행권은 KAIST 금융공학 석사 출신 인력을 대거 채용하기도 했다. 그 이후 아주대 금융공학 전공, 가톨릭대 금융수학 전공, 그리고 최근 눈에 띄게 가천대 금융수학과 출신들이 금융권 진입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학문적 지식만으로 무장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 분석과 프로그래밍이라는 실무 역량을 바탕으로 기존 금융권 인재들과는 다른 경쟁력을 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금융산업의 시스템은 수학적 모델과 알고리즘, 자동화된 코드 위에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이공계 출신의 금융인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오히려 이공계적 훈련을 받은 인재들이 금융권에서 환영받는 시대가 되었다.
동시에, 기존 명문대 경상계열 학생들, 그리고 학교 명성이 높지 않지만 뛰어난 개인역량으로 금융권에 진입한 사례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제 분필로만 배운 학생들에게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금융은 더 이상 종이 위의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데이터의 패턴을 읽고, 코드를 통해 전략을 구현하며, 시장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가 되었다.
30년 전과 지금을 가르는 가장 뚜렷한 것은 AI, 블록체인, 퀀트 이론을 포함한 혁신적인 금융 기술이다. 금융권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지만, 이제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지식에서 금융 기술로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물결은 오래 전에 시작되었는데, 일부 대학에서만 이 부분을 실천하고 있다. 칠판에서 시작된 금융교육은 금융공학적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금융기술로 점차 진화해야만 한다.
[참조할 홍창수의 글] 향후 25년간 "퀀트의 세계"에서 전개될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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