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진의 <잠 못 드는 밤에>

작사/작곡 김창환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문명진'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Ol-IRh1 yWcI? si=WSXjrf4 NTUowUlri

지난 추억에 잠 못 드는 그리운 밤에


널 잊지 못하는


그 미련에 한없이 눈물만 흘러


이 아픔마저도 난 놓을 수 없는데


떠나지 마 내게 돌아와


- 문명진의 <잠 못 드는 밤에> 가사 중 -




문명진은 2001년 데뷔했습니다. Soul과 R&B가 주 장르입니다. 실력 대비 대중적으로 알려짐이 덜했던 가수가 아닌가 합니다. <복면가왕>과 <불후의 명곡> 등에 출연하면서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성을 알게 된 것이 다행스럽기까지 하죠.

1집 <상처>를 발매했고 2004년 2집을 냈지만 그다지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후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을 무명으로 보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대리운전, 보컬 강사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하네요. 가수는 노래로만 승부를 봐야 한다는 그의 고집도 한몫했다고 하네요.

긴 공백을 이어가던 그에게 <불후의 명곡> 작가가 연락을 하면서 그의 음악 인생이 꽃을 피우게 되죠.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2013년 김건모 편에서 그가 리메이크를 해서 불러 좋은 반응을 보였던 곡입니다. 돈스파이크가 편곡을 했습니다. 원곡과는 전혀 다른 노래가 되었죠. 하하하.

그는 이태원에서 중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나오는데, 지금도 잘 되시나 모르겠네요. 하하하. 맛을 어떠려나?

시대에 뒤처지는 음악을 하는 것은 경계했던 그가 시대를 가로질러 요즘 세대에 맞는 곡을 들고 다시 우리에게 얼굴을 비추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잠 못 드는 밤에'입니다. 무언가 걱정이 한가득이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생각할 게 너무 많은 밤이었던 것일까요? 우리 삶에 그토록 필요한 잠에 쉽게 들지 않는 밤. 화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니가 내게서 멀어질 때쯤 그때 언젠가/ 아마도 별이 빛나고 좀 슬프고 그랬지/ I Can't Breathe No More With You/ 난 사랑 했는데 Faith 그런 건 한때지/ We Were In Love We Were In Love/ 우리 아름답던 예전들이 떠 올라서/ We Were In Love We Were In Love/ 이런 생각에 잠 못 드는 밤에' 부분입니다.

화자가 잠을 못 자는 이유는 '떠난 사람' 때문입니다. 이별의 기억 때문이라고 말해야 더 정확할 것 같네요. We were in Love라는 가사에서 보듯 '우린 사랑했잖아.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로 요약되네요.

'헤어지자고 말하는 니맘 힘들었겠지/ 알면서 말도 못 하고 서성이고 그랬지 I/ Can't Live Without You 더 잘해줬다면 You 그렇게 했다면/ We Were In Love We Were In Love/ 우리 사랑했던 예전들이 떠 올라서/ We Were In Love We Were In Love/ 지난 추억에 잠 못 드는 그리운 밤에 널 잊지 못하는/ 그 미련에 한없이 눈물만 흘러/ 이 아픔마저도 난 놓을 수 없는데' 부분입니다.

이별의 말을 꺼낸 것은 화자가 아니라 상대였습니다. 그래도 홧김에 내뱉은 말은 아니었습니다. 어찌 됐건 화자는 이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미련인 걸 알면서도 그 아픔마저 끌어안고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의로요. 이별 후에 남는 '더 잘 걸'이라는 가정과 후회도 이어집니다.

'떠나지 마 내게 돌아와 Baby/ Still With You, Im With You 아직 내 맘 속에 니가 있어/ We Were In Love Oh Love Love Love/ 아직 내 맘속에 니가 있어 제발/ We Were In Love 이런 생각에 잠 못 드는 밤에/ 넌 행복해야 해' 부분입니다.

화자는 당연히 상대가 돌아왔으면 하고 바라죠. 상대는 떠났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아직 그대로라면서요. 앞으로 잘 살 수 있을까요? 갑자기 상대에게 행복을 기원하는 건 진심이었을까요?


음. 오늘은 가사 중 'We were in Love'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사랑했잖아'로 해석이 될 텐데요. 우리 인간은 왜 지나간 시간의 증거를 들이밀면서 현재의 상실을 거부하는 것인가라는 철학적 명제를 꺼내게 하는 문장이 아닐까 싶네요.

어제의 우리가 오늘의 남이 되는 것이 이별이죠. 여기서 어제와 오늘은 시간을 가리키는데요. 우리가 시간이라는 함수 위에서만 지낼 수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이별이 힘든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시간이 연속되는 것이 아니라 단절되기 때문일 겁니다.

보통 우린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크게 달라진 것 없는 나를 인식하고 하루를 시작하죠. 그래서 큰 혼란 없이 또 하루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만약 아침에 눈을 떴더니 기자들이 여러분 집에 짝 깔렸다고 가정해 보죠. 많이 당황하시겠죠? 시간의 연속성이 무너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겁니다.

이쯤 되면 어제까지의 일상을 오늘로 끌어오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겁니다. 이별도 마찬가지죠. 어제까지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 밤 혹은 다음 날 아침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일 겁니다. 평온했던 일상의 흐름이 깨지고 이전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두려움이 업습하죠. 본능적으로 우린 헤어지기 전 상황으로 돌아가려는 욕구가 발생하게 될 거고요. 그래서 이별을 했지만 안 한 것처럼 행동하죠.

어제까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던 내가 다음날부터 무관심을 받는 상황은 어떨까요? 누군가는 말합니다. 이별은 상대의 시선 속에 살던 내가 살해당하는 사건이라고요. 그 살해 현장에서 우린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 상대에게 우리의 지난 사이를 꺼내게 되죠. 누가 보면 미련이라고 하고 지질이라고 하고 그럽니다.

무엇보다도 분열하는 자아를 지키려는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가치를 확인하던 내가 하루아침에 누군가로부터 냉대를 받는 사람이 되어서 무가치한 존재로 바뀌었으니 도대체 나는 뭐지라고 어리둥절해질 거잖아요. '자아 동일성'을 지키려는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도 당연한 측면이 있죠.

예전부터 말씀드리지만 우린 어릴 적부터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믿음 체계가 형성되어 있죠. 하지만 우주가 실제 그런지는 모릅니다. 오히려 시도 때도 없이 우연과 운에 좌우되는 현실을 보면 과학의 영역은 그중의 아주 작은 부분처럼 여겨지죠.

아무튼 이런 인과 구조는 우리의 이별에도 적용이 됩니다. 누군가를 많이 사랑했으니, 영원히 곁에 있을 거다라는 서사를 만들어가죠. 하지만 이 말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립니다. 앞서 언급한 시간이라는 함수와 인간의 마음이라는 요물을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떠나는 상대를 바라보면서도 인과의 잣대를 디밉니다. 왜 떠나는 거야? 떠나는 이유가 타당하긴 해? 뭐 이런 것들이죠. 꼭 떠나는 사람이 남아 있는 이에게 이별의 이유를 솔직히 말하고 납득시켜야 한다는 이상한 인과 논리가 이어집니다. 설사 이해가 된다고 해도 안 잡진 않을 거면서도요.

여기서 철학의 개념인 '멜랑콜리'를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참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입니다. 하하하. 프로이트는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을 애도라 부르고 상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 대상을 자아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을 멜랑콜리라고 했습니다. 애도는 구체적이고, 대상을 놓아주는 반면 멜랑콜리는 모호하고 내부로 끌어들입니다. 멜랑콜리는 떠나간 상대를 영원히 자기 안에서 소유하려는 태도인 것이죠.

노래 가사에 보면 이런 멜랑콜리한 행동이 다수를 이룹니다. 험한 일을 당했을 때 '빨리 털어버려', '긍정적으로 생각해'라고 주변에서 조언을 하며 슬픔의 늪에서 빠져나오라고 하죠. 하지만 슬픔은 그 나름대로의 존재 이유가 있을 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 인간성의 회복일지도 모릅니다.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이별을 했더라도 내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면 굉장히 회복탄력성이 좋은 거고 효율적인 것이겠죠. 하지만 이 상황을 놓고 보면 우린 의아해합니다. 뭔가 이상하다. 제대로 사랑을 안 했나, 사람 맞아? 이런 반응이 나오죠. '인간성'의 상실이라고 볼 수 있죠.

우리에게 슬픔이란 인간의 감정은 효율로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 줍니다. 그 감정에 효율이 작동한다면 이별을 해도 매일 자던 시간에 잠을 자며 잠 못 드는 날이 있을 수 없죠. 전 진짜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슬픔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네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이런 생각이 드네요. 무릇 성인이라 함은 멜랑콜리해야 한다고요. 슬픔을 보고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 끌고 와서 그 힘으로 그것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 아닐까 싶네요. 우리처럼 중동 전쟁을 보면 바로 잊어버리는 것과는 대조를 이루죠. 몇 주안에 석기시대로 돌려버리겠다는 으름장에는 인간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빠져있는 것은 아닐는지.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매거진의 이전글오반의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