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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의 <지우개>

작사 최준영 작곡 임기훈

by GAVAYA

안녕하세요?

이번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알리'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aD6E2MzHRw4?si=9thH7qt9mkFpBami


지우개로 널 지울 수만 있다면


백번이고 모두 지우고 싶어


내 가슴에 문신처럼 박힌 우리의 사랑이


아무리 해도 지워지지 않아


- 알리의 <지우개> 가사 중 -




이별에 아파해서

극복하는 방법이

너무도 궁금해졌어

인터넷 검색을 해봤지


이거다 싶은 글귀를 봤어

내 가슴에 팍 와닿더라고

아파할 기간을 정해

충분히 아파하란 말


사실 닐 아픔을 하루로 줄여도

하루를 온전히

버터낼 자신이 없어


사랑과 이별이

손바닥 뒤집듯 이루어지는

수많은 여인들처럼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이 꽉 물고 버텨볼게

그러다 죽을 것 같으면

그땐 너의 품을

한 번만 빌려도 될까


생각의 지우개가 있다면

그것으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너에 대한 모든 것들을

모두 다 지워버리고 싶어


평생을 안고 가야 할

내 가슴에 박힌

너란 사람과 우리 사랑을

끝내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알리는 2005년 데뷔했습니다. 리쌍 3집에 수록된 <내가 웃는 게 아니야>라는 곡 아시나요? 여기에 피처링하며 가요계에 입문했죠. 독특한 목소리와 고음 전개가 강점인 가수입니다. 활동명인 '알리'는 전설적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에서 따온 거라고 하고요. 처음엔 '타이슨'으로 부르려다가 여자라서 조금은 완화된 '알리'를 택했다는 후문입니다.

대학 때 음악을 전공했고 재즈밴드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한 경력이 있네요. 어린 시절 판소리를 하다 중학교 때는 사물놀이, 고등학교 때는 바이올린을 연주했을 만큼 동서양을 넘나는 음악 스펙트럼이 넓은 가수입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러 가요제에서 수상하면서 본인이 원하던 실용음악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하고요. 그래서 앨범 수록곡 모두를 직접 작사/작곡/편곡한답니다.

KBS2 <불후의 명곡> 최대 수혜자라 불릴 만큼 해당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자주 해서 인지도를 쌓았죠. 오늘 소개할 노래는 미니앨범 2집에 실린 곡입니다. 제목 <지우개>는 무언가를 지울 수 있다는 콘셉트로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이 노래도 그런 경우에 속하죠. 무언가를 지우개를 동원해서라도 잊고 싶은 화자의 절절함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자. 그럼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가사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리고 해석도 어렵지 않죠. 늘 말씀드리지만 저에겐 이런 노래가 브런치 하기에 상대적으로 더 어렵습니다. 트로트 편에 도전해서 <가사실종사건>의 지평을 넓혀나가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 막혀 돌파구를 마련 중입니다. 워낙 가사도 짧고 1차적 원적이라 이걸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조만간 돌파구를 뚫어서 여러분에게 선보이겠습니다.

첫 번째 가사가 '이별을 극복하는 법이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해 봤더니/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 말/ 아파할 기간을 정해 충분히 아파하란 말'입니다. 해석하기에 앞서 이 분 참 걱정이 앞섭니다. 어찌 이별을 극복하는 법을 인터넷 검색으로 해결하려 하시다니 말이죠. 이별을 극복하는 법이 원래 없는 거잖아요. 하도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을 해 봤다고 보는 편이 맞겠죠. 아니면 이별한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래서 물어볼 수가 없어서 인터넷의 힘을 빌린 건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답이 '아파할 기간을 정해서 충분히 아파하라'는 말입니다. 전 충분히 아파하라는 말은 동의가 되는데 앞부분에 그게 기간을 정해서 할 일인지는 다소 의문이 남네요. 네 이별에는 명약이 없습니다. 충분히 아파하는 것 외에는 말이죠. 근데 여기선 그 기간조차 자신의 의지로 되는 일이라고 간주하죠. 노래의 화자가 어설픈 검색과 판단으로 오답을 찾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네요.

그래서 하루만 아프고 싶다고 하면서 그 하루도 자신에게는 지옥이 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별의 아픔을 잊는 시간에 기간을 정할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발상도 터무니없지만 그 하루조차 못 견디는 게 당연하죠.

그러면서 쉽게 잊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낍니다. 이별에서 잘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와 사뭇 비교가 되는 것이겠죠.

2절에서는 마음을 다소 진정시켰는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본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죽을 것 같을 때 상대에게 자신을 찾아와 한번 안아줄 수 있겠냐고 묻죠. 이별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에서 최악의 순간을 핑계로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면죄부를 준다면 그건 가슴 깊이 남겨진 미련 때문이 아닐까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지우개로 널 지울 수만 있다면/ 백번이고 모두 지우고 싶어/ 내 가슴에 문신처럼 박힌 우리 사랑이/ 아무래도 지워지지 않아' 부분입니다. 가사 해석을 특별히 붙일 것이 없는 구간입니다만 주제절이기도 합니다. '이별도 사랑처럼 맘대로 되지 않는 것' 정도의 결론이죠.


오늘은 당연히 지우개에 대한 썰을 좀 풀어야겠죠. 하하하. 여러분들은 생각의 지우개가 있다면 뭘 지우고 싶으신가요? 이 노래처럼 헤어진 누군가나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기억을 지우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자신의 큰 실수로 일을 그르친 과거 사건인가요? 네, 우리 머릿속에는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공간이 하나쯤 있죠. 저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지우개의 쓸모는 무엇일까요? 무언가를 이전 상태 즉 아무것도 없던 상태로 돌리는 행위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수정하는 행위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것을 해 볼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행위일까요? 모두 다라고요? 여러분은 이 셋 중 어느 것이 끌리시나요?

저는 세 번째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가 지우개의 쓸모 중에 가장 마음에 듭니다. 지우개로 지우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지운 자리에 무언가를 채워 놓기 위한 것일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두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에서는 지우개의 쓸모 중 첫 번째만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가사 전개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별도 마찬가지죠. 과거를 지우겠다 마음먹는 건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을 못 버린 상태임을 드러내죠. 또 어떤 경우는 '내가 잘할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라는 풍이 이어지는데 이 경우는 수정의 목적이 클 겁니다. 하지만 그 아픔과 슬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에 대한 복선을 남겨둔 가사라면 어땠을까요?

지우개는 자신의 몸을 내던져 임무를 완수합니다. 마치 과거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보여주었던, 자폭을 의미하는 가미가제 전술과 유사해 보이기도 하죠. 미국을 긴장시켰지만 꽃다운 일본의 젊은 군인들이 죽었죠. 지우개로 무언가를 지우면 지우개가 지워지는(없어지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도 참 아이러니죠. 지우개를 사용하려면 지우개를 사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듯이 우리 생각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덜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진짜 우리에게 소중한 기억은 지워보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가사처럼 문신처럼 박혀 있을 정도면 사실 지우개로도 어떻게 안 되는 거잖아요. 그만큼 열렬히 사랑했던 기억을 굳이 지금 아프다는 이유로 지울 필요가 있을까요? 전 그냥 살렵니다. 하하하. 오늘 브런치를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글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늘부터 중간 점선을 삽입해서 1) 가수나 작사/작곡가 설명파트 2) 가사해석 파트 3) 제 넋두리 파트 이런 식으로 구분해서 보실 수 있게 했습니다. 원래도 그렇게 했는데 점선 하나 넣었더니 깔끔해 보이는 게 저는 꽤 만족스럽습니다만. 우린 잘 지우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중간 선을 긋듯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일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오늘도 편안한 밤 보내시와요. See you. Coming Soon- (NO.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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