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희의 <눈물이 안 났어>
작사/작곡 박진영
안녕하세요?
이번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임정희'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너무 슬퍼서
눈물이 안 났어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알겠다고 했어
시간이 멈추고
심장도 멈췄어
모든 게 내겐
그냥 꿈만 같은 일이라서
- 임정희의 <눈물이 안 났어> 가사 중 -
날 떠나야 한다는 그 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런 널 이해해 달라는 말에
난 아무 말도 안 나왔어
넌 변함없는 저 햇살처럼
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주는 존재였으니까
항상 나를 사랑할 거란
말을 철석같이 믿었어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었어
이틀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따뜻했던 눈빛은
어디에 두고 온 거야
너무 슬퍼서 눈물이 안 났어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알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어
너에게 등 돌리고
한참을 걷고 나서야
이별을 실감했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니
숨 쉴 수가 없이
쏟아져 내렸어
믿기지 않는
이별과 눈물에
시간이 멈추고
내 심장도 멈췄어
임정희는 2005년 <Music is My Life>로 데뷔했습니다.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죠. 찾아보니 미국 시장 진출을 시도했었다가 국내로 다시 돌아왔네요. <시계태엽><사랑아 가지 마> 등 히트곡도 꽤 있습니다. 데뷔 때는 지금 이미지와는 다르게 레게 머리를 했다는 것 정도가 눈에 띄네요.
이번 곡은 박진영 씨가 작사/작곡했습니다. 지난번 유퀴즈에 나온 걸 보니 450곡 가량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정말 신의 경지 그 자체입니다. 이렇게 왕성한 프로듀서 활동도 하고 본인 음반도 내고 그리고 최근에는 인순이, 박미경, 신효범, 이은미까지 내로라하는 가수들과 '골든 걸스'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금요일 저녁 10시에 합니다. 이 프로그램 한 번 봤는데 빠져나올 수가 없더라고요. 꼭 한 번 보시어요. 하하하.
자 그럼 본업인 가사 속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먼저 제목부터 살펴보죠. <눈물이 안 났어>입니다. 왜 눈물이 안 났던 걸까요. 어떤 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으면 어한이 벙벙해서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됩니다. 네 바로 이별선고를 받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눈물도 안 났다는 표현입니다. 그녀에게는 어떤 일이 있던 걸까요? 함께 가사 속으로 풍덩 해보시죠.
첫 가사가 '생각도 못했던 말/ 내게 니 모습은 항상 웃는 얼굴/ 변함없는 저 햇살같이/ 나를 따뜻하게 비춰주는 그런 존재였는데'입니다. 화자에게만 특별했던 상대가 생각도 못했던 말을 했다는 내용인데요. 내용 전개상 안 따뜻하고 변함이 있고 울게 하는 일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날 떠나야 한다고/ 이해해 달라고/ 갑자기 뭐라고 말해' 부분이 사실상 주제절로 보입니다. 이별의 전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노래의 화자는 상대로부터 떠나는 걸 이해해 달라는 말을 갑자기 듣게 됩니다. 2절 가사에 보면 '넌 어저께까지도 내게/ 그 따뜻한 눈빛으로 얘길 했는데'라는 가사가 나오는데요. 그 정도로 갑작스러운 이별통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더 이상 같이 갈 수 없음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이별로 향해가는 경우가 있는 반면 한 사람은 여전히 상대를 좋아하고 있지만 상대의 마음이 급변한 경우도 있죠. 이 노래의 경우는 후자인데요. 왜 마음이 돌아섰냐면 '날 너무 사랑해서/ 다른 사랑은 상상도 할 수 없단 말/ 믿고 있었어'라는 가사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죠. 바로 다른 사람과 눈이 맞은 거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너무 슬퍼서 눈물이 안 났어/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알겠다고 했어' 부분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린 일시적으로 얼음이 됩니다. 멘붕 상태에 빠지며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죠. 그러니 눈물 회로조차 돌릴 여유가 없는 상황입니다.
다음 가사가 '시간이 멈추고/ 심장이 멈췄어/ 모든 게 내겐/ 모두 꿈만 같은 일이라서'입니다. 큰 충격으로 뇌가 작동을 멈추니 시간도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게다가 심장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전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역으로 현실의 화자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온 것이니까요.
그 여인은 한 동안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눈동자가 풀린 채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 나갔던 정신이 집으로 돌아왔죠. 상대를 등지고 돌아서며 어디론가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방향도 거리도 중요하지 않았죠.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막혀있던 눈물샘이 열립니다. 눈물이 한 방울씩 나기 시작하더니 홍수에 댐이 무너지듯 멈추지 않고 끝없이 쏟아진 것이죠. 너무 울어서 숨도 쉬지 못할 지경이 됩니다. 아직도 그 여인에게 이별의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짧은 시간인 까닭이겠죠.
네. 임정희 씨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박진영 씨의 감각적인 가사가 잘 어우러진 곡이네요. 가사로 봐서는 남자에게 이별의 귀책사유가 있어 보이죠. 하지만 전 역으로 노래의 화자에 주목해 보려 합니다. 이 여인이 그리도 충격을 받은 이유는 바로 그동안의 '믿음'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녀는 상대를 너무 믿었죠. 사랑을 너무 믿었고요. 사람도 너무 믿었습니다. 물론 사랑은 사람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듯이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 것이니 사람에 대한 믿음 역시 영원하지는 않은 법이지요.
또한 그 믿음은 어디서 사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작용입니다. 그래서 나와 상대가 서로에게 갖는 믿음의 크기는 늘 다른 법이죠. 그런데도 우린 등가의 원칙을 적용해 '내가 이만큼 널 사랑했으니 너도 나를 이만큼 좋아해야 한다'는 룰을 적용시킵니다. 그 룰이 지키지 않는다고 처벌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다 지켜졌으면 이별이란 단어는 사전에서 없어졌어야 할 겁니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믿으려면 그 반대편에 있는 의심이 필수입니다. 그 의심의 깊이가 낮으면 그 위에 쌓은 믿음 체계는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죠. 상대방의 연기에 홀딱 넘어가기 쉽다는 말입니다. 또한 자신이 가진 믿음이 근거 없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언제든 폐기 처분할 수 있다는 유연성도 필요합니다. 공들여 쌓은 탑이었으나 방법이 잘못 되었다는 걸 아는 순간 과감히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모두가 좋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믿음에 기반해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어울릴 사람이 없게 되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떠나도 우린 그 삶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너무나 강력한 믿음 체계, 혹은 고착화된 믿음은 그만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들의 한 번 형성된 믿음 체계에 변화를 도모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도 사람들은 그러면 죽는 줄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 바지가 입고 다닌 분이 치마를 입으면 오히려 사람들은 다들 잘 어울린다고 말하지만 본인은 죽는 줄 알죠. 그렇게 말하는 믿음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믿음은 생각보다 그 근거가 희박할 때가 많습니다. 무언가에 대한 각자의 믿음이 타당한지를 꼭 되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의 브런치를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우리 인간은 참 특이합니다. 과학적 사실을 믿는 것을 넘어 늘 변화하는 사람을, 그 사람의 마음을 믿으려 하니 말이죠. 그래서 위대하기도 합니다. 어떤 동물도 할 수 없는 일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으니까요. 여러분들은 자신을 얼마나 믿으시나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건 사기의 힘이거나 아니면 사랑의 힘을 빌려야 할 수 있이죠. 신뢰하되 의심하라. 어울리지 않는 말이고 세상엔 없는 말이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하하하. See you. Coming Soon- (NO.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