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주의 <귀로>(Cover 나얼)
작사/작곡 예민
안녕하세요?
오늘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박선주'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사랑한단 말은 못해도
안녕이란 말은 해야지
우 아무말도 없이 떠나 간
그대가 정말 미워요
- 박선주의 <귀로> 가사 중 -
박선주는 1990년 데뷔했습니다. 1989년 강변가요제에서 오늘 소개해 드릴 곡으로 은상을 수상했습니다. 나얼 씨가 2005년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면서 역주행했죠. 이 노래의 작사작곡을 맡은 예민 씨는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라는 곡으로 유명한 가수이기도 합니다.
박선주는 1990년 '하루 이틀 그리고'라는 1집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3집까지 꾸준히 발매했지만 큰 반향은 없었습니다. 그녀의 노래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곡은 다른 가수들과 함께 부른 곡들인데요. 특히 김범수 씨와 함께 부른 '남과 여'라는 노래가 가장 잘 알려 있죠.
그녀는 1세대 보컬 트레이너로 불립니다. 외국 유학을 다녀와서 90년대에 주로 활동했습니다. 높은 음을 내며 목소리를 혹사하다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김범수, 김창렬, 윤미래, 서영은, SG워너비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가수들이 그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네요. 특히 김범수는 애제자에 해당되고요.
힙합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만든 그룹이 DJ DOC였습니다. 팀명도 직접 지어줬다고 하고요. 바비킴의 '사랑 그 놈'도 그녀의 작품입니다. 대한민국 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만큼 잘 나갈 때는 한해 저작료가 7억에 육박했다고 전해지네요. 여자 뮤지션 중에서는 거의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정규앨범은 2007년 5집까지 발표했고요. 원래 꿈은 가수가 아니라 작곡가였답니다. 지금까지 발표한 곡수만 280여곡을 넘고요. 작곡, 작사, 편곡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것이 그녀의 경쟁력이죠. 현재는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실용음악 전공 교수로 재직중이라고 나옵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귀로'입니다. 돌아오는 길 정도를 뜻하는데요. 어디로 왜 돌아가는 것일까요? 그 길 위에 서 있는 화자의 기분이나 감정은 어떤 상태일까요? 그 길에 오르기 전에 화자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노래에 담긴 사연을 쫓아가 보시죠.
'화려한 불빛으로 그 뒷 모습만 보이며/ 안녕이란 말도 없이 사라진 그대'가 첫 가사입니다. 화려한 불빛은 네온사인을 뜻하는 것 같죠. 시점상으로는 밤입니다. 그런데 상대가 안녕이란 말도 없이 뒷모습만 보이다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쉽게 흘려진 눈물 눈가에 가득히 고여/ 거리는 온통 투명한 유리 알 속' 부분입니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그렇게 떠난 상대로 인해 화자는 눈에 눈물이 고여 눈물 돋보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상황에 처합니다. 눈물 돋보기로 본 세상은 '투명한 유리 알 속'처럼 보이는 것이죠. 비유가 탁월하네요.
'그대 따뜻한 손이라도 잡아 볼 수만 있었다면/ 아직은 그대의 온기 남아 있겠지만' 부분입니다. 아쉬운 마음이 느껴지죠. 영영 헤어질 줄 알았다면 따뜻한 손이라도 잡아 그 온기를 조금이라도 느껴볼 걸하고 말이죠.
'비 바람이 부는 길가에 홀로 애태우는 이 자리/ 두 뺨엔 비 바람만 차게 부는데' 부분입니다. 가뜩이나 사랑하는 상대가 떠나서 옆구리가 시린데 비 바람까지 화자를 길가로 내몰고 있습니다. 실연의 아픔을 제대로 당해보라는 듯이 날씨마저 가슴을 후벼파는 상황인 것이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사랑한단 말은 못해도/ 안녕이란 말은 해야지/ 우 아무말도 없이 떠나 간/ 그대가 정말 미워요' 부분입니다. 사랑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예의는 좀 지켜줬으면 한다는 것이 화자의 바람입니다. 무엇이 그리도 무섭고 두려워서 아무말도 없이 떠나갔냐며 그런 상대가 밉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에서 귀로는 이별로 인해 혼자가 되는 지점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네요.
음. 오늘은 가사 중 '사랑한다는 말을 못해도 안녕이라는 말은 해야지'에서 힌트를 얻어 '좋아하는 일은 못해줘도 싫어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볼까 합니다. 저는 인간관계를 언급할 때 이 표현이 가장 관계를 지탱하는 근본 자세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최소한 얼굴을 보고 지내려면 상대가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믿은 같은 게 필요합니다. 이기주의로 가득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커피 한 잔을 먹으러 가도 왠지 내가 돈을 내야 할 것 같은 불쾌한 감정이 지배하곤 하죠. 더치페이를 하면 깔끔한 데 말이죠.
상대가 싫어하는 일은 한다는 건 그렇게 해도 상대가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너도 당해봐라와 같이 복수의 마음이 있어서 일겁니다. 전자의 경우는 자기 본위로만 세상을 바라보는데 익숙해서 상대방에 대한 감수성이 낮을 거고요. 후자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내가 싫었던 것을 똑같이 때로는 그 이상으로 갚아주어야 성이 풀리는 상황이죠.
이런 상황은 '예의'나 '매너'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요. 여기에 기분 나쁜 감정이 더해지면 '버릇' 혹은 '벼르장머리'라는 단어로 변질되죠. 상대를 자신처럼 대하지 않으면 우린 예의 없다거나 벼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한다고 말하잖아요. 예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이니까요.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일 경우 '예의'는 자주 생략됩니다.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웃음이나 손을 흔드는 정도로 대신하죠. 존칭어 역시 반말로 둔갑하고요. 그러다 말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원래부터 예의라는 선이 없어서인지 일명 개싸움이 되기도 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아닌 타인과는 '예의'라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꼰대처럼 깍듯이 인사하고 어른이 숟가락을 들어야 밥을 먹고 그런 예의는 아니고요. 타인이 나에게 했을 때 기분 나쁜 말이나 행동을 나 역시 타인에게 하지 않으려는 태도 말이죠.
10번을 잘하다가 1번을 실수하면 인간 관계는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100번을 사랑한다고 말하다가 1번 폭력을 행사했다고 구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사랑한다는 말을 내놓고 하지 않더라도 비폭력의 태도로 일관해야 그 관계가 존속할 수 있는 것이죠.
아마도 이 노래에서 떠나는 상대가 사랑한다고 말했는지 안 했는지는 그리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보다는 예의를 더 이상 지키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었다는 점이죠. 바로 이 부분이 다시는 안 볼 사이라는 의미와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요?
누군가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예의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거나 필요할 때만 찾는 관계로는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죠.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걸 채워주진 못하더라도 상대가 싫어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관계의 최소한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좋아하는 일은 못해도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 조금 여유가 된다면 나와 타인의 입장을 바꿔보는 것. 그래도 여유가 남으면 타인이 좋아하는 일을 도모해 보는 것, 이 순서가 인간관계의 진척도가 아닐까 싶은데요. 여러분들은 지금 어느 지점에 와 계신가요? 하하하.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제 첫 책 <지구복 착용법>의 주요 테마가 한계, 관계, 세계였습니다. 한계를 인식하고 관계를 이해해서 세계로 나가자는 콘셉트였죠. 인간인 나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작은 존재인지를 깨우치고 그 겸허함을 바탕으로 타인을 존중의 마음으로 대해야 관계가 생기겠죠. 나도 타인도 그런 마음, 다시 말해 예의로서 대한다면 함께 세계를 여행하는데 꽤 괜찮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제 2번째 책을 궁금해 하실 분이 혹여 있을지 모르겠으나 올해 안에는 꼭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