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 이건후 작곡 김기표
https://youtu.be/iEPW_oxOZo4? si=TXfRfWeaBXaGKi-m
사랑은 차가운 유혹
그래도 피할 순 없어
이별은 때늦은 후회
다시는 만날 수 없어
- 양수경의 <사랑은 차가운 유혹> 가사 중 -
양수경은 여성 솔로로 1988년 데뷔했습니다. 데뷔와 동시에 발매한 1집에서는 '바라볼 수 없는 그대'라는 곡이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이듬해 2집에서는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가 크게 히트를 쳤습니다. 1990년 발매한 3집은 '당신은 어디 있나요'와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1991년에 발매한 그녀의 4집 앨범에 수록된 곡인데요. 발라드를 위주로 해왔던 그녀가 처음으로 빠른 템포의 곡을 선보였죠. 춤에 소질이 없어서 꽤나 고생을 했다는 후문입니다. 이 노래로 아시아태평양 방송연맹에서 주최하는 국제가요제 최우수인기가수상을 수상합니다.
1990년대에는 국내에서 일본으로 무대를 확장합니다. 꽤 성공했죠. 일본 드라마 주제가가 오리콘 100에 26주나 차트인을 하며 일본 레코드 대상의 최우수 가요곡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최초라고 하네요. 당시 여가수로는 드물게 화장품 광고를 찍었을 만큼 미모도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았죠.
하지만 1986년 8집을 발매하고 9집을 준비했으나 활동을 하지 못하고 가수 활동을 돌연 중단합니다. 그리고 20년 만인 2016년에 지상파 방송으로 복귀 신고식을 치르죠. 가수 이선희 씨와 돈독한 사이로 알려져 있고요. 엄마로서의 삶을 살다가 다시 가수로 돌아온 그녀는 최근에는 음식 관련 너튜브 활동도 하고 있는데요. 늘어난 요리실력만큼이나 세월을 실은 새로운 노래도 기대해 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사랑은 차가운 유혹'입니다. 사랑이 유혹인 건 알겠는데, 왜 차갑다고 표현했을까요? 이 노래의 핵심은 이 부분에 담겨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가사를 함께 살펴보시면서 차가움의 근원을 파헤쳐 보시죠.
'마지막 인사를 하지도 못하고/ 어깨를 움츠린 채로 고개만 떨구네'가 첫 가사입니다. 이별이라는 충격적인 상황. 화자는 말문이 막히는 것 같습니다. 가지 말라고 설득을 해야 하나 아니면 곱게 보내주겠다는 쿨한 멘트를 날려야 하나 하는 선택의 영역이 아닌 것이죠.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을 앞에 두고 심하게 위축되어 낙담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힘없이 다가와 내 손을 잡을 때/ 뺨 위로 흐르는 눈물 가슴만 메이네' 부분입니다. 이별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닌 까닭에 상대 역시 힘든 상황은 마찬가지죠. '힘없이 다가와'가 그런 상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네요. 똑같이 힘들지만 그래도 상대를 위로하려 손을 잡아줍니다. 그 따뜻한 마음을 알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을 전복시킬 수 없는 것도 알기에 가슴이 메이고 눈물만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2절에서는 '언젠가 우연히 마주친다 해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지나쳐 가겠지' 부분이 나옵니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서로는 남남이 되죠. 서로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길에서 만나도 모른 척하며 지나가야 할 운명이 되고 맙니다. 과거 사랑했던 연인 사이가 이젠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는 이 촌극을 떠올리는 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결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이 세상 모두를 사랑한 당신이/ 어이해 나만을 사랑할 수 없나/ 사랑은 차가운 유혹/ 그래도 피할 순 없어/ 이별은 때늦은 후회/ 다시는 만날 수 없어' 부분입니다. 저는 이 가사를 들으면 상대가 종교인일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만 한 사람만은 안 돼라는 공식이 성립하려면 말이죠. 피할 수 없는 사랑을 유혹이라고 하고 부득불 발생하는 이별이 내재되어 있어 '차가운 유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유혹도 있을 텐데 굳이 차갑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지점에 방점이 찍여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네요.
음. 오늘은 '유혹'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성을 꾀는, 사랑에서 등장하는 유혹은 아니고요. 사람을 꾀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거나 좋지 않은 길로 이끈다는 뜻의 유혹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유혹에 혹하시나요?
나이 40을 불혹이라고 하죠. 여기서도 유혹을 뜻하는 혹이 등장합니다. 나이 40살 정도 되면 웬만한 유혹에는 끄덕 없어야 한다는 의미인데요. 저도 이 나이쯤 이 단어를 놓고 고민했던 바가 있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그 속 뜻이 너무 흔들릴 일이 많다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하하.
유혹은 한자로 '꾈 유 + 미혹할 혹'입니다. 광고나 마케팅이 자주 언급되곤 하죠. 굳이 필요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잠재 욕구라는 태그를 붙여 소비자들로부터 구매하도록 하는 활동인데요. 여러분들은 유혹에 넘어가 구매하고 나서 후회한 적은 없으셨나요? 소비가 삶 자체를 대변하고 있는 시대인지라 소비를 부추기는 유혹의 수단도 참 정교해지고 있죠. 1+1 같은 고전적인 방식은 물론 1년 연간권 구매하면 3달 무료라든지, 배보다 배꼽이 큰 경품 행사 등 클릭 버튼을 누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마케팅 기술에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유혹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은 단연 먹는 것이겠죠. 아무리 배가 불러도 맛있는 거 보면 못 참거나 밥 배 따로 간식 배 따로라는 슬로건으로 모든 것들을 무력화시키기도 합니다. 식욕이 없다가도 TV에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잠자던 식욕이 꿈틀거리고 한 입이라도 입에 무는 순간 멈췄던 식욕이 폭발하기도 하죠.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참아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1인 1 휴대폰, 1인 1 자가용 시대에 독야청청 이런 것들 없는 삶을 살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최신 제품, 성능 좋은 제품으로 눈길이 자동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이러한 유혹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자극합니다. 욕망이란 게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것이라 모두 방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죠. 한쪽에서는 욕망을 자제하지 말고 겉으로 꺼내서 물건이나 서비스로 현질을 하며 표현해야 제맛이라고 부추기기도 하고요. 그 교묘함의 끝은 어디일까요?
대부분 유혹의 결말은 뻔합니다. 돈과 시간 등을 탕진해 끝이 좋지 않죠. 하지만 잠깐 동안은 행복을 느낍니다. 한 마디로 지속가능성이 없는 것이 흠이죠. 유혹의 결말을 상상력으로 읽어낼 수 있어도 아예 처음부터 발을 들어놓지 않으면 모를까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는 게 쉽진 않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뱁새가 노는 데는 황새야 가지 말라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매 의욕이 없던 사람도 백화점 같이 호객 행위가 있는 공간에 데려다 놓으면 뭐 하나는 들고 나오게 되니까요. 미디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전보다 부쩍 늘어나면서 요즘은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 공간으로 유혹의 장소가 옮겨간 것이 느껴집니다. 무료 배달을 시키기 위해 일정 가격을 맞추려 뭔가를 장바구니에 담는 것도 포함해서요.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채 몇 시간 혹은 몇 분도 못 가죠. 한 번 고삐가 풀리면 다른 것으로 공략당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집니다. '그래 한번쯤이야'라는 핑계로 시작해서 '못 참겠어'로 끝나는 것이 유혹의 정석이죠. 욕망이란 건 아무 데서나 땅을 뚫고 나오는 잡초와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욕망과 늘 함께 다니는 단어가 있습니다. 절제죠.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가장 무서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욕망의 부름에 화답할 생각이 1도 없는 이들이죠. 명품으로 아무리 자극을 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들 중 그런 절제술을 가진 사람은 어디 있을까요. 하하하.
자신을 각종 유혹에 노출시키는 것은 바로 욕망값과 연관이 있을 겁니다. 하고 싶은 게 많고 먹고 싶은 게 많고 가고 싶은 게 많으면 당연히 고 욕망값에 근거해 관련 유혹에 오픈되게 되어 있죠. 욕망 수준을 낮추거나 욕망 공간을 피하는 길이 상책일 텐데요.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모든 기업들이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가운데 소비자의 한 사람인 우리는 그 욕망으로 벗어나거나 해방되는 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욕망에 취약한 편인가요? 끓어오르는 욕망에 대한 나름의 절제술 같은 게 있으신가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포스트시즌이 한창이라 야구 챙겨 보느냐고 바쁜 요즘입니다. 왜 야구를 이토록 좋아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니 '즐거움'을 향한 욕망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네요. 그 욕망의 폐해란 응원한 팀이 졌을 때 느끼는 더러운 감정과 다른 생산적인 것을 할 수도 있었던 시간 정도일 텐데요. 이 정도면 귀여운 유혹과 욕망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그런 귀여운 욕망이 모여 야구가 산업이 되는 걸 생각해 보면 '욕망에 예외를 두는 건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