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의 <비와 당신>

작사/작곡 방준석

by GAVAYA

반어 표현의 예시로도 사용되고 있다.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박중훈'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qOKZK6 fRDNg? si=-uX2 oKt823 l9 lWKI

https://youtu.be/RiziS5 qadd4? si=Fk7 BC0 d_WLwv7 F73


이젠 당신이 그립지 않죠


보고 싶은 마음도 없죠


사랑한 것도 잊혀 가네요


조용하게


- 박중훈의 <비와 당신> 가사 중 -




박중훈은 1986년 데뷔했습니다. 영화 <깜보>가 그의 데뷔작이죠. TV보다는 영화를 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가수라기보다는 연기자죠. 연기자임에도 이런 좋은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 이색적이네요.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영화 OST입니다. 2006년 개봉한 영화 <라디오 스타>의 OST입니다. 그는 해당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서 이 노래까지 도맡아 불렀습니다. 전문 가수는 아니지만 가수 뺨치는 수준으로 노래를 소화했죠. 그의 OST 참여는 1989년 영화 <내 사랑 돈키호테>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이 노래는 부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와 제목이 같아서 많이 혼동하기도 합니다. 노래가 워낙 좋다 보니 가수들이 많이 커버를 했었습니다. 노브레인, 럼블 피쉬, 박창근, 이무진, 미도와 파라솔 버전까지 어마무시하게 많습니다. 반어적 표현의 가사로 인해 중학교 2학년 1학기 비상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하하하.

비와 관련된 노래여서 비 오는 날이 되면 저작권료로 그의 지갑이 두둑해진다는 후문입니다. 그만큼 현재까지도 꾸준히 사랑을 받는 노래입니다. 차태현 씨 같은 케이스도 떠오르긴 하지만 직업 가수를 겸업한 것과는 다소 결이 다르죠. 그래서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네요.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비와 당신'입니다. 화자는 비가 내리면 당신을 떠올립니다. 비는 당신과 동의어나 마찬가지죠. 그래서일까요? 비는 떠난 당신을 연상시키죠. 당신이 떠나가는 날에도 비가 그리도 내렸으니까요. 화자는 비가 올 때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흐흐흐.

'이젠 당신이 그립지 않죠/ 보고 싶은 마음도 없죠/ 사랑한 것도 잊혀 가네요/ 조용하게' 부분입니다. 말 그대로라면 화자는 떠난 당신을 깨끗이 잊어서 미련 따위가 남을 여지가 없죠. 과연 그럴까요?

'알 수 없는 건 그런 내 맘이/ 비가 오면 눈물이 나요/ 아주 오래전 당신 떠나던/ 그날처럼' 부분입니다. 그런데 화자는 첫 가사와는 다르게 몸이 반응하고 있습니다. 깨끗이 상대를 잊었다고 했지만 무의식 속에 있는 나는 전혀 딴 판입니다. 비를 보면 자동으로 눈물이 흘러내리죠

'아련해지는 빛바랜 추억/ 그 얼마나 사무친 건지/ 미운 당신을 아직도 나는/ 그리워하네' 부분입니다. 사실상 이 노래의 주제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많이 그리워한다가 정답입니다. 추억은 시간 속에서 점점 빚 바래져 가지만 그리워하는 감정은 여전한 것이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이젠 괜찮은데/ 사랑 따윈 저버렸는데/ 바보 같은 나/ 눈물이 날까/ 다신 안 올 텐데/ 잊지 못한 내가 싫은데/ 언제까지나/ 맘은 아플까' 부분입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과 실제 모습이 완전히 반대인 상황입니다. 비가 오지 말라고 기도라도 드려야 할까요. 이론.


음. 오늘은 가사 중 '알 수 없는 건 그런 내 맘이'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어렵죠.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자신의 갈팡질팡하는 마음도 잘 모르는 우리가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이 진정 가능한 일이 묻게 됩니다.

오늘 제가 주목하는 문장은 '알 수 없는 건'입니다. 여러분들은 살면서 '참 모르겠다' 싶은 게 있으신가요? 무지라고도 하고 무명이라고도 부르죠. 저는 인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다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을 '불가지성'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죠. 그리고 불가지의 첫 번째는 단연 '내가 언제 죽는 지를 모른다'였습니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끝끝내 알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입니다. 왜 지금의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는지, 그게 또 한국인지 등등을 시작으로 학창 시절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과 마주하고 사랑을 할 때는 상대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 가슴을 끙끙 앓죠.

이것뿐입니까? 같은 지구에 살고 있으면서도 반대편의 사람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서울에 사는 사람의 경우 제주도 사람들의 요즘 화두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신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천 개의 눈을 가진 부처라면 모를까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영역이죠. 하하하.

그중에서도 으뜸은 단연 나 자신일 겁니다. 어떤 때는 E 같다가도 어떤 때는 I로 급변하는 나의 정체성.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당겼다가 따뜻한 국물이 당겼다가 하는 나의 식탐 등 멀리 볼 것도 없이 나라는 존재가 지닌 마음 보따리조차 가늠하기 힘들죠. 그런데 다른 것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왜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일까요? 저는 모든 것이 변하고 흐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딱 고정된 무엇이라면 열심히 공부해서 습득하면 될 겁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나 이론 같은 것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그걸 공부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재깍재깍 흐르고 또 정보가 쌓여 갑니다.

인류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져서 과거 100년 동안 쌓였던 데이터량이 1년이면 생겨났다고 하죠. 이미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죠. 그걸 AI가 해 보겠다고 덤비고 있습니다. 인간이 포기하고 두 손 두 발 다 든 것을 AI가 해내면 좋을 걸까요? 나쁜 걸까요? 하하하.

과거부터 인간이 뭘 안다는 것에 대한 심오한 접근이 이어져왔죠. 테스형의 너 자신을 알라를 시작으로 말이죠.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주 일부분 티끌 정도이고 그 나머지는 다 모르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뭘 좀 안다고 으스대는 사람들이 주변에 보면 즐비하죠. 눈살이 자동으로 찌푸려집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안다가 디폴트가 아니라 모른다가 디폴트라고요. 누군가가 공부를 왜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한 것을 보고 눈이 번쩍 했는데요. 모르는 것을 알게 되면 행복에 더 가까워진다고 믿기 때문이라더군요. 공감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모르는 것들이 지천에 깔린 세상에서 앎을 추구하는 자세와 실천이 있다면 조금은 행복이라는 단어에 근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죠.

늘 이 두 문장을 가지고 고민을 합니다. '아는 게 힘이다'와 '모르는 게 약이다'입니다. 진정으로 알아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알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다는 이야기죠. 모든 앎이 꼭 우리에게 긍정적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나쁜 짓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몰라서가 아니라 모르는 걸 알아서 문제입니다. 법망을 피해서 세금을 안 내려하는 사람들은 법을 참 잘 알죠.

그렇다면 우린 뭘 알아야 할까요? 변화하는 자신이 아닐까 합니다. 과거의 나-현재의 나-미래의 나를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부를 하면 과거의 나를 다시 해석하게 되거나 미래의 나를 멋지게 설계할 수 있죠. 한 번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지만요.

우리는 탄생부터 소멸까지를 모르는 존재들입니다. 그 사이에서 조금 뭘 알게 되었다고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겠죠.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요 며칠 넥플릭스보다 더 재밌다는 부처별 업무보고를 보면서 '알지 못하는 것은 모른다고 해라. 어찌 다 일 수 있겠는가'라는 대통령의 말이 떠오르네요. 알지 못하는 것은 공부를 하면 될 일인데,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한 관료들을 보면 참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대통령이 물은 것은 알 수 없는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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