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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cover. 류수정)

작사/작곡 최명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샤프'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t2 L3 bK3 dbB4? si=Rb0 CO09 w5 yvCvVw-

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 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정적만이 남아 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 가사 중 -




샤프는 7인조 혼성그룹으로 1980년 데뷔했습니다. 제4회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했죠. 숙명여대 김영란, 조선희, 건국대 노기영, 연세대 양인호, 임태환, 성균관대 최명섭, 경기대 최성진이 멤버입니다. 메인 보컬은 조선희가 맡았습니다.

이 노래는 객석에서 텅 빈 무대를 보는 관객의 시점으로 2절은 무대에 앉아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 배우의 시점으로 가사가 쓰인 것이 특징입니다. 1996년 가수 김현철이 리메이크를 하기도 했고요.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에서 이 노래가 OST로 쓰였는데 극 중 여고 축제에서 7인조 밴드 '레인보우'가 이 노래를 불렀죠.

보컬을 맡았던 조선희는 한서대학교 디자인융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것으로 나오고요.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최명섭은 최호섭과 최귀섭의 형으로 3명이 작사, 노래, 작곡을 한 곡이 <세월이 가면>이죠.

그룹 샤프는 이 노래로 수상을 한 뒤 별다른 후속 활동이 없어서 '아마추어 팀'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공식 데뷔를 한 적도 없어서 원히트언더라는 칭호를 붙이기도 굉장히 애매한 그룹이죠. 한 곡이지만 45년이 지난 지금에 들어도 촌스러움이 전혀 안 느껴집니다. 재즈풍이라서 그런 면도 있는 듯합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연극이 끝난 후'입니다. 첫 소절이 '연극이 끝나고 난 뒤'로 시작해서 첫 소절을 제목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무대에 오르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공감이 가는 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 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가 첫 가사입니다. 조그만 소극장. 오늘은 관객이 얼마나 채워지려나 연기하다가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노심초사합니다. 가까스로 연극이 끝나고 관객이 떠난 객석에서 무대를 위를 바라고 있죠.

'배우는 무대 옷을 입고/ 노래하며 춤추고/ 불빛은 배우를 따라서/ 바삐 돌아가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부분입니다. 언제 연극이 펼쳐졌는지 모르게 시간은 후딱 지나가 버렸고 지금은 아무 일도 없었냐는 듯이 덩그런 무대만이 보입니다. 처음부터 고요했던 고요함이 아니라 왁자지껄하다가 갑자기 찾아온 정적은 다른 느낌이었겠죠?

2절을 살펴볼까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 적이 있나요/ 힘찬 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슬픔만이 흐르고 있죠' 부분입니다. 이번에는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봅니다. 무대란 배우와 관객이 만나는 공간이기에 관객이 사라진 무대는 그냥 빈 공간 그 이상 이하도 아니죠. 한 마디로 무대의 조건이 사라진 현장이죠.

'관객은 열띤 연기를 보고/ 때론 울고 웃으며/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착각도 하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 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정적만이 남아 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부분입니다. 영원한 무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웃고 떠들어도 연극에는 시작과 끝이 있게 마련이죠. 연극의 클라이맥스에는 모든 사람이 숨죽이며 무대에 집중하지만 연극의 결말을 알게 된 관객들은 저마다 무대를 등지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무대란 시간 위에 놓여 있는 것이라 사리 지며 묘한 여운을 남기죠.


음. 오늘은 '무대'에 대해 썰을 좀 풀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남들 앞에서 방석 깔아주면 안 떨고 말을 하거나 노래 따위를 부르실 수 있으신가요? 무대라는 곳은 그만큼 시선이 집중된 한 곳이죠. 백만 개의 눈동자가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까닭에 평소에는 잘하던 사람도 이내 실수를 하곤 합니다.

이 노래는 무대와 객석의 관점으로 연극이 끝나고 난 상황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오늘 제가 썰을 풀 부분은 무대와 무대 뒤입니다. 여러분 오케스트라 아시죠? 지휘자가 나와서 열정적으로 지휘봉을 휘저으며 웅장한 소리를 만들어내죠. 그런데 연주에 들어가는 시점 정도에는 지휘자를 보겠지만 연주에 심취한 사람들이 지휘자를 연주 중에 보는 게 가능할까요? 지휘자의 지휘는 그냥 멋 내기 수준이라고 봐야겠죠.

그런데도 100여 명 가까운 연주자들이 하는 연주는 하나의 오차도 없이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왜일까요? 바로 무대 뒤에서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000 심포니 이런 데는 연습량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습니다.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에서 배우 김명민 씨가 연주 못하는 이들에게 '똥떵어리'라고대사 치던 거 기억나시나요? 그만큼 고되고 힘든 작업이라는 의미죠.

어느 개그맨이 방송에 나와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웃겨야 하는 무대를 오를 수밖에 없다는 사연이었죠. 가수, 배우, 개그맨 등 무대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비애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무대에 오르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무대 뒤의 삶과의 단절을 선택해야 하는 불가피성이랄까요.

무대 위는 화려합니다. 조명이 켜지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니까요. 평상시의 모습이 아니라 가장 아름답거나 좋은 모습을 하고 그 자리에 서게 되죠. 온 우주가 나 하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나 경지를 경험하다가 그 무대를 내려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의 헛헛함이란.

일상생활에서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무대 위의 배우를 연상시킵니다. 우린 모두가 연극 꽤나 할 줄 아는 사람들이죠.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에 웃어 주고 수긍이 안 가는 상황에서도 호응을 해 주고 그럽니다. 하지만 자신의 속마음은 보이지는 모습과는 정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죠.

타인에게 보여주는 모습에 너무 많은 힘을 쏟으면 삶은 힘들어집니다. 과도한 외모 챙기기가 그런 경우이고요. 자신이 하고 싶거나 원하는 바를 꾹꾹 누르며 살면 속병이나 화병이 나기 딱이죠. 혹자는 싫으면 싫다고 그 자리에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내심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무대 위의 모습이 누구보다도 화려해 보이는 반면 무대 뒤의 삶은 만신창이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몇몇 연예인들이 그런 모습으로 화제에 오르곤 하죠. 무대 위와 무대 뒤는 염연히 다른 속성과 양태를 보이고 있음에도 무대 위에서 멋있는 사람은 무대 뒤에서도 멋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갖다 붙이는 거죠.

첫인상이 남다르거나 언어의 쓰임이 뭔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무대 뒤에서 스스로를 갈고닦은 사람일 겁니다. 무대 위의 모습만을 부러워하는 자는 무대 뒤에 숨겨진 치열함을 보지 않으려 합니다. 오타니, 손흥민, 박지성, 김연아, 류현진 등 이런 세계적 스타들이 하루아침에 탄생하진 않았을 거잖아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관객이 떠난 공허함과 쓸쓸함을 제대로 느껴 본 사람만이 다수의 관객들의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운 좋게 바로 데뷔한 가수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쳐 무대에 오르게 되죠. 무대 위 짜릿함보다 무대 뒤 혹독함이 더 먼저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날따라 신이 들린 듯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텅 빈 무대 뒤 구석에서 흘린 피, 땀, 눈물이 모여야 제대로 된 무대를 해 낼 수 있죠. 관객들도 그걸 귀신 같이 알아보고 환호하고요.

저는 무대 위를 볼 때마다 무대 뒤를 상상해 봅니다. 저 경지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까 하고요.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렵니다. 여러분들의 무대 뒤는 어떤 모습인가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원곡을 올리려고 하다가 너무 음질이 안 좋아서 러블리즈의 류수정이 부른 버전을 올립니다. 원곡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지만. 혹자는 브런치를 글 쓰는 무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브런치가 제 글쓰기의 무대 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글쓰기를 갈고닦아서 더 큰 무대로 나가길 꿈꾸죠. 그래서 오타도 많고 이야기가 산발적이기도 합니다. 비겁한 변명이었습니다.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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