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 양인자 작곡 김희갑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조용필'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BRfigFq_R3w? si=bdYQ73 wSLX-W4 M6 s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에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 조용필의 < 그 겨울의 찻집> 가사 중 -
조용필은 1969년 미 8군 무대 '화이브 핑거스'로 데뷔했습니다. 그를 부르는 수식어는 '가왕'입니다. 70세가 넘은 나이지만 거의 매년 전국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데뷔한 지 55년이나 됐네요.
유년시절 살림살이가 괜찮았고 고3 때 음악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갈등하며 가출을 합니다. 1968년 미 8권 기타 리스 겸 가수로 데뷔했는데요. 1971년에는 3인조 록그룹 '김트리오'를 결성해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연주앨범도 발매하고 자신의 노래가 일부 들어간 첫 앨범도 발매하죠.
1975년은 그의 전설이 시작되는 해입니다. 롯데자언츠의 응원가로 쓰이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하거든요. 1979년 지금 몸담고 있는 그룹 '위대한 탄생'을 결성하고 1980년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가 수록된 1집 앨범으로 100만 장을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하죠. 이건 워밍업이었습니다.
1980년대는 조용필 천하였죠. 1981년 3집 <일편단심 민들레야> <고추잠자리>, 1982년 4집 <못 찾겠다 꾀꼬리>, 1983 5집 <친구여>, 1985년 7집 <여행을 떠나요> 1985년 8집 <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 1987년 9집 <마도요> 1988년 10집 <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까지 내놓는 앨범마다 대박이었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1990년 12집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1991년 13집 <꿈> 1992년 14집 <슬픈 베아트리체> 1997년 16집 <바람의 노래> 2013년 <Bounce> 등등 지난해까지 정규 앨범만 총 20장을 발매했습니다. 이 기록은 거의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깨지기 어려울 듯하네요.
1994년 대한민국 최초로 음반 판매량 1,000만 장을 기록했고 일본에서도 600만 장을 팔며 한류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고 있죠. 1980년 오빠 부대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가수고요. 바닥부터 시작해서 전국구 스타된 마지막 가수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1985년 8집에 수록된 곡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그 겨울의 찻집'입니다. 계절과 장소가 동시에 언급되고 있죠. 추운 겨울 몸을 녹일 수 있는 찻집이라기보다는 화자의 기억이 배어 있는 것이라고 봐야겠죠.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양인자 님과 김희갑 님은 부부이고 당대 최고의 작사, 작곡가였습니다.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에 그 찻집'이 첫 가사입니다. 화자는 아침부터 이미 알던 그 찻집을 찾습니다. 바람 속으로 걸어갔다고 말한 까닭은 겨울이어서 찬 바람이 불었던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찬바람을 맞으며 눈 뜨자마자 그 찻집을 향한 까닭이 있겠죠?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부분입니다. 찻집에 장식으로 걸어놓은 꽃은 말라버렸죠. 식어버린 사랑을 뜻하는 듯하고요. 찻집에서는 차나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외로움을 마신다고 표현하고 있네요. 누군가가 떠나간 것일까요? 아니면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는 것일까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부분입니다. 사랑을 아름다운 죄라고 정의하고 있죠.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며 밤을 지낸 화자입니다. 상대의 이름을 가슴에 두면 한숨이 나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서 이겠죠. 그냥 이름도 아니고 뜨거운 이름이라고 하는 걸 봐선 아직도 사랑하는 감정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보이네요.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부분입니다. 사실상 노래의 주제절이라고 볼 수 있죠. 아마도 화자는 추운 겨울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묻어 있는 찻집을 찾아 돌아오지 않는 상대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합니다. 형식적인 웃음을 지울 수 있을지언정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웃음을 지을 수 없습니다. 화자의 마음은 눈물에 잠겨 있는 상태일 테니까요. 목놓아 사랑하는 님을 불러보는 수밖에요.
음. 오늘은 500회를 맞아 제가 왜 이 노래를 선곡했는지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예전에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님이 소떼를 끌고 북한으로 가던 사진 한 장의 임팩트가 대단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남북 협력의 물꼬가 트이며 남북 경협과 금강산 관광이 본격 시작되었죠.
정주영 회장님이 돌아가시고 현대그룹은 분리되죠. 차남 정몽구 씨는 자동차, 3남 정몽근 씨는 백화점, 6남 몽준 씨는 HD현대, 7남 몽윤 씨는 현대해상화재, 8남 몽일 씨는 현대미래로 그룹을 맡습니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은 5남 정몽헌 회장은 현대아산이 포함된 현대그룹을 맡으며 아버지의 유지인 대북 사업을 이끌죠. 그러다가 대북송금 건으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후에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 회장직을 수행합니다. 이때 금강산 사업이 잘 되어서 현대그룹 신입사원들은 연수를 금강산으로 가고 그랬답니다. 저 역시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북한 땅을 처음 밟아봤고요. 하지만 2008년 관광객 피살 사건이 발생한 후 현재까지도 금강산으로의 길은 열리지 않고 있죠. 천안함 피격 사건 등 악화일로를 걷다가 평창 올림픽 때 화해무드로 갔다가 현 정권 들어서면서는 다시 강대강 국면으로 회귀하였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2003~4년경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금강산을 간 시점이요. 7~8월 여름 때여서 행군하다가 여자분 몇 분이 쓰러지고 뭐 그랬습니다. 그때 큰 공연장 같은 곳에서 행사를 진행했는데요. 현정은 회장님도 거기에 같이 계셨죠. 분위기가 무르익자 신입사원들이 회장님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졸랐는데요. 현 회장님이 오늘 소개할 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현 회장님이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마치 본인 이야기를 노래로 하는 것 같았거든요. 사실 현대그룹은 남자와 여자가 밥상도 같이 안 할 정도로 보수적인 집안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현정은 회장이 죽은 남편을 대신해서 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했으니 집안의 반대가 불 보듯 뻔했죠. 실제로 KKC의 정상영 회장이 시숙이었는데 그룹 지분의 정점에 있는 현대엘리베이터와 지분 경쟁을 벌였던 사건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죠.
남편을 잃은 것도 날벼락인데 시숙과도 경영권 문제로 시련을 겪었으니 그 속이 어떻겠어요? 저는 현 회장님이 부른 이 노래가 자신의 아픔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금강산 신입사원 수련회에서 들려준 현 회장님이 떠오르곤 한답니다. 하하하.
남편이라는 한 사람을 사랑한 것이 인생의 항로를 이 정도 바꿀 만큼 큰 죄였는지 따져 묻고 싶었을 것 같거든요. 물론 재벌, 연예인 걱정은 안 해주는 게 국률이지만 돈과 인기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한 사람의 인생에서 묻어나는 아픔과 슬픔을 끌어안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후로 현대그룹은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룹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상선이 채권단으로 넘어가고 계열사였던 현대로직스틱스와 현대증권은 팔렸고 사실상 현대엘리베이터만 가까스로 지킨 상황이죠. 하지만 경영권 분쟁의 여파가 긴 기간 이어지며 소송으로까지 번져 1,7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물어주게 되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죠.
부호의 집에서 태어나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기자의 꿈을 버리고 정략결혼으로 현대가에 들어간 현정은 회장. 그리고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과 가정 주부였던 그녀가 하루아침에 경영 일선에 뛰어들게 되면서 집안과 세간으로부터 받은 수많은 비난들. 아마도 눈물 없이는 견뎌낼 수 없는 나날 들이었겠죠.
대외 활동이 많은 회장직이어서 사람들을 볼 때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마치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라는 가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봐 해봤어. 시련은 없어도 실패는 없다는 고 정주영 회장의 말씀들로도 위로가 안 되는 마음이었겠죠.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와우 드디어 500번째 <가사실종사건> 브런치를 완성했네요. 2023년 6월 25일에 첫 브런치를 시작해서 거의 1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수로는 550일 정도가 될 것 같은데, 중간에 정리된 브런치까지 감안하면 500이란 숫자에 '성실상'을 줘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그동안 꾸준히 <가사실종사건> 브런치를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2026년 안에 도전 1,000곡을 마치고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분들과 맛있는 밥이든 술이든 커피든 뭐든 같이 해보고 싶네요. 하하하.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