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
작사 한경록, 정우진 / 작곡 정우진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체리필터'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나는 낭만 고양이
슬픈 도시를 비춰
춤추는 작은 별빛
나는 낭만 고양이
홀로 떠나가 버린
깊고 슬픈 나의 바다여
-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 가사 중 -
체리필터는 혼성 4인조 록 밴드로 2000년 데뷔했습니다. 보컬을 맡은 조유진, 베이스 연윤근, 드럼과 랩을 맡은 손스타, 리더인 정우진이 멤버입니다. 결성된 것은 이보다 빠른 1997년이었고요. 1995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남자 멤버 3명이 먼저 그룹을 결성하고요 1997년 조유진이 합류했습니다.
체리필터라는 팀명은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홍대 인디 밴드의 경우 여러 단어를 조합해서 발음하기 좋은 밴드명을 만들곤 했다고 하네요. 이후에 거친 체리향이 나는 음악을 추구한다는 콘셉트로 정리가 되었다고 하네요.
2000년에 발매된 1집 <Head-up>은 전문가들에게는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진 못했습니다.
1집 발매 실패 후 남자 멤버들의 군복무, 보컬 조유진의 일본 활동 등으로 2집은 2년여 만에 발매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2002년 발매한 2집 앨범 <Made in korea?>에 실린 타이틀곡입니다. 각종 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했고 음악캠프로 1위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작사가 한경록 씨는 그룹 크라잉넛의 멤버이기도 합니다.
1997년 결성 이후에 한 차례의 해체 위기도 없었고 멤버 교체도 없었습니다. 홍대에 사비를 털어서 전용 작업실을 마련해 <로켓펀치 뮤직>을 설립 후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는 밴드 그룹이 귀한데, 최대한 오래 활동을 해 주었으면 바람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낭만 고양이'입니다. 제목만 봤을 땐 백수가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체리필터의 노래에는 유독 동물이 들어간 것이 많다고 하네요. 그래서 동물농장밴드라는 오명이 있다고도 하는데요. 왜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일지 가사를 따라가 보시죠.
'내 두 눈 밤이면 별이 되지/ 나의 집은 뒷골목 달과 별이 뜨지요'가 첫 가사입니다. 고양이를 의인화한 가사 내용으로 보이네요. 밤이 되면 고양이의 눈이 유독 잘 보이죠. 이런 모습을 두 눈이 밤이면 별이 된다고 표현했습니다. 고양이가 사는 곳은 뒷골목이고요. 뒷골목에서 보는 달과 별은 낭만적이기도 하죠.
2절을 볼까요. '깊은 바다 자유롭게 날던 내가/ 한 없이 밑으로만 가라앉고 있는데' 부분입니다. 고양이가 수영이나 잠수를 잘하던가요? 깊은 바다를 자유롭게 날던 내가는 그래서 추가 해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고양이가 가장 좋아하는 식단은 생선이죠. 바다에는 생선이 즐비하고요. 과거에 이 고양이는 깊은 바다를 자유롭게 날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밑으로 가라앉고 있죠. 한 때 풍족했던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가난해진 상태가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두 번 다신 생선가게 털지 않아/ 서럽게 울던 날들 나는 외톨이라네/ 이젠 바다로 떠날 거예요(더 자유롭게)/ 거미로 그물 쳐서 물고기 잡으러' 부분입니다. 생활이 곤궁해져서 늘 생선가게에 생선을 훔쳐왔던 고양이는 늘 서러웠고 외로웠습니다. 더 이상 이런 생활이 지긋지긋해졌죠. 그래서 결심합니다. 직접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다고요. 그 그물은 거미줄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웃기죠? 하하하.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나는 낭만 고양이/ 슬픈 도시를 비춰 춤추는 작은 별빛/ 나는 낭만 고양이/ 홀로 떠나가버린 깊고 슬픈 나의 바다여' 부분입니다. 생선집에 의존해서 사는 자신의 처지 때문인지 도시를 슬프게 묘사하고 있죠. 하지만 바다로 떠나는 부푼 꿈을 안고 있는 고양이는 눈에서 작은 별빛을 내며 슬픈 도시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좋다는 바다로 가는 길에 동행자는 없습니다. 바다에 도착해서 생선을 맘껏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고양이에게 바다는 그냥 즐거운 장소가 아니라 깊은 슬픔이 담긴 장소라고 봐야 하겠지요. 낭만 없는 고양이라고 적고 실속 없는 슬픈 고양이라고 읽어야 할 듯요. 큭큭.
음. 오늘은 '낭만'이 아니라 '고양이'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볼까 합니다. 여러분들은 반려동물 키우시나요? 저는 안 키웁니다. 반려동물을 안 키우시는 분들을 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동물과 함께 지내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분도 있고요. 한 번 키워봤는데 하늘나라에 간 이유로 트라우마 비슷한 것이 생겨서 다시는 못 키우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전보다 부쩍 늘었습니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3 가구 중 1 가구가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죠. 개가 고양이보다 많은데, 젊은 층의 경우에는 고양이를 선호하는 비율이 올라갑니다. 먹이를 비롯해서 영양제, 치료비용 등 그 산업규모만 매년 6~10조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무시할 수 없는 산업이 된 것이죠. 선진국으로 갈수록 관련 시장은 일찍부터 형성되어 있기도 하죠.
제가 오늘 말씀드릴 부분은 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아진 걸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저는 한 때 아쿠아리움에서 홍보를 담당한 적이 있었거든요. 당시에 키우던 동물이 잘 적응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는 일을 종종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인간의 이기심이 동물을 힘들게 하는 원흉이 아닐까 하고요. 한 편에서는 저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나가 수많은 어류들을 보려면 그 비용이 얼마나 들 것이며, 가능하기나 할까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맞는 말이죠. 경제적으로만 보면요.
누군가는 그냥 내버려 두면 생존에 위협을 받으니까 좋은 주인을 만나서 보내는 것이 차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특히 사람에게서 버려진 유기견이나 유기묘 등을 입양해서 키우는 분들 입장에서는 이런 논리가 성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모든 사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처럼 동물들도 저마다의 본능에 따라 살도록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관점으로 동물에게 잘해주는 것은 반만 잘해주는 것이기 때문이죠. 태어난 본능의 일부만 사용하고 일부는 퇴화된 채 살아갈 수도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반려동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보다는 사람의 고독 솔루션과 맞닿아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와 반려 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어난 것 사이에 상당한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겁니다.
예전에 초등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를 키우다 아파트 앞마당에 묻어줬던 일이 한 동안 잊혀 있다가 아들이 햄스터를 키우겠다고 과학교실에서 데려온 후에 똑같은 전철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동물뿐만 아니라 집에 가져와 살해한 화초도 상당하죠. 전 그 이후로 아무것도 살아있는 것은 안 키우자 주의가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키우기엔 제 덕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할까요.
돈이 된다고 하면 뭐든 하는 산업 사회의 한 측면이 반려동물 분야에도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쇼윈도에 앙증맞은 동물들을 전시하고 엄마 손을 잡고 가게 앞을 지나가던 아기가 엄마에게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연상되죠. 나 아는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교육의 목적으로는 좋겠지만 반려동물을 만나는 시작점이 소비라니 첫 대면하는 장면으로서 여간 씁쓸하지가 않습니다.
반려인은 출근을 하고 오늘도 집에 홀로 남아 있는 멍멍이와 고양이는 그 시간에 뭘 하고 있을까요? 반려동물들에게 사람이 줄 수 있는 선물은 아무도 없는 드넓은 집이나 반려인이 사다 준 장난감은 아닐 겁니다. 현실적으로 현대 사회가 반려동물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동물의 시선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늘 제 마음 어딘가를 불편하게 합니다.
이 노래에서 고양이에게 낭만이라는 것이 있으려면 반려인이 만들어 놓은 장소적 울타리를 벗어나 어디든 내키는 대로 뛰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도 하고 도와주는 고양이 친구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하면서 낭만이라는 단어를 부여받게 될 테니까요. 사람도 안 하는 정략결혼을 동물에게 시키는 야만성에서는 낭만이라는 단어가 싹트기 어려울 겁니다.
육지에 사는 고양이가 거미줄로 그물을 만들어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직접 잡아먹겠다는 발상을 한 것은 아마도 누군가에 의지해서 사는 삶을 내려놓고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를 떠나면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진정한 낭만이 아닐까요?
어떠세요? 여러분들은 낭만 고양이가 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면 동물들에게 이런 낭만을 허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초등학생 아들이 사 온 햄스터를 우리에 넣어두고 베란다에 놔뒀는데요. 어느 날 그 우리를 넘어 이 친구가 사라진 거예요. 여기저기를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자다가 소리가 들려서 피아노가 있는 방을 열었더니 이불장 밑에 있던 먼지를 한가득 뒤집어쓴 채로 저를 바라보다가 바로 이불장 밑으로 숨는 거 있죠. 다행히 우리에 옮겨 놓긴 했는데 그러고 며칠 안 돼서 이 친구는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이불장 밑의 공기가 너무 안 좋았던지, 그동안 아무것도 못 먹어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동물 키우는 것과는 선을 긋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신해철 씨의 <날아라 병아리> 노래가 떠오르네요.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