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국화 – 무궁화, 대한민국의 국화가 되기까지』

무궁화 – 사라진 왕실의 꽃, 되살아난 민족의 상징

by 가야


『세계의 국화 – 그 속에 담긴 문화와 역사』 제1편


국가 기본 정보 – 대한민국

국가명: 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

수도: 서울 (Seoul)

위치: 동북아시아, 한반도 남부

인구: 약 5,200만 명 (2025년 기준)

공용어: 한국어

정치체제: 대통령제, 민주공화국

국기: 태극기

국가: 《애국가》

국화: 무궁화 (Hibiscus syriacus)


무궁화, 대한민국의 국화가 되기까지

— “영원히 피고 지는 그 꽃처럼”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이 노랫말. 무궁화는 이렇게 매일같이 부르고, 길가에서도 흔히 보이지만, 정작 어떻게 ‘국화(國花)’가 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시작은 조선도, 대한제국도 아닌, 한반도가 풍전등화였던 시기에서 비롯되었다.




삼국 시대, 무궁화는 이미 ‘이름난 꽃’이었다


무궁화는 학명 Hibiscus syriacus, 영어로는 Rose of Sharon이라 불린다. 그런데 ‘syriacus’라는 이름은 오해에서 비롯된 분류로, 실제로 무궁화의 원산지는 시리아가 아닌 중국 남부 또는 인도 북부로 추정된다.


삼국 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 자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미 오래전부터 민가와 궁궐 주변에서 자라는 꽃이었다.


중국의 고전 《산해경》이나 《후한서》에서는 “군자의 나라에는 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는 문장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군자의 나라’가 고조선 또는 고구려라는 해석도 있다.


당시 고구려 사신이 중국에 무궁화 문양이 새겨진 비단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백제와 신라의 고분 유적 주변에서도 무궁화가 자라는 모습이 관찰된다.


그러나 이 시기 무궁화는 국화로 지정된 상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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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梨花) / 조선 왕실 문양


조선의 국화는 ‘이화(梨花)’였다


조선시대에는 무궁화보다 배꽃, 곧 ‘이화(梨花)’가 왕실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왕조의 문장과 궁중의 장식에서는 배꽃 문양이 자주 등장했고, 무궁화는 그보다는 길가나 민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으로 여겨졌다.


무궁화는 평민의 삶 속에 가까이 있었던 ‘생활의 꽃’이었지, 국가의 상징은 아니었던 것이다.





근대 민족주의와 무궁화의 재발견


19세기말, 조선이 근대화와 국난의 기로에 서 있던 시기,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모색하던 지식인들 사이에서 무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 중심에는 개화파 정치인 박영효가 있었다. 그는 일본 유학 중에 벚꽃이 일본인의 국민정신을 상징한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우리에게도 민족의 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며, 그가 주목한 것이 바로 무궁화였다.


박영효는 무궁화의 끊임없이 피고 지는 특성과 강한 생명력에 민족적 상징성을 부여했다. 그는 무궁화야말로 외세에 꺾이지 않고 이어져온 조선 민족의 근성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황실의 문장에 무궁화가 정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각종 행사와 국기, 상징물에도 무궁화가 점차 등장하며 민족의 꽃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저항의 꽃이 되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 의해 병합되면서 무궁화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바로 ‘저항’의 상징이었다. 무궁화는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사용되었고, 애국가 가사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문장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이다.


많은 학생들과 독립운동가들이 가슴에 무궁화 휘장을 달고 만세운동에 참여했으며, 무궁화를 그린 깃발과 표어가 전국 곳곳에서 사용되었다.


감옥에 갇힌 독립운동가들은 벽에 무궁화를 새기며 조국을 기억했고, 이 꽃은 단순한 식물을 넘어 민족의 정체성과 투쟁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꺾이지 않는 모습은, 당시 조선 민중의 절박한 바람과 어긋나지 않았다.




해방 이후, 무궁화는 왜 국화가 되었는가?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새로운 국가 상징을 정비해 나갔다. 국화는 법으로 명문화되지는 않았지만, 무궁화는 이미 국민 정서 속에서 자연스럽게 국화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정부 문서와 군대·경찰 등 국가 기관의 상징에서 무궁화가 일관되게 사용되며, 사실상 ‘국화’로 확정되었다. 이후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와 각종 국가 홍보물에서도 무궁화는 ‘대한민국의 국화’라고 명시되었고, 8월 8일은 무궁화의 날로 지정되어 기념되고 있다.





무궁화가 국화가 되기까지의 여정


무궁화가 국화로 자리 매기기까지의 여정을 되짚어 보면 이렇다. 삼국시대에는 이미 무궁화가 한반도 전역에 자생하였으며, 중국 고전에도 ‘군자의 나라에 피는 꽃’으로 언급될 만큼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국왕과 왕실의 상징으로는 배꽃, 즉 이화가 사용되었고, 무궁화는 민가 근처에 흔히 피는 대중적인 꽃으로 머물렀다.


그러던 중 1890년대, 일본의 벚꽃 문화에 자극을 받은 박영효 같은 개화파들이 무궁화를 민족의 상징으로 제안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897년 대한제국 수립과 함께 황실 문장에 무궁화가 채택되며 공식 상징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무궁화가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격상되며 전국적인 저항의 표식이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국가기관과 정부의 문장에 지속적으로 사용되며 자연스럽게 국민의 인식 속에 ‘대한민국의 국화’로 자리 잡았다.


마침내 8월 8일은 ‘무궁화의 날’로 지정되어, 지금까지도 나라꽃으로 존중받고 있다.




왜 하필 무궁화였을까?


무궁화라는 이름은 ‘무궁하다’는 뜻에서 왔다. 끝이 없다는 의미, 곧 영원함과 불굴의 생명력을 담고 있다. 실제로 무궁화는 여름철 내내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쉼 없이 꽃을 피운다.


어떤 꽃은 한 그루에 수백 송이 이상 꽃이 피기도 하며, 가지마다 피고 또 지기를 반복해 무려 100일 넘게 꽃을 볼 수 있다.


무궁화의 이런 특성은, 외세의 침탈과 전쟁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한국인의 인내와 끈기, 회복력 있는 생명력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일까. 무궁화는 이제 단지 하나의 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걸어온 역사이자, 한 세기를 넘어 이어지는 희망과 약속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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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의 꽃말


무궁화의 대표적인 꽃말은 “끊임없는 사랑”, “불굴의 의지”, “섬김”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나라를 지키며, 끝까지 버티어 피어나는 그 아름다움처럼—
무궁화는 오늘도 이 땅 어딘가에서 조용히, 그러나 강인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다음 편 예고

〈미국 – 자유의 상징, 장미〉
다음 주 목요일 오전 9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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