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요즘 화단에 원추리가 피어 있다.
아침에 피고, 저녁이면 사라지는 하루살이꽃.
그러나 그 짧은 생애 속에서도
다음 날 또 다른 꽃이 피어나는 이 꽃을 보며,
나는 오래전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의 그림과 목소리, 그리고 마음이
스르르 내 안에 피어났다.
마치, 매일 새로 피어나는
이 원추리처럼.
“좋은 글이나 쓰세요.”
그와의 인연은 '한국미술 2000년대의 주역들' 전시회에서 시작되었다.
수많은 작가들 중, 나는 서울대 교수들이 추천한 이름들이 아니라
그의 그림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200호가 넘는 대작 〈조선의 본향으로〉,
잉태, 무속, 생명의 원형이 녹아든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무언가 오래된 기원의 울림을 느꼈다.
나는 그 이름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는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다.
구파발에서, 포천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주에서
작업실을 옮겨가며 살았다.
봄이 되면 그는 산에 올라
원추리, 고사리, 취나물을 따서 내게 보내주었다.
제주도의 습한 날씨 때문에 무청이 잘 마르지 않아
대형 선풍기 두 대를 돌려가며 무청을 말린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 웃음은 따뜻하면서도, 어쩐지 아렸다.
어느 날,
내가 시끄러운 공간에서 전화를 받자
그는 물었다.
“어디예요?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요?”
“아르바이트 중이에요.”
그 말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는 글을 써야죠.
아르바이트는 무슨 아르바이트예요.
계좌번호 주세요. 돈 부쳐드릴게요.”
나는 당황했고, 결국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며칠 뒤,
그는 등기우편으로 백만 원을 보내왔다.
“좋은 글이나 쓰세요.
더 필요하면 말씀하시고요.”
그는 그 무렵 청주의 재벌과 전속 계약을 맺었고
거액의 계약금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 돈을 쓰지 않았다.
아니, 쓰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세상을 떠났다.
믿었던 사람에게,
도움을 줬던 사진작가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삶이 너무도 가볍게 무너진 것 같아,
그의 마지막이 너무도 쓸쓸하게 들려
나는 눈을 감고 오래도록 울었다.
나는 그를 위해
내가 다니던 사찰에서 49재를 올렸다.
그 백만 원은
그를 위한 마지막 제물이 되었다.
그는 돈을 내게 주었고,
나는 기도를 올려 되돌려 보냈다.
이제 원추리는 내게 단순한 여름꽃이 아니다.
그가 보낸 봄나물 속에 들어 있던 작은 향기.
제주에서 불던 바람의 결.
그리고 ‘좋은 글이나 쓰세요’라던 그의 목소리.
나는 아직도 그에게서 받은 백만 원을 다 갚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 이 순간,
그 빚을 조금은 갚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를 기억함으로써,
그를 다시 불러냄으로써.
원추리는
오늘도 새롭게 피었다.
어제의 꽃은 사라졌지만,
그 생명은 이어진다.
그도 그런 사람이었다.
하루처럼 짧았지만,
그의 따뜻한 마음은 지금도
내 안에서 계속 피어난다.
그가 내게 남긴 것은 단지 그림 한 점이 아니다.
그의 삶 전체가, 그 마음 전체가
지금도 내 글 속에서 숨 쉬고 있다.
나는 오늘, 그를 기억한다.
한 송이 원추리를 바라보며.
내 친구 한규언에 대한 간단한 이력과, 그의 예술세계를 조명해 본다.
서양화가 (1955–2010)
한규언은 조용한 화가였다.
1955년, 강화도의 바람이 부는 섬마을에서 태어나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고, 자신만의 붓을 들었다.
독학으로 시작한 길 위에서 그는 스스로 예술가가 되었다.
정통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학문적 깊이를 더하며
그만의 조형 언어를 단단하게 다져갔다.
국전과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9회,
중앙미술대상전 특선 2회, 프랑스 르 살롱전 은상,
목우회공모전 대상 등 다수의 수상 이력은
그의 묵묵한 여정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1991년 B.J.S 화랑, 2003년 인사아트플라자갤러리에서의 개인전,
그리고 수많은 단체전과 초대전.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깊이 남은 순간은
2000년, 운현궁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미술 2000년대의 주역들』展.
기획자로서 나는 그 전시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다시, 그의 그림 앞에 섰다.
한규언은 2010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쉰다섯이라는 짧은 생애였지만,
그가 남긴 그림은 지금도 숨을 쉬고 있다.
말 대신 침묵의 색으로, 삶을 말하고 있다.
한규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어머니의 본향으로〉는 작가가 평생 탐구한 신화적 세계관이 집약된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는 황소를 타고 이동하는 인물과, 그 곁을 날아가는 거대한 물고기들,
그리고 태아들이 담긴 알과 같은 둥근 공간들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배치되어 있다. 황소의 등은 나무의 뿌리로 이어지고, 나무는 가지마다 생명을 품은 열매처럼 태아를 안고 있다. 인간과 동물, 식물과 생명이 서로 경계를 허문 채 하나의 유기체처럼 엮여 있다.
이 그림은 단순한 상상화가 아니다.
한규언은 이 작품을 통해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본향’이라는 근원적 주제를 그려냈다.
생명의 잉태와 귀환,
그리고 윤회와 탄생의 의미를 담아낸 그의 회화는 논리적 사고 이전의 ‘신화적 사고’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낸 결과다.
김영호 평론가는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림 속 황소와 인간은 고목의 형태로 이어지고,
그 가지마다 열매처럼 달린 태아들은
생명과 자궁, 그리고 존재의 근원을 상징한다.
한규언의 조형은 경계를 허무는 상상력의 미학이며,
신화적 사유의 새로운 번역이다.”
이러한 시도는 민화의 강렬한 색채와 전통 조형기법, 그리고 독자적인 드로잉 감각이 어우러진 그의 회화 언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어떤 화풍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그는 '그림'이라는 공간 안에서 신화적 진실을 탐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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