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질빵이야기

가야의 꽃이야기

by 가야

능골산 자락에서 만난 사위질빵


며칠 전부터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이 땅에 닿는 감각이 또렷해지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그날도 부지런히 자락길을 따라 내려가던 중, 눈에 불쑥 들어온 흰 꽃 무더기.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지만, 도무지 무슨 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잎과 줄기는 낯이 익은데, 꽃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만큼 자주 곁에 있었지만 내가 몰라본 것이리라.

집으로 돌아와 검색을 하니 이름이 나타났다.


바로 사위질빵.
특이하면서도 친숙한 우리말 이름이었다.
역시 우리 산하에 자생하는 야생화였다.


덩굴에 피는 흰 여름꽃


사위질빵(Clematis apiifolia)은 미나리아재비과의 덩굴식물이다.


여름이면 고목을 휘감아 오르며 흰 꽃송이를 터뜨린다.
꽃잎은 없지만, 십자 모양으로 펼쳐진 꽃받침이 꽃잎을 대신한다.


그 작은 꽃이 무더기로 모여 피어 있는 모습은 흰 구름이 덩굴 위에 내려앉은 듯하다.

가을이 되면 암술대가 길게 자라 부드러운 깃털 같은 털을 매달고 바람에 흩날린다.
그래서 한여름 숲에서 눈길을 붙들던 꽃이, 가을에는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름 속에 담긴 해학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농경시대, 사위는 백년손님으로 불릴 만큼 귀한 존재였다.
농사철이면 품앗이로 모여 일하는데, 장인 장모는 사위에게 다른 농부처럼 무거운 짐을 지우지 못했다.
가볍게 조금만 얹어주면, 이웃들은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놀렸다고 한다.


“사위 지게는 약한 질빵풀 덩굴로 멜빵을 만들어도 끊어지지 않겠다.”


그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보니, 결국 ‘사위질빵’이란 이름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해학과 재치가 담긴 우리 옛사람들의 언어 감각이 참 놀랍다.

꽃말 – 비웃음

사위질빵의 꽃말은 뜻밖에도 “비웃음”이다.
이웃 농부들의 농담 섞인 놀림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러나 내가 능골산 자락에서 마주한 사위질빵은, 결코 비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숲 속 바람에 흰 꽃송이를 흔들며, 오히려 순박한 미소를 짓는 듯 보였다.
내 걸음을 멈추게 한 그 순간, 사위질빵은 무심히도 맑은 얼굴로 여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꽃을 만날 때마다 이름을 먼저 묻는다.
그러다 모를 때면 집에 와서 검색해보곤 한다.


그러면서 또 깨닫는다.


내가 꽃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꽃이 먼저 나를 멈추게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천천히 자신을 소개해 주고 있다는 것을.

능골산에서의 그날도, 사위질빵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을 뿐이다.


https://youtu.be/2i1lbt2JLSY?si=1Uy11DTD_f0WinQJ

매거진의 이전글뽕모시풀 – 이름을 알게 된 뒤에야 보이는 여름의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