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이혼 중
남편과 나 사이에는 결혼초부터 많은 다툼이 있어왔다. 서로에 대한 비난, 욕설, 상대방 가족에 대한 조롱, 경제적 학대, 각종 언어폭력과 물리적인 폭력까지 있었음에도 이혼을 못 하고 여지껏 살고 있다. 최근에는 신앙의 힘을 빌려 억지로 감사노트 쓸거리를 쥐어짜며 하루 하루 연명하듯 꾸역 꾸역 살아오고 있다.
사실 아이들 때문에 이혼 못한다는 건 순전히 핑계다. 그저 이혼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혼자 살아갈 용기, 아이들을 책임질 용기, 이혼녀가 되는 용기... 그 용기가 부족한 나는 그래서 비겁하게 정서적 이혼을 선택했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편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에 어쩔 수 없이 살기는 살아야하니 타의반 자의반으로 영혼없는 결혼생활을 하기로 한 것이다.
앞서 내가 쓴 글을 다시금 보니 다소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표현들(남편을 이해한다느니, 감사하다느니 하는)이 많다는 사실에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다. 사실은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혐오의 감정이 더 깊어지고 있는데 말이다.
정서적 이혼을 선택한 것은 하루 아침에, 혹은 어떤 큰 계기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씨앗은 사실 신혼여행지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니 난 결혼과 동시에 이혼을 한 셈이다. 그런데도 그 와중에 아이를 둘이나 낳은 것은 내 인생의 최악의 선택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저 이 남자를 선택한 나 자신을 혐오하고 나 자신을 저주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을 세우지 못한 게 한이 될 뿐이다.
그렇게 살다보니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지고 그저 나란 존재는 생존을 위해 경제적 능력이 나보다는 높은 남자를 의지해서 욕을 먹고 무시를 당하면서도 미련하게 살아가는 한심한 여자로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결혼 초반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어릴때는 마냥 주부로만 살았기에 남편의 존재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나에게는 너무나 컸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 비수로 꽂혀 난도질 당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언어폭력에 늘 노출되어 있던 나는 그것이 폭력인지도 모르고 가스라이팅을 당해 ‘나는 원래 그렇게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구나, 능력도 없이 남자에게 의지해서 살 수 밖에 없는 힘없고 한심한 여자구나’ 라는 게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입덧을 해서 몸이 안 좋으니 밥솥에 쌀만 씻어 담가달라는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남편을 보며, 자기는 나가 돈을 버니 집안일은 오로지 여자가 다 해야한다는 논리를 펼치는 남자를 보고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에게 한겨울에 술 심부름을 시키는 남편을 보고 (그것도 시어머니집에서) 상종못할 천민의 피가 흐른다는 걸 직감했다.
임신중에도 이혼해야 말아야 하나 고민을 수백번을 넘게 했지만 결론은 그냥 참고사는 것이었고 그 댓가는 혹독했다.
아이가 태어나 일년가까이 따뜻한 방에 넓은 침대는 남편 혼자 독차지했다. 나는 조리원을 나온 후로 아이가 통잠을 잘 때까지 거실바닥에서 아이와 함께 자야했다. 본인은 낮에 일을 해야하는 사람인데 잠을 못자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일을 못한다고 따로 자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아이가 밤에 울기라도 하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들쳐업고 나가서 재우고 들어오라고 윽박을 질렀다.
나는 여름이면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부채질을 해가며 아이를 재우고, 겨울이면 포대기를 둘러매고 담요까지 꽁꽁싸매 아이가 깊이 잠들때까지 동네를 돌아다녔다. 내가 춥든 말든 일단 아이가 조용해져야 집에 들어갈 수 있기에 그 깊고 외로운 밤을 늘 혼자 보내야했다.
그 때 다짐했다. 난 죽으면 죽었지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겠다. 죽을때까지 나를 모욕하고 나의 존재를 무참히 짓밟은 이 남자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결혼 생활 내내 아주 무미건조하고 형식적으로 그를 대할 것이고, 나는 단지 아내로서 최소한의 의무이자 이 남자가 유일하게 나에게 바라고 의존하는 ‘밥 차리기’와 그 외의 집안일, 육아를 제공하는 아주 계산적인 관계로 살아갈 것이라고 나 자신에게 맹세했다.
그것은 경제적 지원을 해 주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댓가이자 일말의 양심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내가 밥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해야할 일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관계는 철저히 계산적인 계약관계 그 이상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는 어떠한 감정도 들어가지 않은, 남자는 돈을 제공하고 여자는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적 계약관계 말이다.
게다가 가끔 원한다면 무료로 성관계도 가능하니 이것은 남자에게 참으로 유익한 계약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아이를 출산한 후 즉 종족번식의 목적이 아닌 오직 성욕만을 위한 섹스를 남편이 시도할때 그 성관계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부부가 아니라 난 그저 일개 창녀이자 식모일 뿐이라는 사실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섹스에서조차 어떠한 감정적인 교류나 스킨십이나 대화가 일절없는 아주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사정’, ‘피스톤 행위’일 뿐이었다.
마치 매춘부에게나 할 법한 성폭행에 가까운 행위를 공적으로, 그것도 공짜로 집에서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편은 분명 결혼생활을 만족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나에겐 단순한 계산적인 계약관계라고 하기에 남편의 돈과 맞바꿔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나의 인격은 무시되기 일쑤였고,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시간에 맞춰 집안일과 육아와 알바를 해내야했다. 반항이라도 할라치면 생활비를 다 끊어버리겠다는 협박을 일삼고 심지어 몇 달치 돈을 실제로 안 주고, 아이등원을 위해 타고 다니는 차도 못 타게 차키와 생활비카드를 뺏는 일도 허다했다.
그러는 와중에 나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가고 우울증에 빠지고 종종 죽고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살려고 교회를 다녀봤지만 그렇다고 당장 바뀌는 건 없었다. 나의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었고 여기서 해방되려면 죽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난 그저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로 살고 싶고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게 나의 유일한 꿈이자 삶의 목표였는데 어쩌다 그 소박한 꿈마저 처참히 짓밟힌 채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얼마 전 내 생일이었는데 생일선물은 기대도 안 했지만 난 그저 아이들과 오랜만에 외식이라도 할까싶어 오늘 내 생일이야 라며 말을 꺼냈는데 돈 없다는 말만 내뱉고는 홱 출근해버리는 것이었다.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줄줄 알았는데 끝내 해주지 않는 남편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내야겠다 싶어 낮에 조촐하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베트남 쌀국수가게에서 밥을 먹고 케익을 샀는데 퇴근하고 오자마자 하는 말이 또 뭐사느라 돈을 많이 썼냐는 것이다.(내가 생활비 카드를 쓰면 남편에게 문자가 날라가게 되어있다)
평소에는 한달에 한번도 할까말까한 외식이지만 생일이라 밥 먹고 케익 사느라 돈 오만원 쓴게 그렇게 아까웠던 모양이다. 다음부터는 내 알바비로 돈 조금씩이라도 모아서 눈치 안 보고 밥 사먹어야지, 더럽고 치사하다는 생각에 악이 바칠 지경이다.
알바비라 해봐야 80만원 남짓인데 그 돈으로 큰애 학원비, 나랑 아이들 보험비, 교회헌금, 친정부모님 생신챙겨드릴 비상금, 그리고 겨우 남은 십만원으로 연금저축통장에 저축이라도 하고 나면 남는 돈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나에겐 백만원도 안되는 이 알바가 (남편 눈에는 하찮은 돈일지 몰라도)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아직 둘째가 어리기에 전업으로 일을 하기가 부담스러워 여전히 알바를 하지만 몇 년후에는 꼭 4대보험이 들어가는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
내 몸이 힘들더라도 경제력을 더 가진다면 남편에게 눈치안보고 무시안당하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지금으로서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선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겨야겠다. 잘 먹고 잘 자고 운동을 하고 튼튼한 엄마로 살아남는 것만이 내가 남편에게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